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아물지 않는 전쟁의 상처

방사선오염으로 인한 상흔은

피해 1세에서 2세, 3세대로

끊임없이 되풀이…예측 불허

경남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 내에 있는 위령각에는 원폭피해자 1044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사진 오른쪽은 안월선 할머니.

1945년 8월6일과 9일. 원자폭탄이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졌다. 일본인 피폭 피해자는 약 70만명, 강제징용 등으로 일본에 끌려간 한국인 피해자 7만여명(추정)도 포함돼 있다. 반은 죽고 반은 살아 돌아왔다. 피폭의 피해를 고스란히 대물림 받은 피해 2·3세들은 7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방사능 오염으로 인한 암과 각종 희귀병 등으로 신음하며 피폭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인 원폭피해자가 많이 거주하고 있어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는 경남 합천을 지난 1월27일 찾았다.

안월선(86) 할머니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피부 아래 까끌까끌한 것이 만져진다고 했다. 피폭 당시 박힌 유리 조각이 아직도 살가죽 아래 남았다고 했다.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서 만난 안 할머니는 폭탄이 떨어진 71년 전 그날을 또렷이 기억해냈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전기가 번쩍하더니 그대로 정신을 잃었어. 일어나보니 사방팔방 불이 붙고 연기가 나고 있더라고. 사람들이 뜨겁다고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니는데 나는 꼼짝도 할 수 없는 거야. 고개를 들어보니 얼굴이며 팔다리며 몸뚱이에 전부 유리 조각들이 박혀 피투성이가 돼 누워있더라고. 나중에 의사가 얼굴에서 빼낸 유리 조각이 한 주먹이나 됐어.”

합천에서 태어난 안월선 할머니는 7살이 되던 해 친척들이 있는 일본 히로시마로 건너갔다. 돈을 벌기 위해 타향살이를 시작한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위안부’로 끌려가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14살 때 집 근처 방직공장에서 일을 하던 안 할머니는 이듬해인 1945년, 스미요시 인근 정미소에서 군인들이 쌀을 가져오면 무게를 다는 일을 했다. 아침 조회에 참석했다가 피폭을 당했다.

순식간에 수십만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 속에서 15세 소녀는 사경을 헤매다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왔다. 그러나 유리 파편으로 찢겨진 상처는 어린 소녀의 가슴마저 할퀴었다. 안 할머니는 “상처 때문에 길을 가다가도 사람을 만나면 다른 길로 돌아서 가거나 고개를 숙이고 다녀야 했다”며 “한창 꾸미고 다닐 나이에는 동동구리무를 바르다가 얼굴에 뭐가 자꾸 만져져 병원에 갔는데, 수십 바늘을 꿰매야 했다”고 회고했다.

남편과 일찍이 사별한 안 할머니는 현재 대한적십자사가 위탁 운영하는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서 생활하고 있다.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은 1990년 한일정부가 재한 원폭 피해자 지원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면서 양국이 기금을 출연해 설립한 곳이다. 현재 105명이 생활하고 있으며, 회관에 들어오기 위해 대기 중인 신청 인원만 40명이 넘는다. 의탁할 곳이 없거나 원폭으로 인한 질병 또는 장애로 인해 거동이 힘든 피해 1세들만이 신청 대상이다. 피해2·3세들은 해당되지 않는다.

원폭 피해2·3세 문제가 더욱 끔찍한 건 끝이 없다는 사실이다. 방사선 오염으로 인한 원폭의 상흔은 피해 1세에서 2세로, 2세에서 3세로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탈모, 심근경색, 다운증후군, 지적장애, 암 등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예측할 수도 없다. 피해자들은 실상 정상적으로 태어난 자녀들의 결혼과 취업에 피해가 갈까봐 피폭 사실을 숨기는 경우도 허다하다.

원폭 당시 어린 아이에 불과했던 피해 1세들은 이제 고령의 나이가 됐다. 당시 뱃속에서 채 세상을 보기도 전에 방사선에 노출된 피해자들은 이젠 70이 넘었다. 고령의 피해 1세를 괴롭히는 것은 자식에게 잘못된 유전자를 물려줬다는 죄책감 뿐 아니다. 가난과 소외의 고통까지 대물림된다.

“상원 씨! 휴대폰 이거 장난감 아니야. 모르는 곳에 숨기면 안 돼. 그리고 집에만 있으면 못써. 자꾸 나가서 움직여야지” 합천 시내에서 차량으로 30분은 달려야 만날 수 있는 외진 마을, 오래된 시골집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한정순 씨가 강상기(50), 강상원(45)씨 형제에게 애정이 담긴 잔소리를 늘어놨다. 한국원폭2세환우회 회장으로 활동했던 한 씨는 10년 전 자궁암으로 세상을 떠난 강 씨 형제의 어머니가 살아있을 때부터 인연을 맺었다. 낯선 방문객을 꺼리던 형제들도 익숙한 얼굴에 이내 경계를 풀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나이는요?” “식사는 하셨어요?” 어렵지 않은 질문을 누차 했지만 형제는 멋쩍게 웃기만 했다.

정신지체 2급 판정을 받은 강상기 강상원 형제는 노모가 암으로 세상을 뜬 뒤 단 둘이 생활하고 있다.

