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을미년 동안거 결제에 부쳐

지난 11월26일 동안거 결제일을 맞아 전국 100여 선원에서 2200여명의 스님들이 겨울안거에 들어갔다. 앞으로 석달간 외부와의 접촉을 끊고 오직 구도정진에만 전념하게 된다. 신심(信心)과 분심(忿心), 의심(疑心)을 갖고 일제히 화두참구에 들어가는 것이다. 진제 종정예하는 결제법어 서두에 “세계에서 우리나라만큼 안거제도가 제대로 이어오고 있는 곳이 없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이며 얼마나 수행하기 좋은 곳인지 생각한다면 부처님의 은혜와 시주의 은혜를 잊지 말고 일각도 방일하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지침을 내렸다. 종정예하는 또 해제 때 명안종사가 나타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일념삼매가 시냇물처럼 끊어지지 않고 일주일이고 한달이고 일년이고 지속되면 홀연히 보는 찰나에 듣는 찰나에 화두가 박살이 나게 된다”고 설하면서, “진리의 낙(樂)을 수용하며 불조의 스승이 되고 인천의 스승이 되어 천하를 횡행하는 대장부의 활개를 치게 된다”라고 말했다.

종정예하 외에도 전국의 총림 방장 스님들은 일제히 결제법어를 내렸다. 이번 동안거 결제법어는 특히 화합과 평화를 추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갈등을 일으키는 욕망과 번뇌를 내려놓고 중생 향한 연민과 자비를 실천하는 것이 안거 수좌들의 본래 자리임을 인식케 했다.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 원명스님은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자비심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아직 철저하다고 할 수 없다”며 “오늘 결제는 모든 망상을 내려놓고 용맹하게 그 문으로 들어갔다가 무량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호방하게 다시 그 문으로 나올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덕숭총림 수덕사 방장 설정스님도 “욕망과 환상에 점착되어 있는 한 진리의 길에 들어갈 수 없고 설사 수행한다 해도 형식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하면서, 주관과 객관이 무너졌으니 무주무상(無主無相)이라고 하는데 이것 그대로 원융무애의 세계, 혼연일체의 경지라고 강조했다.

현 시대를 바라보는 안목을 제시하는 방장 스님들의 주옥같은 법어는 선원에 방부를 들인 2000여 수행납자들에게 주어진 숙제만은 아니다. 출재가를 막론하고, 서로 다른 종교와 계층, 정치와 사회 전반에 분별을 깨부수고 새겨들어야 할 가르침이나 다름없다.

때마침 동안거 결제일에 영결식을 봉행한 김영삼 전 대통령 역시 ‘통합과 화합’을 유훈으로 남겼다. 파란만장했던 격동의 시대를 온몸으로 겪어온 정치인이 우리에게 남긴 화두는 다름아닌 화합이다. 통합과 화합은 연민과 자비심이 전제될 때 빛을 발한다. 2015년 11월27일 현재 수백명의 경찰병력에 둘러싸여 있는 한국불교 총본산 조계사 일대에도 이젠 연민과 자비, 통합과 화합의 메시지가 울려퍼져야 할 것이다.

[불교신문3158호/2015년12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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