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종단협의회, 30일 죠세이 탄광 수몰사고 희생자 위령제 봉행

일본 시민단체·탄광희생자 유족
“바다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183명의 유골 방치하는 것은
인도적 차원서 용납해선 안 돼
유골 발굴해 고국에 안장해야…”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
“다시는 이런 비극 거듭되지 않도록
역사의 진실 알리고 상처치유 앞장
뭇 생명의 평화위해 책무 다할 것”

1월30일 오전 일본 야마구치현의 한 바닷가. 한국에서 건너온 50여명의 스님들이 일념으로 극락왕생을기원하는 ‘나무아미타불’ 염불기도를 올렸다. 이곳 바다 밑에 있던 죠세이 탄광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강제동원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식이었다. 백발이 성성한 70~80대의 희생자 유족들은 ‘아버지 아버지’를 외치며 눈물을 흘렸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제에 의해 강제징용 됐다 해저 탄광 붕괴사고로 수장된 조선인 피해자들을 기리는 위령제가 한국불교종단협의회(회장 자승스님, 조계종 총무원장) 주관으로 봉행됐다. 이날 위령제는 탄광 수몰사고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알리고 유골 발굴을 촉구하기 위해 마련됐다. 사고가 난지 70여년이 흘렀지만 그 책임을 묻기는커녕 시신 수습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해저 탄광이었던 죠세이 탄광은 1942년 2월3일 일제가 위험지역에서 무리하게 출탄작업을 하던 중 붕괴 사고가 발생해 징용된 조선인 136명 등 총 183명이 수몰된 곳이다. 우베 지역의 중소규모 탄광이었던 이곳은 조선인 노동자들이 많아 ‘조선탄광’이라 불렸다. 수 십 년 동안 어둠에 묻혀있던 비극을 세상에 처음으로 끌어낸 이는 지역의 향토사학자 야마구치 다케노부(2014년 작고)였다. 1976년 탄광 수몰사고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면서 조선인 희생자의 존재가 역사의 전면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후 양심 있는 현지 학자들의 연구 작업이 이어졌고, 이런 조사연구 작업을 토대로 ‘죠세이 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이라는 시민모임도 결성됐다. 이 모임은 1993년부터 매년 자체 모금한 돈으로 유족들을 사고현장에 초청에 추모행사를 개최해왔다.

이날 의식이 이뤄진 현장에서 탄광 환기구로 썼던 시설과 갱도로 들어가던 입구도 바다 한가운데 그대로 남아있어 열악했던 작업환경을 알 수 있었다. 사고 이후 탄광회사는 없어지고, 일본 정부는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바다 밑 흔적을 찾기 위한 시도조차 하지 못해 유족들 가슴엔 한이 맺혔다. 스님들을 비롯한 참가자들은 사고 현장을 향해 헌화를 올리고 하루빨리 고국으로 돌아오기를 기원했다.

오전 11시부터 사고현장에서 약 500m 떨어진 곳에서 추모행사가 이뤄졌다. 이곳에는 ‘강제연행 한국 조선인 희생자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비에는 조선인 희생자의 창씨개명 이전 한국 이름이 한자로 새겨져 있었다. 이 추모비 또한 한국과 일본정부 도움 없이 일본 시민단체가 직접 모금해 세운 것이다.

동환스님과 무비스님, 지훈스님, 정묵스님의 천도의식이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으며, 유가족들은 차례로 헌화를 올리며 눈물을 삼켰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이날 한국불교계를 대표해 다시는 이런 비극이 거듭되지 않도록 뭇 생명이 평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종교인의 책무를 다할 것을 약속했다.

총무원장 자승스님은 추모사를 통해 “한국불교대표단은 긴 세월을 지나 오늘에야 이곳 도코나미 앞바다에 당도했다”면서 “양심 있는 우베 시민들의 노력이 아니었더라면 당시 참사는 어떤 의미도 남기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증발해 버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총무원장 스님은 “진실 그 자체만으로도 큰 힘을 갖고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신 여러분께 한국 불교계를 대표해 깊은 감사를 전한다”며 “한국불교대표단은 훼손된 명예를 회복하고 역사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더욱 정진할 것”을 강조했다.

서장은 주히로시마 대한민국 총영사는 “한일관계가 국교정상화 50년을 넘어 새로운 세기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지금, 지금도 남아있는 크고 작은 아픔들이 잘 치유되어 진정으로 견실한 한일관계가 구축되기를 다시 한 번 소망한다”면서 총영사관도 최선을 다할 것을 밝혔다.

‘죠세이 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은 일본 정부의 우경화 바람 속에서도 자국의 부끄러운 과거를 바로 잡겠다고 밝혔다.

2014년부터는 유골수습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고,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갱구·갱도의 위치 확보를 위한 전문 조사에 착수했다.

이노우에 요코 공동대표는 이날 인사말에서 “바다 깊은 곳에 잠들어 계신 183명의 유골을 그대로 방치한다는 것은 인도적 차원에서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일 것”이라며 “유골 수습을 통해 돌아가신 분들의 존엄성을 회복시키는 동시에 한반도와의 유대와 깊은 우호의 토대도 마련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본정부를 향해 “유골수습이라는 중대한 과제를 한국정부의 협력 속에서 양국의 공동사업으로 완수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강력하게 촉구했다.

김형수 유족회 회장도 “74년이란 세월을 차디찬 바다 진흙 속에 계시는 할아버지, 아버지들에게 일본정부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있다”면서 “큰스님과 신도님들께서 천도재를 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일본정부에 유족들이 간절히 바라는 유골을 발굴해 고국 땅에 안장할 수 있도록 건의해 주실 것을 부탁드린다”고 요청했다.

추모 위령제는 개회, 삼귀의·반야심경, 대중묵념, 추모사, 부회장 춘광스님의 축원, 천도재, 발원문 낭독, 사홍서원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이 자리에는 종단협 회장 자승스님과 부회장 춘광스님 등 종단 대표자 스님들과 일본 시민단체 관계자, 후원회원 등 130여명이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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