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복한 삶이었다. 24살, 처음 품에 안은 아들은 뇌성마비 1급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시집살이는 고됐고 친정은 모질었다. 남편은 떠났지만, 고통에 몸부림치다 방바닥을 벅벅 긁을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그녀를 지독하게 괴롭혔던 다리 통증은 떨어질 줄 몰랐다. 서른을 넘겨서야 원인 모를 통증이 ‘대퇴부무혈성괴사증’으로 불린다는 것을 알았다. 피가 잘 돌지 않아 엉덩이 쪽 뼈 조직이 썩는 희귀 질환, 인공관절 수술을 4번이나 받고 나서야 겨우 걷게 됐지만 태어나 서른이 넘도록 신발 한번 신어보지 못한 아들을 볼 때면 가슴이 멘다.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들을 볼 때마다 죄책감이 듭니다.” 지난달 합천에서 만난 한정순 전 한국원폭2세환우회 회장은 피폭피해자들에게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이 시작된다고 했다. “우리 어머니는 저를 단 한 번도 안아준 적 없었어요. 2남4녀 중 다섯째 딸로 태어났지만 예쁨 보다 미움을 더 많이 받았죠. 첫째 아들은 돌 지나 얼마 되지 않아 죽고 다른 형제들도 원인 모를 병으로 아픈 데다 시집간 딸마저 장애아들을 낳았으니, 안타까운 마음에 피폭 후유증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 같아요.”

‘합천평화의집’과 피폭의 후유증으로 유전질환을 겪고 있는 2, 3세들을 위한 생활시설 건립비 모금 캠페인을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났다. 모금 실적은 저조하다고 했다. 합천평화의집은 한국인 원폭 피해2, 3세를 위한 전국 유일의 쉼터다. 지난 2010년 개원 이래 지적 장애, 다운증후군 등 피폭 후유증으로 혼자서는 생활할 수 없는 피해2, 3세를 24시간 돌볼 수 있는 생활시설을 짓고자 ‘땅 한 평 사기 운동’ 등을 펼쳐왔지만 이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11일 한정순 회장에게 모금이 잘 되지 않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더니 한 회장은 합천평화의집 운영위원장 혜진스님에게 이미 전해 들었다고 했다. 한 회장은 “스님이 자꾸 미안해하시더라고요.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나 하나 먹고 살기도 힘든 각박한 세상에 그럴 수도 있죠.” 전화 소리 너머로 울음을 삼키던 한 회장 목소리가 지워지지 않았다. 희귀병을 대물림해놓고, 자신이 떠나면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자식을 바라보는 원폭피해자들의 불안과 시름이 깊어져간다.

[불교신문3185호/2016년3월16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