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국왕도

출가를 한 전통을 가진 나라다

죽음의 문제에 불교계가

망설일 필요는 없다

타종교가 하지 못하는 일

출가 입산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면

한국불교는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되지 않을까?

평균 수명이 80세를 넘기면서 우리 사회에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우선 제2의 인생을 적극적으로 맞는다. 과거처럼 은퇴 이후 우왕좌왕하거나 멍하게 있는 경우가 드물다.

문단에도 은퇴 이후에 글을 쓰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문학에 소양이 있었으나 직장생활이나 가사에 쫓겨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은퇴 이후 꿈을 실현하기 위해 나선 사람들이다. 이들은 각종 평생교육 과정에 등록해 시나 산문의 창작 실기를 공부한다. 문예지의 신인작품 모집에 응모하거나 개인 저서를 내며 작품 활동을 한다. 또 한 가지, 종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나이가 들면 종교와 예술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독실한 불자였던 나의 직장 선배는 은퇴 후 출가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조계종에는 연령 제한이 있어 타 종단 지방 절의 주지 소임을 맡았지만 오래 하진 못했다. 고령자 출가가 제도적으로 보장돼 있었다면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요즘 교계에는 출가자 수가 줄어 걱정이라고 한다. 이러다가 스님 없는 절이 나오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왜 출가 연령을 제한하는지 관계자에게 물어보았다. 고령자 출가를 허용하면 절이 요양원이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것이 문제일까?

만일 고령자 출가를 허용한다면 평생 모은 정재(淨財)를 희사하고 승려로 일생을 마감하고자 하는 불자들도 많지 않을까? 대학은 거액의 기부를 받는데 왜 절은 그러지 못하는가? 또한 고도의 지식이나 주요 직책으로 국가나 국제 사회에 봉사한 이들의 출가도 있을 것이다. 요즘 실버타운 사업이 날로 번창해가고 있는데, 실버타운 보다는 부처님 품 안에서 수행의 노년을 보내며 생을 마감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을 수 있다.

인도의 캘커타는 빈민이 많고 거리에서 죽어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마케도니아 출신 수녀가 캘커타에 와서 한 일은 임종의 집(Home for Sick and Dying Destitutes)을 만든 것이었다. 의지할 곳 없는 노인 병자를 받아들여 그들이 편히 죽어갈 곳을 마련해 준 것이다.

1981년 5월, 테레사 수녀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나는 명동성당 주교관에서 생방송 인터뷰한 적이 있다. 맨발이었고 손은 거칠었다. 김수환 추기경이 인터뷰를 그만하자고 말할 때까지 내내 머리를 숙이고, 물어보는 말에만 단문으로 대답하던 150cm 단신의 여성. 노벨평화상을 받고, 사후 로마 교황청이 성인으로 추대한 당시 71세 수녀였다.

종교가 죽음을 직시하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수용할 때 발휘하는 힘은 실로 엄청나다. 인간의 일대사 가운데 가장 큰, 최종의 것이 죽음이기 때문이다. 테레사 수녀 개인이 발휘한 힘은 세상을 움직였다.

우리나라는 국왕도 출가를 한 전통을 가진 나라다. 죽음의 문제에 불교계가 망설일 필요는 없다. 타종교가 하지 못하는 일, 출가 입산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면 한국불교는 엄청난 힘을 발휘하게 되지 않을까? 웰다잉(Well Dying), ‘잘 죽는 것’이 큰 관심이 되고 있는 21세기의 한국에서 가장 이상적인 종교로 갈채를 받지 않을까?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밝힌 은퇴 특수출가제도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공청회 등으로 아무쪼록 잘 갖추어진 제도가 마련되길 바란다. 거사와 보살들의 마지막 회향처이자 고급 인력들을 받아들이는 교계의 ‘윈윈’이 됐으면 한다.

[불교신문3200호/2016년5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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