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고민하고

선택해야 한다

이 시대 사찰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에 맞춰

사찰 건축물에서부터

모든 의식과 일상의

소소한 부분까지

무엇을 계승해

전통으로 지켜나갈 것인지

또 무엇을 전통으로

만들어 나갈 것인지를

참 살기 힘든 세상이다. 예전에는 없었던 고민들이 사회의 변화에 따라 늘 새롭게 다가온다. 20대 젊은이의 취직문제에서부터 정년퇴직한 노인의 노후에 대한 걱정까지. 사찰은 이러한 세상 사람들의 고민들을 부처님 가르침을 중심으로 신앙과 철학적인 측면에서 해법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템플스테이나 사찰음식, 다도 등 문화적인 측면에서 정서적으로 고민을 어루만져 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얼마 전 백양사에 템플스테이 전용관을 신축하기 위해 문화재청에 ‘현상변경신청’을 한 일이 있었다. 현상변경신청이란 전통사찰이나 문화재구역에서 건물을 신축할 경우 건축의 규모나 건축양식이 기존의 가람배치에 어울리는지를 심의하는 것이다.

문화재청에서 심의한 결과 당초 백양사에서 계획한 건물의 규모나 형태가 전통사찰의 불사로 적절하지 않아 심의에서 부결시켰다고 공문이 내려왔다. 백양사에서는 나름대로 10여 차례의 불사위원회 회의를 거쳐 고민 끝에 설계안을 마련해 심의에 상정했는데 별로 공감이 가지 않는 주관적인 이유를 들어 부결시켜 조금은 의아했다. 또 다른 면으로는 전통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됐다.

전통이란 역사적으로 전승된 물질문화와 인간의 사고와 행위양식을 포함한 광범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전통이란 화석화돼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生)하기에 저것이 생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멸(滅)하므로 저것이 멸한다”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연기법(緣起法)을 떠올려 본다. 결국 서로 의존해서 발생하고, 소멸되는 세상의 모든 이치에 ‘전통’이라는 개념이 화석화돼 사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부처님 가르침의 특징 또한 응병여약(應病與藥)이라 해 환자의 병에 따라 약을 처방하는, 즉 그 정신은 계승하되 그 표현방식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능동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사찰은 왕실과 호족들의 외호 아래 그 사회를 지도하는 역할을 했다.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도성출입마저 허용 받지 못한 신분으로 근근이 산속에서 그 맥을 이어가며 서민의 애환을 함께하는 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삼국시대와 고려시대의 사찰이 가지고 있던 위상과 역할이 조선시대의 사찰의 위상과 역할과는 다를 수밖에 없으며 그 위상과 역할의 변화에 따라 건축양식 또한 시대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사찰의 건축물도 현대인들의 생활양식을 반영해 기존의 사찰건축물의 공간의 배치나 용도와는 다르게 할 수 있으며 건축물의 재료나 건축양식과 공법도 요즈음 개발된 신소재나 새롭게 개발된 공법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 생각해보면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는 지금 우리 절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목조로 지은 기와지붕의 전각이 그 당시로는 가장 앞선 건축 재료이자 공법이 아니었을까? 지금 우리가 신는 고무신이 오십년 전에는 지금의 나이키 운동화처럼 최신의 문물이었듯이.

문화나 전통은 우리의 생활을 떠나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고민하고 또 선택해야 한다. 이 시대 사찰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에 맞추어 사찰의 건축물에서부터 사찰의 모든 의식과 일상생활의 소소한 부분까지 무엇을 계승해 전통으로 지켜나갈 것인지. 또 무엇을 현실에 맞추어 새로운 전통으로 만들어 나갈 것인지를.

[불교신문3175호/2016년2월6일토요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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