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스님 “선원 새로 조성” 원력


 

성철스님과 절친한 도반이며 진제종정예하에게 법을 전한 선사로 유명한 향곡스님 38주기 추모 다례재가 지난 1월27일 선사가 생전 머물며 후학을 제접했던 기장 묘관음사에서 열렸다.


이날 묘관음사에는 문도와 생전 선사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던 비구 비구니스님들과 선원에서 정진중인 수좌 등 스님과 신도 등 200여명이 참석해 추모했다. 
 

1955년부터 선사가 입적할 때 까지 곁을 지키며 묘관음사를 일군 상좌 혜원스님과 손상좌인 주지 서강스님, 묘관음사에서 선사의 지도를 받았던 수좌스님들과 묘관음사에서 향곡스님을 모신 일화를 중심으로 불교신문에 선사의 일대기를 연재중인 경주 흥륜사 법념스님 등 선사와 다양한 인연을 맺은 스님들이 함께 했다.


다례재는 죽비삼배에 이어 문도와 생전 인연 맺은 스님들의 분향, 신도회의 헌다, 신묘장구대다라니 독송, 선사의 생전 육성법문, 대중 삼배, 문도대표 인사 순으로 1시간여에 걸쳐 진행됐다. 대웅전에서 법회를 마친 대중스님들은 자리를 향곡스님 부도탑 앞으로 옮겨 독송에 맞춰 탑돌이를 하며 이날 추모재를 회향했다. 
 

인사말 하는 솬상좌인 주지스님과 인사하는 상좌 혜원스님.

문도대표로 인사한 주지스님은 지난해 가을 금오대를 신축한데 이어 대웅전 옆에 위치한 선원을 새 터로 옮기는 불사를 진행 중이라고 보고했다. 주지스님은 “대웅전 옆에 선원이 있는 절이 이제는 거의 없어 이를 모르고 온 수좌스님들이 당혹해하는 일이 왕왕 있어 선원을 옮기는 불사에 착수했다”며 “선원조성 기반공사는 마치고 올해 선원이전 불사 원년을 삼아 3년 안에 회향할 계획”이라고 보고했다. 주지스님은 또 “부도전 앞에 ‘화엄일승법게도’를 조성해 법성게 그림을 따라 한 바퀴 돌면 216배를 마치는, 참배 수행 공덕을 동시에 짓는 불사를 상반기에 마무리한다”고 덧붙였다.

 

향곡스님과 묘관음사
묘관음사는 1940년대 운봉스님이 터를 잡고 초가로 이은 선원을 만들어 선풍을 진작한데 이어 1950~60년대 향곡, 성철, 자운스님과 수옥, 인홍 묘전스님 등 비구니계의 고승들이 정진하며 한국선불교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1960년대 향곡스님이 상좌들과 함께 불사를 해 오늘날의 묘관음사를 조성했다. 야자수 동백 단풍 모과 편백 대나무 등 남국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묘관음사 수목은 향곡스님이 심은 것들이다. 금모대(金毛臺)와 염화실은 향곡스님의 법제자 진제종정예하가 수행, 득도(得道)한 곳이며 지금은 주지스님 거처다. 
 

향곡스님이 주석했던 염화실

1912년 1월18일 경북 영일군 신광면 토성리에서 출생한 향곡스님은 평생의 도반 성철스님과 나이도 같고 수많은 수행담을 남긴 근 현대 최고의 고승이다. 1927년 16세에 경남 양산의 천성산(千聖山) 내원사(內院寺)에 입산, 1929년 18세에 조성월(趙性月)스님을 은사로 득도(得度)했다. 법명은 혜림(蕙林). 1931년 20세에 범어사에서 운봉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았다. 1944년 8월 운봉스님으로부터 크게 깨침을 인가(印可)받고 전법게를 받았다. 1947년 성철스님과 함께 봉암사(鳳岩寺) 결사(結社)에 참여했고 묘관음사에 길상선원(吉祥禪院)을 세워 무차대회(無遮大會)를 열었다. 활연대오 후 선암사 불국사 동화사 선학원 등의 조실로서 후학을 길렀다. 
 

조사전에 모신 경허스님과 운봉스님 영정

경남 기장군 월내(月內) 묘관음사(妙觀音寺)에서 눈 푸른 납자들을 길러내다 1978년 음력 12월18일 입적했다. 세수 67세 법랍 50세. 성철스님은 향곡스님의 열반에 ‘곡향곡형(哭香谷兄)’이란 글을 남기며 도반의 죽음을 몹시 아쉬워 했다. “향곡형을 곡하여 - 슬프고 또 슬프다. 이 종문에 악한 도적아, 천상천하에 너 같은 놈 몇일런가. 업연이 벌써 다해 훨훨 털고 떠났으니, 동쪽 집에 말이 되든 서쪽 집에 소가 되든. 애닳고 애닳다. 갑을병정무기경. 도우 성철(哀哀宗門大惡賊 天上天下能幾人 業緣已盡撒手去 東家作馬西舍牛. . 甲乙丙丁戊己庚. 道友 性徹)”
 

조사전의 향곡스님이 쓴 운봉스님 찬

1947년 동안거부터 1949년 하안거를 봉암사에서 보내며 결사를 이끌었던 성철스님은 전쟁 전 빨치산의 출몰에 수행처를 향곡스님이 주석하던 묘관음사(妙觀音寺)로 옮겨 정진했으며 이 기간 동안 묘관음사에는 한국불교사에 길이 남을 수많은 수행일화가 만들어졌다.

성철스님 찬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