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진 아나운서

 

‘법정스님과 인연’ 깊어

맑고향기롭게 이사 지내

부처님 마음으로 의정활동

시골 살면서 국방FM 진행

“항상 떳떳하고 부끄럽게 살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기까지의 힘이었습니다.” 국가대표 아나운서 이계진 씨는 불법(不法)아닌 불법(佛法)에 따라 인생을 살았다고 했다. 요란하게 드러내지 않으면서 부처님 가르침을 일상에 구현한 그의 삶을 들어 보았다. 지난 4월30일 금산 보석사에서 열린 ‘이계진 아나운서 초청 강연’ 과 그 전후의 차담을 통해 진솔한 마음을 만났다.

 

눈부시게 파란 신록(新綠)이 우거진 천년 고찰 금산 보석사에 들어선 이계진 아나운서의 표정이 더욱 밝아졌다. “이런 곳에서 불교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은 복(福)”이라면서 반갑게 맞이하는 보석사 신도들에게 덕담을 건넸다. 그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가람에 드나들기만 해도 신심(信心)이 절로 날 것 같다”면서 “공부를 많이 하는 것도 좋지만, 신심을 내고 신행활동하는 분들이 잘해서 모범을 보이면 뒷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따라 올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강연에 앞서 주지 스님 요사채에서 점심공양과 차담을 나누었다. 정갈하게 차려진 공양은 산해진미(山海珍味)가 부럽지 않았다. 맛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정성이 듬뿍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 방송인으로 살아왔다. 잠시 정치인의 길을 걸었지만, 지금은 다시 방송(국방FM)을 통해 국민과 만나고 있다. “군대 가기 전에 잠시 1년간 국어교사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세월을 빼면 대부분 아나운서로 일생을 살았습니다. 고마운 일이죠.”

1973년 한국방송공사(KBS) 공채 1기 아나운서로 입문한 그는 30년 간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아침마당’, ‘TV는 사랑을 싣고’ 등의 프로그램 명사회자로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국가대표 아나운서, 국민 아나운서라는 별칭이 잘 어울리는 명사회자였다. 언제나 따뜻한 미소를 머금은 표정은 시청자와 국민의 마음에 평화를 주었다.

그런 그가 왜 한때 정치인의 길을 걸었을까? 궁금했다. 그 답은 공양 후에 이어진 강연에서 들을 수 있었다. 1992년 14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출마를 권유받았지만 정중하게 사양했다고 한다. 1996년 15대, 2000년 16대 국회의원 선거 때도 마찬가지였다. 청와대, 방송국 사장, 모교 총장까지 인맥을 동원해 출마를 강력하게 권유했지만 그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그때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일생일업(一生一業). 한평생 하나의 일에 전념한다는 말이다. 천직(天職)인 방송에 전념하겠다며 세 번의 출마 권유를 뿌리칠 수 있었다.

그런 그가 2004년 17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섰다. “방송 내용을 문제 삼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청취자에게는 너무나 시원한 이야기인데, 그들에게는 귀에 거슬렸나 봅니다.” 그가 맡은 프로그램이 갑자기 중단됐다. 눈 밖에 난 그의 방송이 ‘잘린 것’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30년 방송인의 자존심이 상했다. 원망까지는 안했지만 잘못을 그대로 묵인할 수는 없었다. 이계진 아나운서는 “그때 달라이라마 존자를 찾아가 법문을 듣고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면서 “돌아오는 길에 우리 사회를 위한 정치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회고했다.

‘이계진이 정치를 한다’는 소문이 나자, 여의도에 있는 모든 당(黨)에서 그를 영입하려고 나섰다. “저의 가치관과 맞고, 먼저 손을 내민 쪽에 입당했다”고 밝힌 이계진 아나운서는 “당에서 비례대표 출마를 권유했지만, 고향에 가서 국회의원 자격이 있는지 직접 심판을 받고 싶었다”고 했다. 17대에 이어 2008년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연거푸 당선되어 방송인이 아닌 정치인의 삶을 걸었다. 17대 42.2%에 이어 18대에는 65.9% 지지율로 당선된 것만 봐도 유권자의 ‘확실한 인정’을 받았음이 증명된다.

