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상담계 ‘뜨는 별’ 3인방

실존상담硏 개소 ‘열린 상담’

 

상담은 치유와 힐링 아니라

내담자 상담자 한 배 타고

마음을 발견하고 드러내서

‘정말로 앎’의 세계 닿는 것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에서 자아초월상담을 전공하면서 인연맺은 (왼쪽부터) 임인구, 이하징, 장희진씨. 이들은 지난 2014년 서울 서교동에 실존상담연구소를 문열고 음지화된 상담문화를 양지로 이끌어내고 있다. 작은 사진은 연구소 입구 간판.

 

“나 요즘 상담받으러 다녀.” “여보, 당신도 상담 한번 받아봐!” ‘상담’이란 단어가 사람들에게 주는 느낌은 어둡고 아프다. 상담은 주로 남몰래 혼자서 받고, 부부싸움중엔 상대 공격용으로 등장하는 단어다. 상담을 바라보는 시선이 이런데, 상담해주는 사람은 어떠랴. 잘못 보면 어줍짢은 점쟁이로 비치기 십상이고, 너무 앞서가면 정신과 의사라도 되는 양 내담자를 아예 중증환자로 취급하기 일쑤다. 상담의 ‘음지화’를 지양하고 ‘열린 상담’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을 교육시키고 힐링하는 것은 결코 상담의 목적이 아니라고 목놓아 외치는 ‘상담사’들이다.

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에서 자아초월상담학을 전공하며 만난 불교상담계 요즘 ‘뜨는 별’들이다. 최근 박사학위를 취득한 임인구(36)씨와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실제 상담과 학업을 이어가고 있는 이하징(55), 장희진(41)씨. 이들이 오랜시간 꿈꾸고 그려온 상담의 근원과 본질은 지난 2014년 문 연 서울 서교동 실존상담연구소에서 꽃을 피웠다. 고향집 사랑방처럼 아늑하고 정겨운 실존상담연구소에서 지난 1월20일 이들과 마주 앉았다.

“오늘은 본격적으로 아무것도 안할 것이다.” “덮어놓고 도망말고 용감하게 맞서보자.” “오고가는 언쟁속에 싹트는 아이디어”…. ‘마음과 친해지는 곳’이라는 실존상담연구소의 푯말을 걷고 방으로 들어가면 웃음 팡 터지는 문구들이 벽면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방에 앉으면 바닥에서 올라오는 온기가 시골 온돌방 아랫목처럼 푸근하다. “정형화된 옷차림이나 서로가 조금은 인격자인척 해야 하는 그런 ‘척’이란 것을 최소화하기 위한 인테리어랄까요?”

3인 중 나이로는 막내지만 2007년부터 자아초월상담학에 천착해온 실존상담연구소의 방장격인 임인구씨 말이다. 그는 “우리나라 상담계 초창기가 대부분 교육심리학에서 파생됐다”며 “상담이 너무 교육적으로 치중돼 있다보니 심리적 질병이 있는 사람이 건강한 상태로 교육받는 과정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책을 읽고 함께 공유하고 소통하는 북카페나 인문학공동체에 간다고 하면 괜찮은데, 유독 상담하러 간다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게 상담현실입니다. 실존상담연구소는 상담을 열린 무대로 올려놓는 유의미한 시도라고 보면 됩니다.”

임 소장은 단언한다. “상담의 목적은 힐링과 치유가 아닙니다!” 힐링받기 위해 상담소를 찾는 이들이 많을텐데 무슨 말인가. “힐링과 치유가 필요하다면 친구들이나 좋은 사람들과 하룻밤 술한잔하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돈도 적게 들고 뜨거운 우정도 나눌 수 있을테니까요. 혹은 재미삼아 사주카페를 가도 좋겠네요. 금전운이 트인다 연애운이 뚤렸다고 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충분한 힐링을 받지 않을까요? 하하하.” 이어서 강조했다. “우리가 추구하는 상담은 정말로 앎을 목적으로 합니다.” ‘정말로 앎’을 위해 상담을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고통스러운 것은, 지금 내가 어떤 것을 경험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그 마음을 정확하게 드러내는 일, 그 마음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일. 그 일련의 과정이 바로 우리가 이름지은 실존상담의 골자입니다.”

실존상담연구소가 시행하는 상담은 일반화된 상담형태와 자못 다르다. 우선 최대한 빨리 고통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내담자의 핵심욕구에 걸맞게 시간과 비용이 엄청 줄어든다. 대신 짧은 시간동안 상담에 임하는 ‘마음가짐’부터 다르다. ‘마음가짐’이라고 할 것도 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상대와 만나 상대와 똑같이 ‘공명(共鳴)’하는 마음이 열리도록 화두처럼 참구하고 탁마하면서 서로간에 물음을 던진다. 정답이 있는 가르침이나 교육으로 진리의 답을 정해서 터득하라는 관점이 아니다. “(내담자인)당신과 함께 헤매다가 (상담자인 내가)자유로워지는 것을 목격한 증인이 되어 이를 현실로 인식”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비로소 ‘마음이 만났다’고 할 수 있는 지점이다. “마음이란 것이 이렇게 만나질 수 있다는 새로운 현실을 목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담자가 일상에 갖다 써야 할 하나의 선물입니다. 여기서 배운 진리의 답을 체득해서 계속 외우듯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만나진 하나의 감수성 혹은 느낌을 갖고 일상에서 부딪히거나 뭔가에 막혔을 때 스스로에게 물어 그 감수성을 드러내 상황을 역전시키는 형태입니다.”

