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집에 들어가기가 아쉬운 오후였다. 나는 낙산 성곽길로 접어들었다. 꽃향기에 취하다보니 어느 새 장수마을에 닿았다. 다리쉼을 좀 할까 하는데, 할머니 두 분의 이야기가 귀에 들려온다. “요새 장이 안 좋아.” 한 할머니가 걱정스런 얼굴로 말씀을 하신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할머니가 “안 아픈 데가 어디 있어? 늙으면 다 그렇지”하면서 받아치셨다. 나는 두 분의 이야기에 흥이 동하였다. “아니, 장이 탈나 죽겠으니 하는 말이지.” ”왜, 똥이 안 나와?” “그전에는 그렇더니만 요샌 똥이 질질 샌다니까. 아주 고약해 죽겠어.” “하이고, 똥이 안 나와도 걱정, 똥이 나와도 걱정. 오래 살면 뭐해, 이렇게 앓다가 간다니까.” 두 할머니의 대화는 여기서 멈추었다. 두 분은 들고 있던 비닐봉지를 들고 자리를 옮기셨다. 저만치 쑥이 제법 올라와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날 밥상에는 쑥이 한 다발 올라왔으리라.

나이가 들면서 느는 것은 괜한 걱정이다. 아프면 아픈 대로, 괜찮으면 괜찮은 대로 걱정이다. 백세시대라고 하는데 과연 잘 살 수 있겠는가. 살아서 좋은 게 아니라, 내 발로 잘 다닐 수 있으면 좋은 것이다.

연초, 나의 아버지도 장이 탈나 고생을 하셨다. 치질인 줄 알았던 것이 대장암으로 이어진 것이다. 평생 병원 한 번 안 갔다고 자부하던 분이 병상에 누워 있자니, 참으로 기가 찼다. 나이가 들면 들고 나는 것이 잘 안 된다고 하던데 어느 새 우리 아버지도 그 축에 낀 것인가. 장수마을에 살아서 좋을 일만 있을 할머니들도 그러한데 하물며 외딴 촌로야.

옛날에 장자(壯者)는 ‘익생(益生)’이라고 하여 삶에 무얼 더 보태는 것을 경계했다. 자연이 주는 만큼만 받아서 살아야지 그 이상 의미를 두는 것은 욕심이라는 것이다. 하지 않아도 될 생각을 하는 것도 익생이요, 더 좋게 바라는 것도 익생이다. 그래서 그러한가.

아버지는 더 살자고 하는 게 아니었는데, 왜 이제와 더 살기를 바라도록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눈시울을 붉히셨다. 결국 사람이란 자연을 따르면 무심해진다고 하지만, 막상 남은 삶을 생각하면 여러 생각이 밀려드나보다. 돌아오는 길에 정각사를 다시 들렀다. 난 무얼 깨달았을까. 장수냐, 건강이냐, 어느 것 하나 주워 담지 못한 내게 봄은 밀려들었다.

[불교신문3203호/2016년5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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