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일 앞둔 조계사에는

고급 승용차 몰고 기도하러 온

보살에서 쓰레기장을 뒤져가며

분리수거를 하는 사람들까지

다양한 군상들이 뒤엉켜 있다

 

그것이 화엄의 세계가 아닐까

함박 미소가 뒤엉킨 대웅전이…

 

초하루, 일을 하러 절에 갔다. 손수레를 끌고 불교용품점에 가서 1kg, 10kg, 20kg, 40kg 각자의 무게를 지닌 공양미를 싣는다. 공양미의 배꼽쯤에는 간절한 서원 문구가 씌어있다. 누구는 건강이요. 누구는 합격이며 또 누구는 사업 성취를 발원한다. 탈탈탈~ 손수레를 굴려 부처님 무릎 아래 공양미를 올리기 위해 대웅전 연화대로 향한다. 서원을 실은 손수레는 대웅전 옆 마당을 가로질러야 한다. 크지 않은 규모의 대웅전 주변은 안심(安心)한 눈빛을 가진 사람들로 가득하다. 수십 미터 밖의 도시와의 경계에서 몇 걸음 옮겨 일주문을 통과해 대웅전 심지(心地)에 닿은 사람들은 생존 투쟁의 긴장이 풀린 눈빛이다. 함박웃음이 피어난다.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사찰은 고요하고 장엄한 권위보다 형형색색의 난장이요, 도가니다. 생기가 끓어 넘치는 아우성이다. 한편에는 외국인들이 갈비뼈가 드러난 노숙자 형상의 부처님이 그려진 설산수도상 앞에서 통역과 ‘쏼라쏼라’다. 또 한편에는 6년 고행을 한 가짜 노숙인 부처님이 아니라, 진짜배기 노숙자들이 야외 연등 전시장을 차지하고 대낮부터 술타령이다. 살랑살랑한 흰 선녀 옷을 입은 한 무더기의 처녀들이 마당을 가로지르고, 아기 부처님을 목욕시키는 관불의식이 있는 곳에는 관광객과 아이들이 줄을 선다. 연등 이름표를 달기 위해 관리계 일꾼들은 높은 사각의 사다리를 타고 마당을 휘젓고, 한쪽 귀퉁이에서는 촛불 공양과 향불 공양을 하느라 불꽃이 일렁인다. 탑 주위로는 뱅글뱅글 탑돌이가 한창이고, 천 년을 이어온 앞마당의 예경 풍경을 찍느라 방송국과 스마트폰의 디지털도 빙빙 돌아간다.

대웅전 앞마당이 경건한 예불의 신성한 풍경이라면 뒷마당은 세상을 낮은 포목으로 살아내는 날 것들의 향기가 꿈틀댄다. 일당 7만 원짜리 일꾼들이 땀을 줄줄 흘리며 등짐을 지고 나르며, 한 달 130만원 월급의 79세의 불목하니 노인이 골고다 언덕을 오른다. 노인은 보란 듯이 40kg의 공양미를 지고 법당 안의 빼곡히 들어찬 신도들의 숲을 헤치고, 부처님의 발끝에 서원이 적힌 공양물을 부려놓는다. 대중공양을 하는 식당 옆, 온기가 오르는 부뚜막 옆에는 수년 전부터 뚝섬 보살이 노숙녀로 터전을 잡아 살아내고 있다.

세상의 영웅, 대웅전 주변에는 머리를 박박 민 동자 스님부터 고쟁이에서 꺼낸 꼬깃꼬깃한 돈으로 1kg 공양미를 올리는 노보살까지, 권력을 쥘 수 있는 주지 스님부터 반평생을 등짐과 새벽에 눈을 떠서 쓰레기만 만지고 살아야 하는 일꾼 노인까지, 고급 승용차에 자식들의 호위를 받는 보살에서 정신이 엇나가 자신만의 세상을 살아가는 정신이 혼미한 이들까지, 자본이 집약된 도시의 네온사인에서 작은 등 모여 세상을 밝히는 대웅전까지, 온갖 차별이 잡탕처럼 들끓어도 스스로 암묵의 질서를 지켜내는 생명이라는 이름의 사람들… 저마다의 꽃을 피우느라 대웅전 주변은 화당당둥당이다.

손수레를 끌고 뒷마당에 짐을 부려 놓는다. 법당 안 부처님 발끝에 닿기 위해 등짝으로 짐을 옮겨진다. 법당 안은 엉덩이 하나 돌릴 틈 없다. 대웅이라는 그분, 발끝에 가까울수록 검은 매직으로 간절히 쓴 발원들은 쟁쟁하게 그분에게 들리려나?

오히려 도가니로 들끓는 앞마당 뒷마당의 화당당둥당한 사람들의 생기가, 경계를 놓은 화엄의 함박 미소들이 옹기종기 모여 대웅이, 진짜배기 큰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불교신문3203호/2016년5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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