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강의

본원스님 지음/ 부다가야

바로 앞에서 강의하듯

쉽게 풀어쓴 ‘명저’

다양하고 풍부한 경전

선어록 곁들여 입체적 해설

법문하며 SNS 통해

금강경 지혜 전하려 노력

“무위법을 알려면 변하지 않고 항상하는 참마음으로부터 먼저 알아야 합니다. 무엇이 참마음일까요? 사실 자기가 만날 가지고 있고 있던 겁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본래 가지고 쓰고 있던 것이지요. 임제선사는 <임제록>에서 참마음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습니다. ‘도 배우는 이들이여 지금 바로 눈앞에서 호젓이 밝고 역력하게 듣고 있는 이 사람은 어디를 가나 걸림이 없고 시방법계를 꿰뚫어 삼계에 자유 자재하니, 온갖 차별된 경계에 들어가도 휘말리지 않는다. 한 찰나에 법계를 뚫고 들어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말하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말하며,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말하고, 아귀를 만나면 아귀를 말한다. 어느 국토를 가든지 거기에 노닐면서 중생을 교화하나 단 한 번도 일념을 떠난 적 없고 곳곳마다 청정하여 시방법계에 빛이 사무치니 만법이 한결같다.’”

‘금강경 강의’를 펴낸 본원스님이 주석하는 성불사에서 금강경에 대해 들려주고 있다.

“<금강경>의 전체적 내용은 1분(分)은 상근기를 위한 설법을 하고 있으며, 2분~8분은 중근기를 위한 설법을 하고 있고, 9분~16분은 하근기를 위한 설법을 하고 있습니다. 경의 후반부인 17분에서 마지막 32분은 공성(空性)을 깨달은 뒤 불지(佛地)를 향해 나아가는 지위(地位)를 밝히고 있습니다. 먼저 이렇게 금강경의 구성체재(構成體裁)를 염두에 두고 공부해 나가면 훨씬 더 이해하기가 쉬울 겁니다.”

본원스님이 펴낸 <금강경 강의>는 친절하다. 마치 스님 앞에서 강의를 듣는 듯 생생하고 구체적이다. 책만 보고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쉽고 자세한 설명을 붙이고 있다.

그리고 근거 자료가 풍부하다. 금강경이 다른 경전과 어떤 연관을 갖는지 다양한 ‘텍스트’를 동원한다. 가령, 7분에서 무위법(無爲法)을 설명하는데 <임제록> <마조록> <방거사어록> 등 다양한 선적(禪籍)을 끌어들여 설명한다. 특히 스님이 금강경과 더불어 수행의 나침반으로 삼고 있다는, 영명연수선사의 <만선동귀집(萬善同歸集)>도 자주 인용한다. 이 책 한권으로 수십 권의 경전과 선어록을 함께 맛보는 혜택을 얻는 것이다.

스님이 많은 텍스트를 동원할 수 있는 까닭은 풍부한 공부 덕분이다. 1987년 해인사에서 능관스님을 은사로 득도한 본원스님은 해인사 강원, 동국대 불교대학을 졸업했으며, 고운사 불국사 도성암 선원에서 정진해 ‘문자 공부’에 머물지 않고 직접 체험해 ‘자신의 공부’로 만들었다. 게다가 수행의 길에서 방황하고 힘들 때 금강경은 한 줄기 빛이었다. 육조혜능이 ‘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이 난다(應無所住 而生其心)’는 금강경 구절을 듣고 깨치고, 금강경에 달통했던 덕산선사가 ‘금강경에 ‘과거심불가득, 현재심불가득, 미래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 現在心不可得, 未來心不可得)’이라는 말이 있는데 어느 ‘마음에 점(點心)을 찍겠나’라는 떡 파는 노파의 물음에 마음공부에 매진했던 것처럼 본원스님도 금강경이 1000년의 어둠을 깨트린 빛과 같았다. 스님은 “방황할 때 수행의 나침반이 금강경이었다. 그 방황은 내 스스로 만든 허깨비였음을 알았다”고 말했다. 전통 강원, 동국대를 졸업한 수좌가 <금강경>을 그 때 처음 볼리는 없을 것이다. 마장(魔障)이 치열하게 정진한 공부인에게 찾아오듯 스님의 방황도 한 단계 올라서는 진통이었을 것이다. 그러했기에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금강경이 한 줄기 빛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래서 스님은 신도들에게 금강경을 독송토록 한다. 본원스님이 주석하는 경주 성불사는 금강경독송도량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독송에 머물지 않고 SNS를 이용해 좋은 구절을 보내주고 질문에 답도 한다. 금강경에 대한 해박하고 마음에 닿는 법문으로 다른 사찰이나 모임에서도 스님을 자주 찾는다. 스님은 “새벽3시 기상하여 6시까지 정진하고 낮에는 법문하고 의식집전하며, 밤에는 원고 쓰는 똑같은 일과를 되풀이 한다”고 말했다.

금강경 32분 중에 핵심은 어느 분(分)일까? “17분 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이 핵심이다”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책에서 스님은 “17분을 5000독을 하고서야 알았다”고 했다. ‘법이 있어서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것이 아니다, 장엄이 장엄이 아니라’는 ‘난해한’ 구절 가득한 곳이다. 스님은 이 어려운 구절이 말하는 핵심을 ‘보살도’라고 정의했다. “비록 공성을 증득한 아라한과에 도달해도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과거의 습기와 미세한 번뇌 망상은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습기와 미세한 번뇌 망상을 도대체 어떻게 항복 받아야 할까요? 부처님께서는 그 해답으로 ‘일체중생을 멸도하고 나서는 실로 한 중생도 멸도된 중생이 없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일까요? 청정한 아라한과의 경계에 머물지 말고 당시 중생들의 삶 속으로 뛰어들어 6바라밀의 보살도를 실천하면서 성성히 깨어있는 마음을 여의지 않는 관조의 힘을 기르면 그 깊은 관조의 힘에 의해서 자기도 모르게 튀어 나오는 습기들을 꿰뚫어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보살도는 인생의 지혜이며 갈 길이기도 하다. 왜 금강경이 보살도를 강조하는지 책은 곳곳에서 보여준다.

[불교신문3193호/2016년4월1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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