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준게 얼만데…기대가 배신을 만듭니다

우리는 배신을 느낀 대상으로부터

무엇인가 얻기를 그렇게 간절히

기대하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애인은 간절한 기대에 응답할 수 있는

여력을 갖고 있지 못했던 것입니다

안해준 것이 아니라, 못해준 것입니다

 

그 시간은 진짜입니다

그 시간 동안 당신의

아름다운 모습 또한 진짜입니다

 

“4년 사귄 애인이 저를 배신하고 다른 사람에게 가서 너무 힘듭니다. 저보다 연하인 친구라, 그 친구가 취업준비하며 공부하는 동안 제가 뒷바라지도 많이 해줬습니다. 정말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다 얘기하긴 구질구질하고 힘든데, 간단하게 얘기하면 어떻게 우연히 애인 핸드폰을 보다가 다른 남자와 친근해 보이는 대화내용이 있어 추궁하게 되었고요. 결국엔 다른 남자가 생겼다고 실토를 했습니다. 학원 다니면서 만난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제가 준 돈으로 학원 다니면서 사실은 바람피우러 다녔던 거라니 정말 황당하고 말도 안 나옵니다. 게다가 그 남자는 능력도 없어 아직까지 취업을 못했고, 데이트비용 같은 건 오히려 여자가 부담하면서 만난다고 합니다. 저를 이용한 것도 모자라, 만나려면 그럴듯한 남자를 만날 것이지 그런 한심한 인간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정말 분노로 몸이 떨릴 정도입니다. 정말 이런 감정이 심해질 때면, 찾아가서 애인과 그 남자 놈을 죽이고 싶어집니다. 니들 둘이서 어떻게 내 인생을 이렇게 농락하고 놀림거리로 만들 수 있냐고 말이죠. 게다가 여자친구 태도도 엎드려 사과하기는커녕, 그러한 상황이 드러나자 오히려 태도가 차가워지며 저를 귀찮아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것도 너무 괘씸합니다. 내가 자기에게 해준 게 얼만데 정말…. 전 아직도 힘듭니다. 어떻게 해야 될까요.”

 

안녕하세요. 가슴이 너무 아프시겠습니다. 그렇게 정성을 다한 상대가 질문자님을 떠나게 되었으니 정말 가슴이 찢어지시겠어요. 죽이고 싶을 만큼 전 애인분이 미우시다니, 죽어도 좋을 만큼 전 애인분을 사랑하셨군요. 부디 그 간절함만을 한번 다시금 기억해보세요.

너무나 간절한 일이었습니다. 죽을 만큼, 즉 우리의 삶을 전부 걸 만큼 그 여자분과 함께 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여쭈어보겠습니다. 전 애인분과 함께함으로써 질문자님은 어떤 걸 얻고 계셨나요? 함께하는 동안 어떠한 느낌을 갖고 계셨나요? 어떠한 자신의 모습이 된 것 같으셨나요? 질문자님의 간절함이 가닿아야 할 곳은 바로 이 물음들이 대답되는 자리입니다.

우리의 배신을 만드는 것은 우리의 기대입니다. 기대라는 것은 무언가를 상대로부터 얻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배신을 느낀 대상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기를 그렇게 간절히 기대하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특정한 대상을 통해 얻고 싶었던 그 무엇을 발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걸 알아야 얻을 수 있으니까요. 우리가 간절한 마음을 담아 4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쓴 연애편지가 정말로, 정말로, 그 고백에 대해 화답될 수 있는 정확한 과녁에 닿을 수 있으니까요.

바꾸어 말하면, 질문자님의 전 애인분은 질문자님의 간절한 기대에 응답할 수 있는 여력을 갖고 있지 못했던 것입니다. 안 해준 것이 아니라, 못해준 것입니다. 못해줬기 때문에 미안함과 자책감을 느껴 질문자님을 냉정하게 대하게 된 것입니다. 그 얘기는, 할 수만 있다면 해주고 싶었다는 것이죠. 자책감 또한 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을 때만 느끼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받고 싶었는데 못 받은, 주고 싶었는데 못 준, 가슴 아픈 두 사람만 있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질문자님을 바보로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질문자님의 정성 자체를 놀림거리에 불과한 한심한 일들로 만들고 있는 것은 질문자님 본인이십니다.

질문자님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물을 찾아 누군가와 함께 마시려고 4년 동안 우물을 파고 계셨는데, 어느 순간 그 물을 마시게 해주고 싶은 자가 떠나갔다고 해서 질문자님의 그 모든 시간이 그저 바보 같은 일에 지나지 않게 되나요? 정말로 4년 동안 우물을 정성스레 파고 있던 한 인간의 뒷모습을 그저 우스꽝스러운 놀림거리로 만들고 싶으신가요?

그 시간은 진짜입니다. 그 시간 동안의 질문자님의 아름다운 모습 또한 진짜입니다. 그리고 질문자님이 누군가에게 마시게 해주고 싶었던 그 맛있는 물은, 질문자님 또한 너무나 간절히 드시고 싶었던 바로 그 물입니다. 스스로 시원하게 들이키세요. 그리고 이제 본인이 더는 물을 찾아야 하는 자가 아니라, 물을 갖고 있는 자라는 사실을 확인해보세요. 모두가 물을 찾아 서로를 거듭 떠나가는 이 외로운 사막에서, 질문자님은 가장 사랑받는 자가 되실 것입니다.

[불교신문3200호/2016년5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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