“부처님 마음으로 의정활동을 하겠다고 다짐하고 실천했습니다. 거짓이나 술수를 부리지 않고, 정직하게 국민의 입장에서 일하는 의원이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국정감사 우수국회의원상과 국회 상임위 의정 활동 1위로 선정되는 등 모범적인 정치인으로 자리 잡았다. 진심(眞心)이 통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계진 아나운서는 “의정 활동을 단 한 번의 불법(不法)도 없이 원칙대로 했다”면서 “부처님 가르침을 일상 속에서 실천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법정(法頂)스님과 인연이 깊다. 한동안 사단법인 맑고향기롭게 이사로 활동한 것도 법정스님과의 인연 때문이다. 처음 스님을 만나게 된 것은 부인이 송광사 수련회에 참석하면서 비롯됐다. 향적(香積)이란 법명도 법정스님에게 받았다. 스님의 중요한 가르침인 ‘무소유(無所有)’는 무엇일까? 법정스님 생전에 질문을 했다고 한다. 그러자 법정스님은 “갖지 말라는 것이 아니고, 열심히 일해서 정당하게 번 것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이라고 했단다. 이계진 아나운서는 “무소유는 필요한 만큼만 소유하는 것으로, 많이 가졌으면 다른 이와 나누면서 살면 좋겠다는 가르침”이라고 해석하면서 “아무런 두려움 없이 마지막 길을 떠나신 법정스님이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지난 4월30일 금산 보석사에서 강연을 마친 후 신도들과 함께 기념촬영. 보석사 주지 규봉스님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는 이계진 씨.이시영 충청지사장 lsy@ibulgyo.com

불자의 삶에 대해 그는 진심(眞心)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옛 이야기 하나를 전했다. 어느 산골에 사는 까막눈 할머니가 불교 믿는(공부하는) 방법에 대해 질문하자 주지 스님이 ‘즉심시불(卽心是佛)’이라는 붓글씨를 써 주며 “노보살님, 즉심이 부처입니다. 즉심이 부처요”라고 했다. 할머니는 “즉심이 부처”를 되뇌다 “짚신이 부처”라고 잘못 이해했다.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스님이 써 준 붓글씨를 벽에 붙여놓고 그 앞에 짚신을 놓고 매일 절을 했다. 이계진 아나운서는 “<금강경> 등의 경전을 줄줄 외면서 딴짓하는 사람보다는 짚신이 부처님인 줄 알고 진심으로 절하는 할머니가 더 복력(福力)이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무리 경전을 많이 안다고 해도 부처님 가르침을 하나도 실천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짚신이 부처님인줄 알고 매사에 조심하며 가르침을 실천하는 할머니가 더 훌륭한 것 아닌가요.”

이계진 아나운서는 서울에 살 당시 직접 겪은 일화를 소개했다. 어느날 운동을 하기 위해 아파트 단지를 나서다 큰 길가의 은행나무에 현수막을 걸어놓았다가 미처 제거하지 못한 줄을 보았다고 한다. 속살까지 깊게 파고 든 줄을 다 풀어서 없애니 은행나무가 숨을 “후욱”하고 쉬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는 “불교를 크게 배우지는 못했지만, 불자로서 그런 것을 실행하면서 살았다”면서 “그것이 바로 불자가 지녀야할 마음이며 태도”라고 강조했다.

그는 시골에 살고 있다. 법정스님이 권유한 <월든>이란 책을 읽고 결심했다고 한다.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월든>의 저자가 호숫가에 들어가 통나무집을 짓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소박한 삶을 닮고 싶었다. 그 속에서 자연의 진리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있다고 했다. 봄 가뭄에 물이 말라 부화하지 못하는 개구리 알을 보면 물을 보태주고, 포크레인으로 뿌리채 뽑인 나무를 옮겨 심고, 바늘처럼 말라 붙은 잔디와 잡초에 물을 주고, 북풍(北風)에 얼어 죽기 일보 직전의 배추를 덮어주며 살고 있다. “비록 예초기로 깎을 땐 깎더라도 물을 주고 싶습니다. 곧 밑둥이 잘리고 김치가 되겠지만 얼어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요.” 이러한 따뜻한 마음이 그의 장점이며 매력은 아닐까.

이계진 아나운서는 “공부를 해야 하지만 실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행이 없는 공부는 근거가 없습니다. 공부가 없는 실행도 허망하지요. 작은 것부터 생활에서 실천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부처님 가르침 아닐까요.” 

➲ 이계진이 걸어온 길…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군에 입대하기 전에 1년간 고향에서 국어 교사로 지냈다. 1973년 한국방송공사 공채 1기 아나운서로 방송에 입문하여 30년 간 ‘명 사회자’로 ‘대한민국 최고의 아나운서’로 국민의 사랑을 받았다. KBS와 SBS에서 퀴즈탐험 신비의 세계, 아침마당, TV는 사랑을 싣고, 사랑의 리퀘스트, 체험 삶의 현장 등을 진행했다. 한국방송대상과 한국문인협회 가장 문학적인 상, 불교언론문화상을 수상했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두 차례 국회의원을 지내며 국정감사 우수국회의원상과 국회 상임위 의정활동 1위로 선정되는 등 모범적인 활동을 했다.

2013년부터 국방FM에서 ‘국민과 함께 국군과 함께’를 진행하고 있다. 인터넷에 ‘해바라기 피는 마을’이란 블로그를 운영중이다.

저서로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딸꾹!> <사랑을 주고 갈 수만 있다면> 등이 있다.

 

 

 

[불교신문3204호/2016년5월28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