국립중앙박물관 기획특별전…6월12일까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전 태자였을 때 인생무상을 느끼며 고뇌하던 모습을 담은 보살상인 반가사유상. 6~7세기 삼국시대 유행했던 미륵신앙과 깊은 관련이 있는 반가사유상은 당시 시대상을 대표하는 성보 가운데 하나다. 우리나라 국보 제78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이 대표적이며, 이는 일본에 그대로 전래돼 수많은 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한국과 일본의 고대 불교조각의 정수인 반가사유상을 한 자리에 선보이는 전시회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려 불교계 안팎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지난 24일부터 오는 612일까지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기획특별전 한일 국보 반가사유상의 만남을 연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우리나라의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과 일본의 국보 주구 사(中宮寺) 소장 목조반가사유상을 선보인다. 중생제도의 원력을 담은 천년의 미소를 띤 양국의 국보 반가사유상이 1400년 만에 첫 대면하는 의미 깊은 전시다.

반가사유상은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다리의 무릎 위에 올리고 손가락을 뺨에 댄 채 생각에 잠겨 있는 보살상이다. 인도에서 제작되기 시작해 중앙아시아,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와 일본에 전해졌다. 삼국시대 반가사유상은 예술적 완성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독존으로도 제작되어 미륵신앙과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중요한 예배의 대상이 됐다.

특히 6세기 후반에 제작된 국보 78호 상은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띤 채 두 눈을 지그시 감은 모습으로 사유에 든 보살의 무한한 평정심과 숭고한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화려한 보관과 장신구, 몸을 덮은 천의(天衣) 자락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엄한 보살의 위엄을 드러낸다. 무엇보다 주목받는 것은 실제로는 공존하기 어려운 반가와 사유라는 복잡한 두 가지 자세를 자연스럽게 구현했을 뿐만 아니라 화려한 장신구나 유려한 천의 자락을 일정한 두께로 주조한 금동불상이기 때문이다. 이는 당대 최고의 뛰어난 조형 감각과 첨단 주조기술이 조화를 이루었기에 가능했으며, 국보 78호 상이 우리나라 문화재를 대표하는 국보 중의 국보인 이유다.

이와 더불어 일본의 나라 현에 위치한 주구 사에 소장된 반가사유상은 7세기 후반 아스카시대에 제작된 목조상이다. 마치 두 개의 상투를 튼 것 같은 머리 모양에 윤곽선이 없이 두툼한 눈과 입가에는 살짝 미소를 머금어 명상에 잠긴 모습이다. 상반신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반면, 높고 큰 대좌 위로 치맛자락이 겹겹이 흘러내린 모습은 삼국시대 반가사유상의 영향을 연상시킨다. 동시대 일본 목조 불상의 주된 재료인 녹나무로 된 11개의 목조 부재를 조합해 제작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주구 사 상은 삼국의 영향과 일본 고대 불교조각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상으로 일본을 벗어나 다른 나라에서 전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나라와 일본에는 반가사유상이 많지만, 높이가 1m 내외인 대형 반가사유상은 한국의 국보 78호 상과 국보 83호 상, 일본의 주구사 상과 교토 고류(廣隆)사 상 등 양국에 각각 2점씩밖에 없다. 더욱이 국보 78호 상과 주구 사 상은 사유라는 인류 보편적 주제를 한일 양국이 어떻게 이해하고 시각화했는지 비교해볼 수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서울 전시에 이어 미소의 부처님 2구의 반가사유상을 주제로 621일부터 710일까지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서도 개최될 예정이다.

박물관 관계자는 한국과 일본 국보 반가사유상의 이번 만남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한국과 일본 고대 문화를 비교해 볼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이 될 것이라며 아울러 고대 한일 문화교류의 산물인 두 반가사유상의 만남이 한일 양국의 관계에 있어 새로운 미래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