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승가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원로회의(마하테라싸마콤)가 제 20대 승왕(쏨뎃프라쌍카랏)으로 추대한 쏨뎃프라마하랏차망칼라짠에 대한 임명 지연건으로 불교계가 진통을 겪고 있다.

태국에는 국왕이 승려들에게 성직을 수여하고 있는 데 쏨뎃프라마하랏차망칼라짠은 성직이며, 그의 속명은 추엉이라고 한다. 쏨뎃은 성직 중 가장 높은 직위를 의미하는 데 속명과 더불어 쏨뎃 추엉이라고 일반적으로 불리고 있다.

임명이 지연되고 있는 표면적인 이유는 쏨뎃 추엉이 고급차(1953년 모델 메르데스 벤즈)를 구입하고 탈세 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일부 승려들이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쏨뎃 추엉은 이 자동차는 선물로 받아 그가 주지로 있는 왓 빡남의 박물관에 보관 중인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현재 그는 이 사건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중이며, 쁘라윳 짠오차 총리는 불교계 분쟁이 가라 앉지 않으면 국왕에게 승왕 임명승인을 요청하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태국 승왕은 국왕이 일방적으로 임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1992년 승가법부터 그 내용이 개정되었다. "승왕의 직이 공석일 때 총리는 쏨뎃프라라차카나 중 성직을 받은 기간이 가장 오래된 인물의 명단을 원로회의의 동의를 얻어 국왕에게 제출해 임명승인을 받는다."

태국에는 국왕이 고위직 승려들에게 성직위계(싸마나싹)를 수여하는 데 쏨뎃프라라차카나는 가장 높은 직에 있는 원로승려들이다. 쏨뎃프라라차카나 중 성직을 받은 기간이 가장 오래된 인물이 직무를 수행하지 못할 때 총리는 원로회의 동의를 얻은 차 순위의 쏨뎃프라라차카나를 국왕에게 추천해 승인을 받아서 승왕에 임명한다. 이는 국왕이 일방적으로 임명했던 과거와 달리 승왕 임명에 있어서 원로회의의 권한이 증대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법에 따라 원로회의에서 쏨뎃 추엉을 차기 승왕으로 동의했으나 총리는 국왕에게 승인과정을 밟지 않고 있는 것이 현 상황이다.

이번 사건 발단의 제공자는 프라 풋타 잇싸라 라는 승려이다. 그는 2013년말과 2014년 초에 걸쳐 벌어진 잉락 친나왓 전 총리 퇴진 운동을 이끌었던 노란색 셔츠 정치세력 지도부의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쁘라윳 짠오차 총리에게 승왕 임명 반대 탄원서를 제출했으며, 쏨뎃 추엉의 고급차 구입에 탈세 의혹을 제기하고 정부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쏨뎃 추엉 지지파들은 이 사건은 특별히 부정부패가 연루된 사건이 아니라 사소한 이슈거리에 불과한 것이니 조속히 승왕을 임명하라는 입장이다. 이들은 이미 원로회의 동의을 받은 후보인만큼 총리는 요식행위인 국왕 임명승인을 받기만 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지 않고 있는 것은 정치와 종교 분리원칙에도 어긋나는 것이며, 탁씬 총리와는 앙숙지간인 쁘라윳 총리의 정치적 의도도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사실상 프라 풋타 잇싸라의 의혹 제기는 표면적인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핵심은 쏨뎃 추엉이 탐마까이 사원(왓 프라 탐마까이) 주지와 가까운 사이이고, 2006년 쿠데타로 쫒겨난 탁씬과도 가깝다는 사실에 있는 것 같다. 특히 탐마까이 사원 주지인 탐마차요는 과거에 왓 빡남에서 쏨뎃 추엉을 계사(戒師)로 삼아서 비구계를 받은 적이 있을 정도로 각별한 사이인 것은 분명하다. 

탐마까이 사원은 태국에서 가장 번창하는 사원이다. 1980년 초 이래 중산층, 학생, 사업가, 군 장성, 은행간부, 왕족, 일부 원로승려들로부터 후원을 받아 부와 세력면에서 급속한 성장을 했다. 탐마까이에 대한 가장 중요한 비난 중 하나는 상업성이다. 전 총리인 큭릿 쁘라못은 "탐마까이 사원은 행복을 파는 오락시설이나 레저 공원처럼 실제로는 '종교적 즐거움'을 파는 사업을 한다"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탐마까이는 이단이 아닌가' 라는 의문이 수 차례 제기 되었지만 오늘날 태국에서 가장 번창하는 불교운동이 되고 있음도 사실이다.

눈 여겨 볼 것은 탐마까이 사원의 30만명이 넘는 신도수와 엄청난 사회적 영향력이다. 프라 풋타 잇싸라는 탐마차요의 각 종 비리에 대해서 쏨뎃 추엉뿐 아니라 원로회의에서도 적절한 처벌을 내리지 않은 데 대해서 책임 질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쏨뎃 추엉과 탐마차요의 특수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부터 탐마차요는 클렁짠 신용협동조합 횡령사건 용의자로부터 10억 바트를 기부 받았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중이다. 프라 풋타 잇싸라는 절반 이상의 원로회의 위원들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들도 모두 탐마까이 사원과 가깝고 금전적인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사건은 상업주의화 되어 가는 태국승가의 치부를 드러낸 측면도 일부 있다고 할 수 있다. 태국의 급속한 경제발전은 불교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 이래 승려들은 점차 소비와 상업활동에 관련되었다. 태국 유명 불교학자인 쑬락 씨와락은 승려들이 소비문화에 길들여진 재가신도를 따르기 때문에 점차 타락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많은 불교학자들은 불교의 상업화가 승가내의 도덕적 타락과 각 종 스캔들을 초래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태국의 NIDA(National Institute of Development Administration)가 2015년 2월 초 실시한 불교개혁관련 설문조사에서는 승려들의 비행과 파벌다툼을 이유로 들어 불교개혁에 동의하는 비율이 80%에 육박했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이 사건에 정치적 의도가 개재된 것도 부인할 수 없을 듯하다. 프라 풋타 잇싸라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노골적으로 탐마까이는 탁씬의 정치적 도구라고 주장하고, 탁씬이 탐마까이를 통해서 불교계를 장악하려는 불순한 의도를 갖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하지만 2006년 쿠데타로 물러나 망명 중인 탁씬의 영향력이 현재도 유효한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많다. 아무튼 불교계 일각에서는 탐마까이 사원의 급속한 정치, 종교적 성장세를 견제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2006년 쿠데타로 탁씬 전 총리가 물러난 이후 태국 사회는 크게 분열되어 있다. 태국 양대 정치세력을 표현할 때는 노란색 셔츠와 붉은 색 셔츠로 분류한다. 이들은 주로 반 탁씬과 친 탁씬 세력을 대표한다. 반 탁씬 세력은 군부, 관료, 중산층, 왕정지지 기득권 세력들이며 지역적으로는 방콕을 중심으로 하는 중부와 남부의 지지를 받는다. 친 탁씬 세력은 동북부와 북부 농민과 도시빈민들이다. 이러한 지역적, 계급적 분열 외에 이번 사건같이 불교계에서도 그 분열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 우려된다.

 

 

 

 

부산외국어대학교 동남아창의융합학부 교수 김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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