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공생회 네팔에 희망을 심다<上>

룸비니 불가촉천민촌에 8번째 학교 준공
맨바닥서 모래자루깔고 수업듣던 아이들
“여기 저기 옮겨 다니지 않아서 기뻐요”

똘망똘망 한 눈망울의 파르밀라(10, 남)가 두 손으로 새 책상을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책걸상, 실링팬(ceiling fan, 천장 선풍기), 콘크리트 지붕까지 번듯하게 갖춘 학교에 앉아 글씨를 쓰고 책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듯, 교실 안을 재차 둘러보던 파르밀라는 “이리저리 옮겨 다니지 않고 한 자리에서 공부할 수 있게 돼 좋아요”라며 해맑게 웃었다.

국제개발협력단체 지구촌공생회가 지난해 착공한 ‘스리나와두르가 분황초등학교’ 준공식이 열리던 지난 23일, 수도 카트만두에서 남서쪽으로 약 270km 떨어진 룸비니 보우띠와 마을 주민들은 손님맞이에 한창이었다. 한국에서 10여 시간을 쉬지 않고 달려온 지구촌공생회 일행이 학교 입구에 다다르자 환영의 뜻으로 꽃목걸이를 건네는 손길이 여기저기서 분주했다.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뜨거운 날씨에도 500여명의 인파가 몰려 마을에 들어선 새 학교에 대한 높은 관심을 짐작케 했다.

‘스리나와두르가 분황초등학교’가 들어선 보우띠와 마을은 부처님이 탄생하신 룸비니 동산에서 차량으로 1시간가량 달려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거주민 2000여명 대부분이 ‘살갗이 스치기만 해도 부정이 탄다’는 불가촉천민, 최하층 카스트 ‘달리트(dalit)’에 속한다.

수천년 동안 이어온 뿌리 깊은 신분 차별은 천출의 아이들에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마저 앗았다. 핀투 빤디 분황초등학교 선생님은 “최하층 계급이 모여 사는 마을이라 정부 지원은 물론이고 인근 마을에서도 도움을 받기 쉽지 않다”며 “불과 2년 전만 해도 교실뿐 아니라 책상과 의자조차 없어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맨바닥에서 수업을 해야만 했다”고 말했다. 이사장 월주스님은 “종교와 신분 차별 없이 지구촌의 고통 받는 이웃과 함께 하고자 하는 지구촌공생회의 신념과 후원자 요청에 따라 신분의 굴레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세우고자 한 것”이라며 “아이들이 네팔의 미래를 일구는 동량으로 자라나길 바란다”고 축하와 격려의 말을 건넸다.

교실이 없어 흙바닥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분황초등학교가 생기기 전까지 마을 아이들은 벽도 없는 가건물과 지푸라기 따위로 만든 움막에서 공부를 해야만 했다. 수업 들을 곳을 찾아 이쪽 저쪽으로 옮겨 다니는 것은 예사였고 뜨겁게 내리쬐는 뙤약볕 아래서 뽀얀 흙먼지를 그대로 뒤집어써야 했다. 비라도 내리면 물이 괸 진흙바닥에서 오밀조밀 포대자루를 놓고 앉아 수업을 들어야 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그 상황에서도 배움을 위해 학교를 찾아오는 학생만 150명이 넘었다. 열악한 시설은 그 인원마저도 수용하지 못했다.

분황초등학교가 생기면서 마을엔 다시금 희망이 생겼다. 교실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낙후했던 기존 1칸짜리 교실은 보수 작업을 통해 낡은 옷을 버리고 새 옷을 입었다. 새로 지은 7칸 교실에 추가로 화장실, 도서관 등도 들어섰다. 책걸상과 칠판, 실링팬을 비롯해 책가방, 학용품, 도서, 식수 펌프 등도 갖췄다. 소식을 듣고 입학을 원하는 학생들도 늘었다. 150명이 모여 앉던 흙바닥은 이제 200명의 학생들이 각 학급의 교실에서 공부할 수 있는 쾌적한 배움의 터전이 됐다. 

지구촌공생회가 핍박받는 불가촉천민의 거주 지역에 도서관과 식수펌프까지 갖춘 교육 시설을 지원할 수 있었던 데는 무주상보시를 실천한 후원자들의 진심 어린 원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 이름을 '진흙에서 피는 연꽃'을 뜻하는 분황(芬皇)이라 지은 것도 불가촉천민들이 ‘천한 출신’에 속박되지 않고 교육을 통해 더 큰 세상으로 나가길 바라는 후원자들의 마음이 담긴 것이다.

후원자들의 추가 지원으로 도서관도 갖추게 된 분황초등학교.

