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136명 등 183명 수몰

韓日에 역사적 사실 알리고

매몰돼 있는 유골 발굴 촉구

 

사고현장·희생자 추모비 앞서

천도의식으로 극락왕생 기원

“다시는 비극 거듭되지 않도록

뭇 생명 안온·평화 위해 정진

종교인의 책무 다해 나갈 것”

지난 1월30일 전석호 할아버지(사진 왼쪽 위)가 일본 야마구치현 도코나미 해안가에서 탄광 사고로 숨진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빌다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한국불교종단협,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 희생자 위령재 봉행

사고 현장에서 5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추모비 앞에서 봉행된 위령재에서 회장 자승스님을 비롯한 종단 대표 스님들이 헌화를 하는 장면.

 

일제강점기 조선인 강제노역으로 논란이 됐던 일본 근대산업시설이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국민적인 공분이 일었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 중 조선인이 대규모로 강제 동원되어 혹사된 곳은 비단 이곳뿐만이 아니다. 히로시마 서쪽 120km 지점 야마구치현 우베시에 있는 조세이 탄광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이 지역에는 59개의 탄광이 있었는데, 조세이 탄광은 석탄생산량이 미미한 작은 탄광에 불과했지만, 조선인 징용자들이 투입되면서 생산량이 늘어 3위에 이르렀다고 한다. 최악의 노동조건으로 유명해 일본인들은 외면하는 곳이었다.

지난 1월30일 일본 야마구치현의 한 바닷가. 한국에서 건너온 50여명의 스님들이 일념으로 ‘나무아미타불’ 염불기도를 올렸다. 이곳 바다 밑에 있던 조세이 탄광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강제동원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식이었다. 백발이 성성한 70~80대의 희생자 유족들은 ‘아버지 아버지’를 외치며 눈물을 흘렸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제에 의해 강제징용 됐다 해저 탄광 붕괴사고로 수장된 조선인 피해자들을 기리는 위령재가 한국불교종단협의회(회장 자승스님, 조계종 총무원장) 주관으로 봉행됐다. 이날 위령재는 나라를 잃고 억울하게 끌려가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수많은 징용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수몰사고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사고가 난지 70여년이 흘렀지만 그 책임을 묻기는커녕 시신 수습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해저 탄광이었던 조세이 탄광은 1942년 2월3일 일제가 위험지역에서 무리하게 출탄작업을 하던 중 붕괴 사고가 발생해 징용된 조선인 136명 등 총 183명이 수몰된 곳이다. 중소규모 탄광이었던 이곳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많아 ‘조선탄광’이라 불렸다.

이곳은 거미줄처럼 막장이 이어져 해저로 10여km나 뻗어있고, 갱도는 해저면에서 너무 얕아 지나가는 배의 엔진음이 들릴 정도였다고 한다. 사고가 나자 피아(바다 한가운데 환기와 배수를 위해 설치한 둥근 콘크리트 구조물)에서는 3일간 물기둥이 솟구쳐 올라왔으며, 갱도 입구 바닷가에는 오열하는 가족들이 몰려나와 있었지만, 희생자 구조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후 일제와 회사 측은 갱도 입구를 널빤지로 봉쇄해 유가족의 접근을 막았다. 회사 측은 인근에 새로운 갱도를 만들어 작업을 재개했지만, 미미한 생산량을 유지하다 일본 패전과 함께 폐광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는 1941년 12월 진주만 기습으로 시작된 태평양 전쟁 2개월 만에 터진 대형참사로 국민적 사기저하를 우려, 이 사건을 철저히 은폐하고 통제했다.

이곳에 해저 탄광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은 바다 한 가운데 우뚝 솟은 피아(배수 및 환기구)뿐이다.

수 십 년 동안 어둠에 묻혀있던 비극을 세상에 처음으로 끌어낸 이는 지역의 향토사학자 야마구치 다케노부(2014년 작고)였다. 1976년 탄광 수몰사고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조선인 희생자의 존재가 역사의 전면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후 양심 있는 현지 학자들의 연구 작업이 이어졌고, 이런 조사연구 작업을 토대로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이라는 시민모임이 결성됐다. 이 모임은 1993년부터 매년 자체 모금한 돈으로 유족들을 사고현장에 초청에 추모행사를 개최해왔다.

이날 의식이 거행된 현장에는 탄광 환기구로 썼던 시설들이 바다 한가운데 그대로 남아있어 열악했던 작업환경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사고 이후 탄광회사는 없어졌고, 일본 정부는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바다 밑 흔적을 찾기 위한 시도조차 하지 못해 유족들 가슴엔 한이 맺혔다. 스님들을 비롯한 참가자들은 사고 현장을 향해 헌화를 올리고 유골이 하루빨리 고국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했다.

