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재硏, 조선·일제강점기 조성 보각경판 팔만대장경 포함 여부 놓고 열띤 논의

최영호 동아대 교수
“마모·훼손되거나 확인되지 않은
원판 복원에 원천자료이기 때문에
일제 포함한 8만1352판 지정 최선”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
“후대 만들어졌거나 중복 경판들
별도 보존책을 수립해 관리해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해인사 대장경판’의 정확한 수량 재지정을 위해 조선시대나 일제강점기 제작된 경판을 포함시켜야 할까 말아야 할까.

11월30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는 대장판(원판)의 마모·훼손 및 유실 등으로 후대 보완해 조성한 보각경판들을 팔만대장경에 포함시킬지의 여부를 놓고 열띤 논의가 펼쳐졌다. 조계종 불교문화재연구소와 문화재청이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성격과 가치’를 주제로 연 학술대회에서다.

해인사 대장경판의 전체 수량은 1914년 조선총독부가 처음 8만1258판으로 집계했다. 이 숫자는 해방 이후에도 상당수 연구에서 그대로 이어지게 됐다. 정부는 1962년 국보 지정 당시 일반적으로 수용되던 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이를 그대로 적용했다. 하지만 이후 대장경판의 정확한 숫자와 훼손 여부 등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다.

이에 문화재청은 대장경판의 전체 수량을 확정할 수 있는 근거 자료를 확보하고 보존관리를 위해 ‘해인사 대장경판 종합 보존관리계획’에 착수했다. 그 결과 기존의 8만1258판 보다 많은 8만1352판으로 확대됐으며, 특히 고려 말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인경이 불가능할 정도로 부식·훼손된 원판 대신 새로 깎아 대체한 보각경판(118판)이 추가로 보태진 사실이 드러났다.

이날 세미나는 이런 보각경판을 해인사 대장경판의 전체 수량 집계에 포함 여부를 놓고 심도 깊은 논의가 진행됐다. 발표자로 나선 최영호 동아대 교수와 김성수 청주대 교수는 후대 보각경판도 법보(法寶)로서의 기능을 다한 귀중한 문화재이므로 대장경판에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영호 동아대 교수는 “일제강점기 경판을 포함한 8만1352판으로 지정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라며 “마모·훼손되거나 확인되지 않은 몇몇 원판을 복원할 때 중요 원천자료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최 교수는 “보각경판의 필사자와 각수 가운데는 우리나라 관련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등 우리 전통적 역량도 반영돼 있고, 판목도 우리나라에서 산출된 나무를 활용하는 등 인적·물적 자원이 적극 반영됐다”고 말했다. 또 “대장경판 원판보다 판각기술이나 역량이 뒤떨어져 향후 학술연구나 개별경판 복원과정에서 비교·분석자료로도 적극 활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성수 청주대 교수는 “해인사대장경판 수량을 재지정할 때 보각경판 등의 숫자를 종합한 총계인 8만1352판으로 결정짓는 것이 타당하다”며 “일제강점기 보각된 경판이라 하더라도 전통적인 대장경 원판 조성방법에 준해 만들어졌으므로 전체 집계에서 누락되거나 제외되선 안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해인사대장경판은 1236년부터 대장도감 등에서 만들어진 이래 850년 이상 유구한 세월이 흘렀고, 사계절 온·습도 변화 및 비바람 등에 의해 부식되거나 잦은 인경 등으로 훼손되기 마련이다”며 “훼손된 경판이 발견되면 지금이라도 원판은 당연히 보각경판을 판각해 대체해 줘야만 ‘대장경의 완결성’이라는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은 후대 만들어졌거나 중복 경판들은 별도 보존책을 수립해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원장은 “대장경판을 인출할 때 경판 가운데 마멸된 판이너 판이 있는데도 못 찾아서 다시 새긴 판 등이 있어 이중판이 생기기도 했다”며 “이중판은 섞어 보관해선 안 되고 보존 전승의 역사적 증거물로 보존할 가치가 있으므로 그에 상응하는 보존책을 따로 수립하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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