임 소장의 말 속에는 ‘불교’가 없는 듯하다. 불교상담을 하는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나 불교경전, 불법(佛法), 정법(正法) 등의 표현을 쓰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의 상담철학에는 무아(無我)와 공(空), 유식(唯識)과 같은 불교사상의 정수가 내장돼 있다.

임인구 소장이 대학 강의실에서, 각종 블로그와 커뮤니티안에서 끊임없이 실존상담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만난 이들이 바로 이하징씨와 장희진씨다. 연배는 형, 누나지만 이들은 임 소장을 ‘인구선생님’이라 부른다. 대기업 건설회사에서 24년간 근무한 이 씨는 “나이 오십이 되면 상담학을 공부하겠다”는 원을 세워 꿈을 이룬 사람이다. “요즘 사람들은 불안하니까 긴장하고 두려움이 생기고 결국 화를 참지 못합니다. 이런 아픔이 답을 찾는다고 해결될까요, 회피한다고 없어질까요. 결국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불안과 긴장 두려움과 화라는 마음과 만나야 합니다. 그 마음과 만날 때 그 마음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으니까요. 우리 모두가 스스로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마음은 도대체 어떻게 작동이 되고 있는지, 상담공부를 통해 이 부분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삶이 생생해지는 행복한 느낌입니다.”

말수가 거의 없을 것처럼 고요하고, 맑은 피부에 청순함이 묻어 있는 장희진씨는 학부에서부터 재활심리를 전공하면서 자연스럽게 상담학에 뛰어들었다. “상담공부는 제가 살려고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제대로 죽으려고 이 공부를 계속 합니다.” 그녀는 매번 상담을 할 때마다 ‘지금의 나를 내려놓고 내담자와의 만남의 장에 함께 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어떻게 해주겠다고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오롯이 머물러 있고자 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상담이 근본적으로 사람을 바꿀 수는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현재적인 삶에서 구체적으로 사람들이 마음을 만날 수 있는 통로만으로도 상담은 의미가 크지요.”

불안과 화,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부모가 어린 아이를 죽이고 자식이 부모를 살해하는 끔찍한 시대를 바라보는 임 소장의 관점도 주목된다. “마음의 목소리를 아무도 들어주기 않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자신의 목소리를 외면하죠. 살인은 자기를 봐달라는 가장 큰 비명입니다. 사회문제라 불리는 것들이 알고보면 개인, 더 나아가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 행위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인간의 마음과 만나졌을 때 해결되지 사회시스템이나 정부정책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이 왕이나 정치인은 아니잖아요. 마음 밝히는 따뜻한 촛불 한자루가 문화가 되고 삶이 되는 날까지 꾸벅꾸벅 걸어가렵니다.”

현재 아픔 극복코자

과거 아픔 직면하고

있는 그대로 나 자신

수용하게 만드는 영화  

한 심리학자의 ‘영화상담’


 

우리는 왜 영화를 볼까. 재미와 흥미에 빠져 영화를 보기도 하지만, 영화 속 갈등을 통해 성장하는 우리의 모습을 비추어보는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영화는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과거의 아픔을 직면하고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서 앞으로 나아가라는 용기를 주기 때문이다. 가톨릭대 상담심리대학원에서 상담을 공부한 심리상담학자 이계정씨가 저술한 책 <치유의 영화학>에선 서른세편의 주옥같은 영화가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요동치게 만들고, 어떤 치유법을 제시해주는가에 집중한다.

책에 등장하는 영화는 최근들어 대중들에게 사랑받은 ‘그래비티’, ‘러브레터’, ‘이터널 선샤인’, ‘원스’ 등 장르를 넘나든다. 특히 영화 ‘케빈에 대하여’에서 케빈이라는 아이는 독특한 캐릭터로 등장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어린아이이기도 하다. 케빈은 전반적으로 발달이 늦고 상대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반항적인 아이로 자란다. 사랑스러운 여동생을 이용하고 위협하며, 엄마와의 기싸움은 갈수록 도를 넘어선다. 결국 케빈은 끔찍한 살인사건을 일으키고, 엄마는 그 모든 것을 책임지며 비로소 케빈의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영화는 아이의 문제를 언제나 엄마 탓으로 돌리는 세태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하기도 하고, 위험과 무질서로 가득한 어린시절이 거친 훈육과 방임으로 이어져 어떤 참극을 불러일으키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영화 초반에 엄마 에바가 물속에 얼굴을 담그는 순간, 그녀의 얼굴이 케빈의 얼굴로 바뀌는 장면을 부모와 자녀의 피할 수 없는 어떤 ‘운명’을 보여주는 듯하다.

정은임 상담심리전문가는 말한다. “영화는 허구인 동시에 개연성 있는 현실로서 삶의 단면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던진다. 이 책은 이 메시지에 대한 대답처럼 들린다. 영화 속에 담긴 심리를 쉽게 설명하면서 우리가 처한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스스로 답을 찾도록 돕는다.” 영화야말로 가장 ‘친절한’ 자기관찰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불교신문3175호/2016년2월6일토요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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