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판자집 집성촌에 걸려있는 기저귀.

대한민국 같은 선진국에서 태어나, 우리만의 문화와 교육에 길들여져 있는 우리는 다른 나라와 문화, 그 사람들을 이해하기란 너무나도 어려운 것 같습니다. 우리는 쉽게 그들의 행동을 우리의 가치관으로 생각하고 옳다, 그르다 판단합니다. 제가 필리핀에 온 것도 어느덧 6년 차, 그들과 함께 활동하고 생활하는 저는 이제 어느 정도 필리핀 문화와 언어, 그리고 사람들도 잘 알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또 한 가지의 일로 인해 충격과 동시에 반성하게 됐습니다.

일회용 종이 기저귀를 몇 번이나 빨아 재사용한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저는 옛날 우리 아버지세대와 같은 어른들은 천으로 된 기저귀를 빨아 쓰곤 했다는 말을 부모님을 통해 듣곤 했지만 전혀 공감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경제가 어려웠구나. 기술이 발달한 지금, 이 세상에 그런 사람들은 없을 거야”라고 생각하고 흘려들었습니다.

문제의 발단은 저의 어설픈 추측과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끼니를 먹기도 힘든 필리핀 사람들도 다 일회용 기저귀를 쓸까? 아마 단수 때문에, 혹은 일 때문에 천으로 된 기저귀는 빨아 쓰기가 힘들 뿐더러 여름이라 위생상 너무 더러워서 그럴 수도 있겠다.” 또 살짝 낭비벽이 심한 필리핀 사람들 성격 때문이라고 이해하는 척하며 대충 판단하고 그 뒤로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오늘 약 300명을 상대로 무료급식을 시행한 이곳은 낭떠러지 개울가 옆으로 생겨난 판잣집 집성촌이었습니다. 약 2000세대가 살고 있는 이곳은 주변에 쓰레기 매립지가 있는 것 뿐만 아니라 비가 많이 오면 개울이 넘쳐 집이 쓸려가 사람이 죽곤 하는 곳이었습니다. 가정방문을 했을 때 저는 보았습니다. 빨랫줄에 겹겹이 널려있는 종이 덩어리 같은 것을….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생선이나 과일 같은 것을 말리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가까이 가서 보니 그것은 바로 디자인 캐릭터들도 희미해지고 색깔은 때가 탄듯 회색빛이 도는 기저귀였습니다. 저는 머리를 한대 세게 맞은 듯 했습니다. 여태까지의 경험을 통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도 어림짐작하고 공감하는 척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선 다 이해한다는 듯 행동하고 봉사했던 지난날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사람을 겪어보기 전까진 그 사람을 모르듯 다른 나라의 문화와 사람들 또한 그러하다는 것과 고정관념의 틀을 깨야 그 외의 것들도 보인다는 것을 느끼게 된 날이었습니다.

[불교신문3201호/2016년5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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