오전11시부터 사고현장에서 약 500m 떨어진 곳에서 추모행사가 거행됐다. 동환스님과 무비스님, 지훈스님, 정묵스님의 천도의식이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으며, 유가족들은 차례로 헌화를 올리며 눈물을 삼켰다. 이곳에는 원통 모양의 ‘강제연행 한국 조선인 희생자 추모비’ 2기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비에는 조선인 희생자의 창씨개명 이전 한국 이름이 한자로 새겨져 있다. 이 추모비는 한국과 일본정부 도움 없이 일본 시민단체가 직접 모금해 세운 것이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이날 한국불교계를 대표해 다시는 이런 비극이 거듭되지 않도록, 뭇 생명이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종교인의 책무를 다할 것을 약속했다.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추모사를 통해 “한국불교대표단은 긴 세월을 지나 오늘에야 이곳 도코나미 앞바다에 당도했다”면서 “양심 있는 우베 시민들의 노력이 아니었더라면 당시 참사는 어떤 의미도 남기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증발해 버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총무원장 스님은 “진실 그 자체만으로도 큰 힘을 갖고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신 여러분께 한국 불교계를 대표해 깊은 감사를 전한다”며 “한국불교대표단은 훼손된 명예를 회복하고 역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더욱 정진할 것”을 강조했다. 종단협은 천도재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방침이다.

서장은 주히로시마 대한민국 총영사는 “올해도 변함없이 소중한 시간을 마련해 준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의 수고에 감사드린다”면서 “한일관계가 국교정상화 50년을 넘어 새로운 세기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지금, 지금도 남아있는 크고 작은 아픔들이 잘 치유되어 진정으로 견실한 한일관계가 구축되기를 다시 한 번 소망한다”고 밝혔다.

김형수 유족회 회장은 한국불교종단협의회와 스님들에게 감사의 인사와 함께 유골을 발굴해 대한민국 땅에 안장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달라고 호소했다. 김 회장은 “일본 전쟁의 노예가 되어 강제노동으로 석탄을 캐다 바다에 수장됐다. 74년이란 세월을 차디찬 바다 진흙 속에 계시는 할아버지, 아버지들에게 일본정부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회장은 “일본정부에 유골을 발굴해 고국에 안장할 수 있도록 건의해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추모 위령재는 개회, 삼귀의·반야심경, 대중묵념, 추모사, 부회장 춘광스님의 축원, 천도재, 발원문 낭독, 사홍서원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종단협 회장 자승스님과 부회장 춘광스님 등 종단 대표자 스님들과 일본 시민단체 관계자 등 130여명이 동참했다.

“일본정부 유골수습 나서야” 

 

탄광사고 역사에 새기는 모임 이노우에 요코 대표 인터뷰 

“이곳 도코나미 바다 깊은 곳에 잠들어 계신 183명의 유골을 그대로 방치한다는 것은 인도적 차원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유골 수습은 시민운동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 미지의 과제인 만큼 단체 활동에 힘을 실어주시길 바랍니다.”

지난 1월30일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의 조세이 탄광 추모비 앞에서 열린 위령재 현장에서 만난 ‘조세이 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 공동대표 이노우에 요코(65·사진)씨는 이같이 강조했다. 이 모임에서는 2014년부터 유골 수습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고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해부터 갱구와 갱도의 위치확보를 위한 전문 조사에 착수하고, 일본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를 촉구하고 있다.

이날 이노우에 공동대표는 먼저 위령재를 열어준 한국불교계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했다. 이노우에 공동대표는 “저희 모임뿐만 아니라 한국 유족회에게도 국제적인 추모식은 큰 격려와 용기가 될 것”이라며 “지난해 돌아가신 야마구치 다케노부 선생님의 뜻을 받들어 더욱 노력하는 단체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특히 “일본이 저지른 ‘강제연행·강제노동’의 역사를 미래지향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유골 수습은 불가피한 일”이라며 “이를 통해 돌아가신 분들의 존엄성을 회복시키고, 한반도와의 유대와 깊은 우호를 이뤄가기 위한 토대가 마련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이노우에 공동대표는 “일본정부가 역사적 사실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반성의 증표로서 이곳 조세이 탄광의 유골수습이라는 중대한 과제를 한국 정부의 협력 속에 양국의 공동 사업으로 완수해 주기를 이 자리를 빌어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요청했다.

[불교신문3175호/2016년2월6일토요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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