후원자인 설매‧연취보살은 “부처님께서 살아계셨을 당시, 불평등 문제를 가장 많이 고민하셨다”며 “가난한 곳, 부자인 곳에서 나고 자람과 상관없이 누구든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설매 보살은 “가장 힘들고 어려운 곳에서 난 사람들일수록 좋은 곳에서 태어난 사람보다 더 양질의, 많은 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며 “진흙 속에 태어났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분황초등학교 아이들도 출신에 상관없이, 바르게 배워 제 위치에서 스스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성장하면 좋겠다”고 했다. 연취 보살 또한 “분황초등학교가 하나의 불씨가 돼 지구촌 곳곳에 보다 아프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는 아이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두 후원자는 그동안 불교신문을 통해 지구촌공생회의 국제개발사업을 관심 있게 지켜봐왔다고 했다. 지구촌공생회가 해외 아동 교육 사업을 시행할 때 단순히 시설을 지어주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현지 지역사회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꾸준한 모니터링을 통해 스스로 자립할 수있는 길을 틔워주고 있는 것에 대해 깊은 공감과 신뢰가 갔다고 했다. 두 후원자는 어느 정도 기금이 모아졌다고 생각했을 때인 지난해 5월, 월주스님과 처음 만난 자리에서 20여년 동안 모은 1억4500만원의 기금을 망설임 없이 지구촌공생회에 전했다.

스리마하락시미 초등학교를 둘러보는 월주스님.
지난 22일 스리아다샤 송명례학교를 방문한 시찰단.

설매 보살은 “부처님처럼 살고 싶어 하는 자비로운 불자들이라면 누구나 의미 있는 일에 동참하고 싶어 할 것”이라며 “스스로 일어서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이 있는 곳을 신중히 고려하고 선정해 물심양면으로 자립의 기반을 마련하고 또 그것을 지속적으로 살피는 지구촌공생회의 운영방침에 단번에 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분황초등학교 준공식 전날에도 이사장 월주스님은 사무총장 원광스님, 사무처장 덕림스님, 후원자 등과 함께 다딩 지역의 스리시데숄 공립학교, 룸비니 지역의 스리칼리마이 선원사초등학교, 스리아다샤 송명례학교, 스리마하락시미 초등학교, 스리파슈파티 영화초교 등을 차례로 방문,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신·증축, 보수된 건물들을 하나하나 둘러봤다. 바쁜 일정중에도 스리람자나키 공생관 준공식과 KACPTA 스리바그완풀 공립학교 개교식 행사도 빠지지 않고 챙겼다. 중앙‧동아일보 한겨레 연합뉴스 BTN BBS 등 언론사들도 취재에 나서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월주스님은 가는 곳마다 학교 운영위원회와 마을 사람들과 함께 교사들의 급여부터 양철 지붕 교체, 운동장 확보 등 시설 보수까지 구체적이고 시급한 지원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협상하고 논의했다. 올해로 세수 82세,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의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내는 월주스님은 “필요하다고 해서 무조건 지원을 하기보다 주민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이 지구촌공생회의 일”이라며 “지구는 한 가족, 하나의 일터라는 생각으로 사랑과 자비의 정신으로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계속해서 실천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월주스님이 영화초등학교를 방문, 준공 후 학교 운영을 점검하고 필요한 지원 등과 관련 지역주민들과 의견을 나누고 있다.
스리람자나키 공생관 학생들 .

무주상보시 실천한 분황초등학교 후원자

분황초등학교 도서관을 둘러보는 월주스님과 후원자들.

“아이들에게 우리가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게 없을까, 그저 막막하기만 합니다. 부처님 가르침대로 살아보고자 노력하는데 네팔 아이들이 우리에게 기회를 준 것 같아 오히려 고맙지요. 우리는 다만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실천으로 옮긴 것 뿐입니다.”

네팔 ‘스리나와두르가 분황초등학교’ 건립 기금으로 1억 4500만원을 선뜻 내놓은 두 후원자는 이름 밝히기를 한사코 거부했다. 아이들을 보자마자 왈칵 눈물부터 쏟은 설매 보살은 “우리가 대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하는 막막함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며 “운이 좋아 학교와 인연을 맺을 수 있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했다. 설매 보살과 35년 이상 수행도반으로 연을 쌓은 연취 보살은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렌다”며 “책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할 것 같다”고 감격해했다.

두 후원자는 분황초등학교 건립기금에 이어 7000여만원의 지진 피해 복구 기금도 망설이지 않고 냈다.아무런 집착도 없이 사심 없이 그저 베풀었다는 기금이 총 2억2천여만원이다. 지난 20년 동안 조금씩 모은 돈이다. 연취 보살은 “남편한테 월급타서 쓰는 가정주부가 무슨 돈이 있겠나”라며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덜 먹고 덜 입고 덜 쓰면 모아진다”고 했다. 평생 손톱에 매니큐어 한번 바른 적이 없다는 설매 보살은 택시도 타지 않고, 외식도 하지 않는다. 설매 보살은 “그때마다 할 수 있는만큼 조금씩 모았기 때문에 큰 금액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소중한 돈이 부처님 가르침 따라 사는데 뜻 깊게 쓰이면 불자로서 더 큰 기쁨은 없다”고 했다.

두 보살은 아이들 덕분에 소원풀이를 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사심 없이 진정성을 갖고 원을 세우면 언젠간 꼭 이뤄지는 것 같아요. '부처님처럼 살아가자'는 그 마음을 실천에 옮긴 것 뿐, 오히려 아이들에게 고마워해야죠. 이제 나이가 있는 만큼 앞으로 딱 10년만 더 봉사하고 싶어요. 아, 이것도 가족들에게는 ‘비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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