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 조아린 코끼리

코끼리 이마를 쓰다듬는 부처님.

경전에는 부처님 위신력에 대한 일화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술 취한 코끼리 날라기리의 조복(調伏)이다. 불교미술에서는 부처님께서 한 손을 내밀어 코끼리 머리를 어루만지는 모습으로 주로 표현된다. 이런 내용은 <불소행찬> ‘수재취상조복품(守財醉象調伏品)’, <불본행경> ‘항상품(降象品)’이나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파승사> 제19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코끼리를 조복시키는 방법이 다르긴 하지만 제바달다가 부처님을 해하려고 술 취한 코끼리를 풀었고, 코끼리가 부처님께 조복했다는 큰 줄거리는 동일하다.

<불소행찬>에서 제바달다는 부처님에 대한 질투에 눈이 멀어 왕사성 큰 길에 술 취한 코끼리를 풀었다. 코끼리가 거리를 누비며 사람을 죽이고 해친 탓에 성안에 모든 이들이 두려워 집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 때 대중과 탁발에 나선 부처님이 왕사성으로 향했다. 숨어 있던 사람들은 부처님을 보자, 코끼리의 만행을 전하며 성으로 들어가지 말 것을 청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두려움 없이 코끼리를 향해 갔다. 모든 비구들이 도망쳐 피했으나 오직 아난만이 부처님 곁에 서 있었다. 미쳐 날뛰던 코끼리는 부처님을 보자마자 마음이 깨어나, 발아래 꿇어 엎드렸다. <불본행경>에서도 제바달다가 아자타삿투왕과 모의해, 빔비사라왕을 독살하려 하고, 자신은 코끼리에 진한 술을 먹여 길에 풀어 부처님을 죽이려고 했으나 부처님께서 코끼리를 어루만져 조복시켰다고 전한다.

<근본설일체유부비나야파승사>는 좀 더 구체적이다. 아자타삿투왕이 날라기리, 한역으로는 호재(護財)란 이름의 코끼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늘 술에 취해 사람들을 해쳤다. 이를 안 제바달다가 코끼리 다루는 사람을 꾀어내 부처님을 밟아 죽이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아자타삿투왕을 찾아가 “내가 너의 아버지를 죽여 지금의 네가 왕이 될 수 있었다”며 자신에게 협조할 것을 명했다. 부처님께서 왕사성에 들자 날라기리가 부처님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 때 부처님은 오른손으로 변화를 일으켜 다섯 마리의 사자를 만들었다. 이어 부처님은 불을 놓아 부처님 발아래만 시원하고 다른 곳은 뜨겁게 만들었다. 이리저리 달리던 코끼리가 시원한 부처님 곁으로 다가가자 부처님께서 코끼리 머리를 쓰다듬어 두려움을 없애줬다는 내용이다.

술 취한 코끼리를 조복시킨 부처님의 모습은 인도를 비롯해 동아시아 전역에서 조각이나 벽화로 표현됐으며, 팔상도의 한 장면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고정은 박사는 ‘불전미술에 나타난 술 취한 코끼리를 조복하는 붓다도의 성립과 전개’에서 “술 취한 코끼리를 조복하는 붓다에 관한 작품은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에서도 그 이례를 찾아볼 수 있다”며 “불교미술의 기원과 전파를 추적해 문화적 양상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하고 있다.

[불교신문3203호/2016년5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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