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원폭피해 2·3세) 보통사람처럼, 인간답게 살고 싶다”
“우리도(원폭피해 2·3세) 보통사람처럼, 인간답게 살고 싶다”
  • 이경민 기자
  • 승인 2016.02.15 11: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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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평화의집 공동 캠페인 ‘원폭피해자에게 새 삶을!’〈下〉

2·3세대 쉼터가 절실하다

 

돌봐주던 부모 사망하면서

‘희귀성 유전’ 질환 등으로

기본 의식주 해결 못하는

원폭피해 2·3세 케어 절실

 

그들의 유일한 벗, 합천평화의집

‘땅 한 평 사기 운동’에 동참을…

 

왜곡된 시선과 편견 더 고통

정부 나서 특별법 제정

안정적 지원대책 ‘시급’

이 아이들만큼 원폭피해자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성인들은 얼마니 될까. 사진은 지난해 열린 합천 비핵ㆍ평화대회에서 ‘평화의 손수건 만들기’ 행사에 참여한 청소년들. 불교신문 자료사진

 

“보통사람처럼, 인간답게 살고 싶다.” 반핵인권운동가로서의 삶을 살다 35세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원폭2세 고(故) 김형률(1970~2005)씨가 자신의 유고집에 남긴 말이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기침과 폐렴 증세로 고통 받던 김형률 씨는 25세 때인 1995년 부산침례병원에서 ‘면역글로불린 M의 선택적 결핍증’이라는 희귀성 난치병 진단을 받는다.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해 자주 앓았던 김 씨는 자신의 질환이 유전자 변형으로 면역 체계에 이상이 생겨 발생한 희귀병이며, 발병 원인의 하나로 원폭 피해로 인한 후유증이 의심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김 씨 어머니는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됐을 때 5세의 나이로 피폭을 당했다. 김 씨는 원폭의 피해가 피폭 당사자를 넘어 2·3세까지 대물림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2002년 자신이 피해2세이며 후유증으로 인한 난치병으로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을 국내에 처음 알린다. 

71년 고통…피폭의 대물림 

현재까지 한국원폭피해자협회에 등록된 한국인 원폭 피해자는 2545명. 1945년 일본 원폭 투하 당시 피폭당한 한국인 피해자 7만여명(추정) 중 2만3000여 명만이 살아 돌아왔지만 71년이 지난 현재 생존자는 10분의1로 줄었다. 한국원폭2세환우회에 따르면 피폭의 후유증을 대물림 받은 2·3세 피해자는 적게는 7500여 명에서 많게는 1만~2만명으로 추정된다. 사회의 왜곡된 시선과 편견 등으로 주홍글씨로 낙인찍힐 것을 우려해 피폭 사실을 밝히지 않고 있는 피해자들을 고려하면 그 수는 더 높아진다.

그러나 이 또한 피해 당사자들이 조사한 통계일 뿐 얼마나 많은 피해2세가 있는지, 이들이 어떤 피폭 후유증을 앓고 있는지 정부 차원의 조사는 지난 71년 동안 단 한 번도 이뤄진 적 없다.

2004년 김형률 씨가 원폭 피해2세를 위한 인권운동에 나서면서 국가인권위원회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에 의뢰해 실시한 원폭피해자 1·2세에 대한 건강실태조사는 충격적이다. 조사에 따르면 원폭피해자 2세 가운데 7.3%인 299명이 사망, 그 중 52.2%가 10세 되기도 전에 원인 불명 및 미상, 감염성 질환 등으로 세상을 떴다. 심근경색과 빈혈 발병률은 일반인의 80배를 웃돌았고, 우울증은 65배를 넘었다. 원폭 피해가 후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연구결과는 수차례 나왔지만 이를 위한 정부 지원은 전무하다. “피폭이 유전된다는 공식적 증거가 없다”는 것이 이유다.

정부가 나서 관련 법률을 만들고 지원에 나서야 하지만 17대, 18대 국회에서 발의된 한국인 원폭피해자 특별법안은 무관심 속에 자동 폐기됐다. 현재 19대 국회에서도 관련 특별법안이 발의돼 계류 중에 있지만 통과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현재 피폭 피해자들이 머물 수 있는 시설은 합천에 있는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1곳 뿐 이다. 정부가 1990년 한일정상회담에서 일본 정부와 기금을 마련해 설립한 복지회관은 전국에서 하나밖에 없는 원폭 피해자들을 위한 보호시설이지만 정원은 100여 명에 불과하다. 순번을 기다리고 있는 대기자만도 적게는 40여 명에서 많게는 100명까지 이른다. 문제는 이 시설이 피해1세들만을 위한 시설이라는 것이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어 

71년 전 피폭을 당한 1세들의 평균연령은 이제 80세에 달했다. 고령에 노환으로 지병을 알고 있는 피해1세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나면, 홀로 남겨진 피해2세들은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박탈 속에서 스스로 자립해 생활해나가야만 한다.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모르는 피폭의 후유증을 언제까지 안고 살아가야 할지 모르는 피해2세들에게는 오랫동안 이들을 돌봐줄 안정적인 지원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심진태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합천지부장은 “피해2세 가운데 일반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지적장애를 비롯해 각종 질병을 앓고 있는 피폭 자녀들은 당장 보살펴주는 부모가 사망하면 스스로 생활을 유지해나가기 힘들다”며 “상상 이상의 고통을 겪고 있는 피해2세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마음 편히 쉴 수 있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시설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마지막 보금자리 ‘쉼터’ 

생존한 원폭 피해1세 2454명 중 25%인 623명이 거주하고 있는 합천에는 원폭 피해자들을 위한 쉼터, 비영리민간단체 합천평화의집이 있다. 정부 시설이 피해1세만을 대상으로 하는 데 반해 합천평화의 집은 피해2세들을 위한 심리치유서비스, 비행평화대회, 추모제 등을 펼치며 활발한 활동을 해오고 있다.

합천평화의집은 홀로 남겨진 2세들을 위한 ‘땅 한평 사기 운동’ 등 생활시설 모연에도 힘쓰고 있다. 피해2세들에게는 24시간 케어가 절실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폭 자녀들 가운데는 이들을 돌봐주던 부모가 사망하면서 희귀성 유전 질환 등으로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있거나 거동조차 하기 힘든 2세들도 많다. 합천평화의집은 이들을 위해 합천 군 내 165㎡(50여 평) 규모의 생활시설을 세우기 위한 모연을 진행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관심은 방치된 피해2세들만큼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놓여있다.

합천평화의집 운영위원장 연암스님은 “지난 5년 동안 ‘땅 한 평사기’ 모금 운동을 펼쳐왔지만 모연이 쉽지 않다”며 “고령의 피해1세들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혼자서 생활할 수 없는 피해2세들을 위한 보금자리가 절실하다”고 했다. 스님은 “평생 소외의 고통 속에서 생활해왔던 피폭 피해자들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단칸방이라도 마련해 도움을 주고 싶다”며 “안정적인 지원이 가능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했다.

 

[불교신문3177호/2016년2월17일/수요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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