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강진 백련사 동백 숲길

동백나무 군락 동백꽃 겨울부터

봄까지 피었다 지면서 장관 연출

백련사-다산초당 이르는 오솔길은

혜장스님과 다산선생 이야기 전해

 

백련사 동백꽃이 핀다는 소식을 일찌감치 들었다. 겨울동백이 12월부터 꽃망울을 터트리니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2월부터 백련사 회주 여연스님에게 휴대전화를 누르곤 했다. 스님의 대답은 느긋했다.

“아직은 아니다. 3월이 다 가야 동백꽃이 지천일 거이니 천천히 내려 오니라잉.”

스님의 말처럼 동백을 기다리는, 동백을 그리는 마음이 그렇게 느긋할 순 없다. 급기야 봄 내음이 코 끝에 걸린 지난16일 바리바리 취재장비를 챙겨 전라남도 강진으로 향했다.

남도의 봄 내음이 갯 내음과 함께 피부로 솔솔 들어온다. 도시의 강퍅한 생활에 찌든 몸은 호흡지간에 잠에서 깨어난 듯 기지개를 켰다. ‘아! 내 나라에도 이런 아름다운 땅이 있었다니…’ 한 나절 걸려 도착한 남도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서울에서는 도저히 맛볼 수 없는 푸짐하고도 저렴한 점심식사는 남도의 천년 숲길로 향하는 길에서 덤으로 얻은 보너스다. 젓갈이 간간하게 배여 있는 음식은 혀끝에서도 만든 이의 정성이 느껴진다. 푸짐한 공양에 춘곤증과 식곤증이 몰려왔다. 하지만 마음에 접어 둔 만덕산 동백 숲길에 드는 일이 남아 있기에 몸은 어느덧 백련사에 당도해 있었다.

백련사 일주문에서 시작되는 동백 숲길은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유명하다. 겨울동백이 일품인 백련사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실학정신이 스며 있는 다산초당길은 이어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 길에서 혜장스님과 다산 선생이 우정을 나누며 심도 있는 사상을 교류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천년 숲길에는 사람보다 새들이 길손을 반겼다. 어디서 왔는지 이름 모를 여러 종류의 새들이 숲에서 지저귄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 새들은 어디서 온 게 아니고 이 숲의 주인이었다. 불쑥 찾아 온 손님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기가 부끄러운 듯 숲 어디에서 합창을 한다.

반갑게 맞아 주는 백련사 여연스님이 직접 법제한 귀한 차를 내어준다. 혀끝에 고이는 침의 달콤함이 차의 품격을 말해주고 있다. 20여 년 전 기자생활을 시작할 때 만난 스님이었으니 인연도 깊다. 스님은 주석하는 전각 앞에 핀 고목의 매화를 극찬하며 차를 따랐다.

“잘 봐. 저 매화는 한 나무에서 두 종류의 꽃이 피어 있어.”

자세히 보니 정말 그랬다. 분홍빛과 흰빛을 띄는 두 가지 종류의 매화가 한 나무에서 피어 진한 향기를 피우고 있었다.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감탄사도 연신 나왔다. 혜장스님과 그의 제자였던 초의선사의 전통을 잇고 있는 여연스님이 차 두통을 내어 줬다. 한 통은 아는 스님에게 선물하고 한 통은 깊숙한 곳에 숨겨 놓고 아껴먹기로 했다.

본격적인 동백 숲길 돌아보기는 백련사 뒤편에서부터다. 수백 년 된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비자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에 이르는 1km가량의 길은 잘 정비돼 있어 걷기가 편하다. 다만 계단이 많이 만들어져 있어 호젓하게 산책하는 데는 계단의 높이가 장애가 되기도 한다.

백련사 동백 숲길의 백미는 백련사 옆 동백나무 군락이다. 몇 기의 부도와 함께 수령이 오래 된 동백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있다. 3월 중순이었지만 이곳에서는 동백꽃이 땅바닥에 흐드러져 봄이 가고 있음을 서러워하며 붉은울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꽃이 피면 지는 것이 당연지사이거늘, 꽃이 진다고 무엇이 그리 슬프더냐…’

①백련사 옆 동백나무 군락에 피었다가 떨어진 동백꽃. 하늘을 가릴 정도의 거대한 나무 숲은 동백 숲길의 백미다. ②백련사 동백 숲길에 자리하고 있는 부도. ③동백 숲길에 떨어진 동백꽃으로 만들어 놓은 하트문양. ④깃대봉으로 오르는 길에 조성된 산죽나무 터널. ⑤백련사 오솔길에 조성된 백련사 차밭.