강 씨 형제는 정신지체 2급 판정을 받은 중증 장애인이다. 형제를 홀로 돌봐오던 노모는 10여 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떴다. 형제는 용주면에 단 둘이 남겨졌다. 겉보기엔 건장한 장년으로 보이지만 두 명 모두 정신연령은 유치원생 수준에서 그친지 오래다. 형 상기 씨는 그나마 상태가 좋아 이따금씩 마을 사람들이 소일거리를 주면 용돈벌이라도 하지만, 돈을 어떻게 세는지, 자신이 언제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동생 상원 씨는 더 심각하다. 특별한 일을 제외하곤 종일 집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자신의 이름조차 알지 못한다.

형제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오던 중 한 씨가 갑자기 눈물을 쏟았다. 지난번 형제들이 끼니는 잘 챙겨먹고 있는지 걱정돼 집을 들렀던 것이 생각나서다. “그 늦은 밤에 둘이서 생쌀 불린 것을 먹고 있지 뭐에요.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항암 치료보다 아들 두고 가는 것이 더 무섭고 갑갑하다던 노모 생각을 하니 목이 메여요”

노모는 죽는 날까지 장성한 아들들 걱정을 했다. 정부로부터 복지수당을 지원받고 있지만 돈을 벌 줄도, 쓸 줄도 모르는 형제는 늘 어미 가슴에 돌덩이 하나를 얹었다. 지역 복지관에서 음식과 청소 등을 도와주는 도우미를 보내주고 있지만 뜨문뜨문 오는 경우가 많은데다 갑자기 아프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당장 달려올 사람도 없었다. 팔순이 다된 노모는 반백이 다 된 형제를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다뤘다. 한 씨에겐 “돈은 필요 없으니 자주 들여다봐 달라”고 부탁했다. 

피폭부모 둔 아동 80% 질병 시달려 

강 씨 형제의 집에서 차로 50분가량 떨어진 쌍책면에 살고 있는 이길자(76) 씨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딸 둘은 정신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았고, 막내아들은 정신이 불안정해 수시로 응급실과 정신병원을 찾는다. 돌봐줄 사람 없이 남겨질 자식 걱정에 한시도 편치 않지만 이길자 씨는 “아이들이 합천평화의집이나 복지관에서 하는 치유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말수도 많이 늘었다”고 했다.

강 씨 형제나 이 씨 자녀들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장애 판정을 받아 정부로부터 수당을 받을 수 있지만 그 이상의 지원은 찾을 수 없다. 피폭된 부모로부터 출생한 아동의 80%가 선천성 기형을 포함한 각종 질병을 안고 태어난다는 조사 결과도 있지만, 정부는 “유전이라고 할 만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피해 1세에게만 일정 의료비 정도만 지원하고 있다. 피해2세인 한정순 씨는 “언제까지 대물림될 줄 모르는 원폭 피해는 우리에겐 죽어도 끝나지 않는 전쟁이나 다름없다”며 “부모가 떠나면 돌봐줄 사람없이 홀로 방치될 이들을 도와줄 시설이 필요하다”고 했다.

■ 합천평화의집은… 

고령의 원폭1세대 타계 후

홀로 방치될 2·3세들 위한

‘전문요양시설 건립’ 추진

합천평화의집 개원식.

 

지난 2010년 개원한 합천평화의집은 원폭 피해자와 피해 2세들을 위한 쉼터다. 2002년 원폭 피해 2세인 고(故) 김형률 씨가 자신이 원폭 피해로 유전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피폭의 고통이 피해 2세에게까지 대물림되고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됐고, 합천평화의집은 이에 힘입어 설립됐다.

합천평화의집은 한국인 원폭피해자 1세를 비롯해 피해 2·3세들의 인권과 복지를 위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특히 피해 사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피폭의 후유증을 홀로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2·3세들을 위해 피해사실을 알리고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함께 나누기 위한 활동을 집중적으로 펼치고 있으며, 원폭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확산과 비핵·평화 실현을 위한 운동 등에도 앞장서고 있다.

매년 개최되고 있는 ‘합천비핵·평화대회’는 세계에서 수천 명이 참가할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원폭 피해 1·2세 환우들이 함께 여행을 가는 ‘평화나들이’, ‘한국인 원폭희생자 추모제’ 등도 호응을 얻고 있다. 이와 함께 피해자들에게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이 가능하도록 토대를 마련하는 ‘한국인 원폭피해자와 원폭 2·3세 환우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 운동’, ‘평화 공원과 평화 자료관 건립을 위한 활동’, ‘합천 지역 원폭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한 심리치유서비스 제공’ 등을 통해 비핵·평화 가치의 실현에 힘써오고 있다.

최근에는 피폭으로 인해 희귀성 유전질환과 극심한 생활고로 기본적인 생활조차 하기 힘든 피해 2·3세들의 치료와 요양을 위한 전문 요양시설 건립을 추진 중이다. 현재 원폭 피해자들을 위한 생활 시설은 대한적십자사가 위탁 운영하는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이 유일하다. 그러나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은 피해 1세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2·3세를 위한 시설이 절실히 필요한 실정이다. 운영위원장 연암스님은 “고령이 된 원폭 1세대가 세상을 뜨면 혼자서는 생활을 하기 힘든 2세가 홀로 방치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온다”며 “이들을 돌봐줄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불교계라도 나서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불교신문3175호/2016년2월10일수요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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