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짐 내려놓는다는 건

다시 한 짐을 지는 일

나무를 한 짐 부러 놓고

알아차리네

하늘에서 눈이 날렸네

하늘도 한 짐

부러 놓는 중이었네

연일 겨울답지 않은 겨울이 이어지다 1월 중순이 넘어서야 폭설이 내렸다. 이곳 따뜻한 남쪽지방 산골짝에도 눈은 소복하게 내렸다. 온다는 기별이나 주시지, 눈은 밤새 소리 소문도 없이 내렸다. 새벽녘에 문을 열자 첫 발자국을 찍은 건 강아지인 행복이와 우리다. 섭섭했다가 다행이라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이들이 아니면 캄캄한 밤에 누가 먼저 반겼겠는가. 잔칫집 마당에 뛰어노는 아이처럼 행복이와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고 흥겹다. 작년 9월에 나서 처음 맞이하는 백설의 잔치다.

한동안 이 겨울답지 않은 겨울로 인해 매화가 피지를 않나, 진달래가 피었다는 소식도 SNS에서 받았다. 그러나 산골짝에서 화목난로와 기도에 의지해 사는 나 같은 중에게는 겨울나기가 한결 쉬워 반가운 일이다. 내가 사는 집은 말 그대로 비닐하우스다. 묵정논에 비닐하우스를 치고, 안에 판넬로 칸을 질러 방을 넣었다. 아미타부처님을 한 분 모시고 산다. 형편상 바닥 난방은 처음부터 포기했다. 다행스럽게 몇 해 전 도반에게서 얻은 화목난로가 있어 산에서 나무를 하며 그 훈기로 겨울을 난다. 그러나 나는 출가하면서부터 언제나 꿈꿨던 삶이 있었고, 그런 삶을 사는 중이니 행복하기 그지없다.

우리는 ‘사랑만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말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어진 짧은 삶을 어찌 그리도 허망하게 보내는지 모르겠다. 늘 생각하는 것은, 삶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길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나 같은 경우, 속가의 가족력을 이어받았을 터라 더욱 인생이 짧을 것이라 생각한다.

기왕에 중이 됐으니, 모든 중생을 향한 넓은 사랑을 하고 싶다. 그리하여 갈 때는 들꽃처럼 핀 적 없듯이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이런 생각의 실천은 늘 제자리를 맴돈다. 사실 중생은 이미 중생이 아니다. 그냥 <금강경>에 나오는 틀에 박힌 말이 아니라, 내 삶의 체험이기도 하다. 이 못난 중에게 공양을 올려주시며, 때때로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시는 불자님들을 뵈올 때마다, 그분들이야말로 진정한 보살의 화현이시며, 때론 천백억으로 나투신 부처님의 모습임을 절감하곤 한다.

살면서 당연한 듯하면서도 당연한 것은 없다. 특히나 사랑이란 그런 것이다. 받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것이 사랑일 리는 없다. 오히려 주는 것이 당연한 사랑이며, 수행자의 삶이다. 나는 그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것일까.

베풂과 사랑은 불교용어로 보시와 자비일 것이다. 나는 언제 그처럼 남에게 무주상으로 베푼 적이 있었던가? 늘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또한, 겨울을 건너기 위한 화목난로 땔감을 하면서, 힘들고 지친 이들에게 “내려놓으세요”하며, 쉽게 말한 적은 없는지 나를 되돌아본다. 한 짐 내려놓는다는 건, 다시 한 짐을 지는 일임을 절절하게 동감하는 일이 사랑일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의 나머지 숙제는 사랑이다.

[불교신문3175호/2016년2월10일수요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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