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오신날을 기리는 때에 나는 정말 좋은 선물을 받았다. 벽당 김영준(碧堂 金榮俊) 시인이 <그대를 위하여>라는 이름으로 엮은 시집을 내게 준 것이다. 김 시인은 1938년생이다. 팔순을 앞둔 원로문인으로 부산 문단의 버팀목이다.

평소 그의 고결한 인품과 시심(詩心)의 저변에 녹아있는 불심(佛心)을 흠모한 터라 보내온 시집은 반갑고 고맙기 그지없다. 그는 1963년 <현대문학>지에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등단한 이래 <내심의 소리>(1975년), <빛의 탄생>(1985년), <마른 풀잎의 이야기>(1990년), <흙의 노래>(1993년), <반야의 푸른 하늘>(2002년), <거짓의 미학>(2006년), <어둠은 지하철을 타고>(2009년), <허수아비의 꿈>(2014년) 등 8권의 시집과 시선집 <바람부는 들녘에서>(1998년)를 펴냈다.

인생의 굽이마다 자신의 삶과 사유를 읊었다. 시집 제목에서 보듯 불심을 엿볼 수 있는 시도 많다. “힘겹게 적막을 껴안고/긴 세월 백팔번뇌를 앓고 있다/삶의 무거움 온 몸에 짊어진 채/하늘 받쳐 이고/열반을 꿈꾸는 사리탑 보면서/차갑게 나뒹구는 가랑잎/애처롭게 어루만지는 솔바람 소리에/대웅전 본존불의 평화로운 미소/오늘이란 진부한 시간 지나면/밝고 깨끗한 햇살이/미래를 풍요롭게 안겨주듯이/세파에 지치고 인연에 멍든/상처받고 괴로운 그대 마음/자비의 손길로 맞아주고 있다.”(‘범어사 일주문’ 전문)

이번 시집을 내면서 벽당 선생은 자서(自序)에 이렇게 썼다. “만나면 웃고 떠들며 평생 시를 사랑하고 문학을 아끼던 친구들이 근래에 하나 둘 이승을 하직하고 있다. 그들이 앉았던 자리가 텅 비니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울컥 가슴을 친다. 20대부터 이 지역에서 삶과 문학을 논하고 희노애락 속에서 우정을 나누었던 그 값진 시간을 돌이켜보니 생의 무상을 느낀다. 떠나버린 친구를 그리며 시를 쓰고 문학을 이야기하고 공부하는 시간이 나에게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을 얼마나 복된 일인가라고 자문해 본다.” 벽당 선생은 나에게 이렇듯 긴 여운을 주고 있다.

[불교신문3199호/2016년5월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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