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4ㆍ13국회의원선거는

특정 종교계의 이익을 위해

광적으로 활동해온 인사들의

당선이 유력해 보여 우려된다

 

종교갈등으로 인한 상처가

치유되려면 10년이 아니라

여러 세기가 걸릴 것이다

 

흔히 선거를 일러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헌법에서 ‘민주공화국’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지만, 이 ‘꽃’에서 향기와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했던 세월이 길었다. 이 ‘민주주의 꽃’이 제대로 피어나는데 그만큼 어려운 시절을 거쳐야 했던 것이다.

이제 세상이 바뀌고 돈과 권력에 좌우되던 선거의 폐해도 많이 사라졌지만, 솔직히 선거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고 ‘민주주의의 꽃’이 되어 멋과 향을 동시에 전해준다고 믿기 어렵다.

좋다. 정치의 속성이 그렇다고 치자. 공천 과정에서의 반(反)민주적인 행태에 대해서도 눈감아 주기로 하자. 그러나 최소한 선거가 ‘치유 불가능한 갈등’을 일으키는 일만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치유 불가능한 갈등’이 무엇인가.

공천과정에서 으르렁대던 이들일지라도 이해관계에따라 다시 동지가 되어 한 정당에 몸을 담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선거과정에서 생긴 지역 갈등의 골을 메우는 데에는 아주 오랜 세월이 걸리는 것을 지난 수십 년 동안 지켜보았다. 이제 지역 갈등의 골은 상당히 다듬어져서, 이번 총선에서는 새로운 희망을 보여줄 것 같아서 참으로 다행이다.

그러나 선거에 종교가 개입돼 ‘종교 갈등’의 씨앗을 뿌리게 되면 그것이 싹을 틔우고 자라서 그야말로 기하급수적으로 그리고 매우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면서 온 나라를 ‘갈등의 수렁’으로 끌고 들어갈 수도 있다.

과거 동유럽 지역에서 가장 살기 좋은 편에 속하던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해체 과정에서, 이 ‘종교 갈등’이라는 심지에 휘발유를 끼얹고 거기에 불을 붙인 극단주의 정치인들이 일으킨 내전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던가. 한 마을에서 평화롭게 살면서 같은 초등학교에서 함께 장난을 치고 수업을 듣던 아이들이 그 ‘불’에 휩싸여 서로 총을 쏘아대고 한 교실에서 공부를 하던 여자들을 성폭행하면서도 아무런 죄의식을 갖지 않게 했다. 이 상처가 완전히 치유되려면 10년이 아니라 여러 세기가 걸릴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나라는 종교 갈등 우려가 적은 곳이었지만 일부 몰지각한 종교인(성직자)들이 왜곡된 종교관을 전파하면서 종교 평화를 낙관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이, 국회의원 선거를 종교적으로 악용하는 ‘정치와 종교의 야합’이다. 이들이 야합하여 “이번 선거에 우리 신도를 당선시키자! 이교도가 당선되는 일만은 꼭 막자!”고 나서서 그 바람대로 당선시켜온 사례가 지난 몇 차례 선거에서도 많았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는 그 동안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완전히 무시한 채 특정 종교계의 이익을 위해 광적(狂的)으로 활동해온 인사들이 공천을 받아 당선이 유력해보이므로, 앞으로 더욱 우리 사회의 종교 갈등을 깊어지게 할 것이라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의원을 꿈꾸는 후보자들에게 당부한다. “자기 자신의 종교만을 존경하고 다른 사람들의 종교를 비난하면 안 되고, 다른 사람들의 종교에도 경의를 표하라. 그렇게 하면서 자신의 종교를 성장시키고 다른 사람들의 종교에도 기여를 하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종교의 무덤을 파게 되고 다른 종교들에도 해를 끼치게 된다.” (아쇼카 대왕의 돌기둥에 새긴 칙령의 일부)

[불교신문3190호/2016년4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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