마음 속으로 대수롭지 않은 자연의 이치라며 되 뇌여 보지만 강렬하게 봄의 향연을 마친 매화와 동백이 가는 길은 슬퍼보였다. 그래서 숲에서 산새들이 소리 높여 울고 있었나 보다. 이 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동백 꽃잎을 모아 사랑의 하트모양도 만들어 놓았다. 붉은 꽃잎이 뿜어내는 강렬한 사랑에 취한 사람들처럼.

다산초당으로 가고자 하는 길을 잘못 들었다. 산길이 가팔라지고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야 만덕산 깃대봉으로 오르는 길임을 알았다. 발길을 돌려 내려오면서 올바른 길을 찾았다. 하지만 잘못 들어 선 길에서 큰 소득을 얻었다. 깃대봉 가는 산길 곳곳에는 산죽이 울울창창(鬱鬱蒼蒼)하게 자라 하늘을 가릴 정도로 운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뜻하지 않게 좋은 일을 만나기도 한다. 이를 가리켜 흔히 ‘운이 좋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 ‘운 좋은’ 것을 얻기 위해서는 가파른 산길을 올라야 하는 값을 치러야 하는 단서가 있는 듯하다. 세상에는 흔히 말하는 ‘공짜는 없다’는 말처럼 인과법이 작용함을 알아야 하겠다.

산허리를 넘어가는 길목에 해월루가 백련사와 강진만을 바라보고 있다. 그 너머로 내려가면 다산초당이 있다. 이 길에는 야생차가 길섶에서 자라고 있다. 강진으로 유배를 온 다산 정약용은 자신보다 나이가 10살이나 어린 아암 혜장스님의 법력에 감응해 오솔길을 오가며 두터운 사상적인 교류를 했다. 혜장스님은 다산에게 유학을 배우고 다산은 혜장스님에게 선(禪)과 차를 배웠다.

유난히 차를 즐겼던 다산선생의 차에 대한 사랑은 혜장스님에게 보낸 ‘걸명소(乞茗疏)’에서 엿볼 수 있다. 스님에게 차를 보내줄 것을 간절히 청하는 편지에서 두 사람의 우애와 유머가 돋보인다.

“나그네는 요즘 차를 탐식하는 사람이 되었으며 겸하여 약으로 삼고 있소 … 듣건대 죽은 뒤 고해의 다리 건너는데 가장 큰 시주는 명산의 고액이 뭉친 차 한 줌 보내 주시는 일이라 하오. 목마르게 바라는 이 염원 부디 물리치지 마시고 베풀어 주소서.”

숲 길을 사이에 두고 사상과 정신을 나눈 두 성현의 이야기가 시대를 넘어 회자되고 있다. 그 이야기는 다시 숲길을 만들어 내고 사람들은 그 길을 걸으며 성현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 갈망의 시대가 성현을 만들어 내고 길을 만들어 낸다. 그 길은 시대를 가로 질어 다양한 색채를 띤다. 사람이 길을 만들고, 길이 다시 사람의 정신을 살찌게 하듯이….

 

TIP 걷기 안내

 

숲길의 시작은 백련사 주차장에서부터다. 자동차길을 오르지 말고 일주문을 넘어서면 백련사로 향하는 길이 나온다. 우선 백련사 경내를 휙하니 둘러보시길. 이어 백련사 동백숲길로 들어가 고령(高齡)의 동백나무 군락을 돌아본다. 이곳에는 몇 기의 부도가 있다. 동백나무 군락에서 곧바로 오르면 만덕산 깃대봉으로 향하는 길이다. 다산초당길로 가려면 이곳에서 다시 내려와서 차밭을 지나 계단으로 이어지는 산 허리를 올라야 한다. 산 중턱에 해월루가 자리하고 있고 곧바로 내려가면 다산초당이다. 그 전에 최근에 만들어진 천일각에서는 강진만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백련사에서 다산 초당까지는 왕복 2km 남짓 걸린다. 다산기념관과 수련원이 있는 마을까지 돌아보려면 왕복 4km는 잡아야 한다.

[불교신문3189호/2016년3월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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