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붓다를 만나다

해리슨 J. 펨버턴 지음불광출판사


老 철학자와 젊은 스님들

인도서 함께한 철학 강의

 

동·서양이 그 어느 쪽도

완전하지 않음을 인식하고

건설적으로 아우르는 중도

찾기 위해 각각 정신 탐구

서울 길상사에 위치한 보살상. 성모마리아와 보살의 모습을 조화해 만든 작품으로, 동서양 사상의 교류를 상징한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미국 대학에서 평생 서양철학을 가르친 교수가 정년퇴임 이후 인도 북동부 다르질리에 위치한 칼림폼으로 떠나 불교학교에서 5주간 머물며 티베트 스님들과 교류하고 토론한 과정을 정리했다. 그곳에서 겔룩파의 달라이 라마와 함께 티베트 불교 전통의 한 축을 이루어온 카르마 카규파의 최고 스승인 트린리 타예 도르제(17대 카르마파)를 비롯한 젊은 학승들에게 서양철학을 가르치는 5주간의 시간이 주어졌다.

이들은 나이와 전공을 떠나, 부처님과 소크라테스의 만남에 대해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열린 토론의 장을 만들어냈다. <소크라테스, 붓다를 만나다>는 그 탐구와 교류의 과정을 진솔하고 상세하게 담아낸, 한 노(老) 철학자의 흥미로운 일지다. 

서울 길상사에 위치한 보살상. 성모마리아와 보살의 모습을 조화해 만든 작품으로, 동서양 사상의 교류를 상징한다. 불교신문 자료사진

“서양식으로 철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예리한 소크라테스 할아버지가 자신들의 노력을 보고 무엇이라고 할지, 그 어떤 질문들을 캐물어 우리의 생각을 다듬어줄지 종종 상상하곤 한다. 붓다를 만나도 유사한 효과를 얻게 될 것이다. ‘붓다는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질문은 철학적 문제들만이 아니라 일상의 다양한 변화에 직면해서도 늘 우리의 사고에 깊이를 더한다. 우리는 뜻밖의 사태들과 그 사태들이 던지는 질문들에 대면하며 살아간다. 그 질문들이 깊을수록, 우리의 마음이 더 열릴 것이고 그 어떤 깨우침을 얻을 가능성이 더 커질지도 모른다.”

물질·외부 지향적인 서양의 정신과 내면의 깨달음에 집중하는 동양의 정신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저자는 각자 다른 길을 걸어오고 다른 결실을 맺은 동·서양이 여전히 그 어느 쪽도 완전하지 않음을 인식한다. 그리고 이 두 전통을 건설적으로 아우르는 중도의 길을 찾기 위해 각각의 정신을 분석하고 집요하게 탐구한다. 저자는 티베트 스님들에게 서양철학과 불교가 얽히는 지점과 관련된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소크라테스처럼 ‘덕은 가르칠 수 있는지’를 묻고, 데카르트의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에 도전하며, 과학과 경험론의 유효성을 의심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소크라테스, 플라톤, 데카르트, 니체, 칸트, 헤겔, 하이데거 등 서양 철학사에 한 획을 그은 사상가들을 압축적이고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그들의 이론과 철학적 방법론과 심리를 시간·장소·배경에 상관없이 불교와 최대한 비교해, 어떻게든 동·서양이 서로 만나는 지점을 찾아내려 한다. 그러나 개념화와 이성에 진리가 있다는 서양적 사고와 이성 너머에 진리가 있다는 동양적 사고는 서로의 접점을 찾지 못하고 팽팽하게 대립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기어이 동·서양을 만나게 한다. 내용이 아닌 형식으로써 만남을 주선한다. 저자와 스님들의 철학 강의는 열린 마음을 전제로 했기 때문에 그 어떤 토론도 가능했다. 서로에 대한 호의, 존중, 그리고 궁금함으로 마침내 동·서양은 서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서 “이제 붓다와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한 걸음 물러서게 한 다음 자유로운 탐구 속에서 서로 만나게 하세. 그 속에서 그 둘은 자신만의 사고 유형에서 상대의 그것으로 옮겨가 볼 것이고 서로 양립불가함을 볼 것이네. 바로 그때, 그래 바로 그때, 이들은 따뜻하고 건전한 웃음 속에서 서로 만난 것이 아닐까?”라고 얘기한다.

이 책은 서구화된 한국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꽤 유용한 가치를 제공한다. 그동안 동·서양의 정신세계는 매번 만날 듯 하다가도 돌이킬 수 없는 대분열을 일으켜왔다. 분명 그 둘은 사상적으로 중도의 길을 걸을 순 없고, 현대를 사는 우리는 이성적 사고와 내면의 자유를 포기할 순 없다. 열린 마음으로 붓다와 소크라테스의 만남을 바라볼 때 서로에게 호의와 존중을 품게 되고, 모든 존재에 대한 자비와 사랑이 움틀 것이다.

저자는 50년 넘게 철학을 가르쳤다. 예일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그때부터 그의 주요 관심은 서양 사상이었으며 특히 플라톤을 깊이 연구했다. 그러다 2차 대전 후 일본 주둔 미군 기지에서의 경험 이후 동양 사상에 대한 관심을 키워갔다. 예일대, 버지니아대, 워싱턴 앤리대에서 가르쳤고 현재 워싱턴 앤리대 명예교수이다. 이외에도 텍사스대, 캘리포니아 주립대, 홍콩 중문대, 인도 카르마 스리 디와카르 불교연구소에서 초빙교수로 강의했다. 현재 버지니아 주 렉싱턴에서 거주하며, 버지니아 군사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불교신문3160호/2015년12월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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