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신 곳: 충남 논산시 관촉동 215.

관촉사 인근 반야산 기슭에 남바우를 쓴 형상의 뚝기 가득한 석불이다. 남의 마당 안에 계셔 안방까지는 열 발자국도 되지 않는다. 관촉사 미륵불보다 먼저 만들어졌다는 속설로 엄마미륵이라는 별칭도 있다.

육계라기보다는 보관을 얹기 위하여 머리모양을 이렇게 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비례가 다소 어색하다. 한 뼘 가까운 음각의 백호광 자리는 이마를 꽉 채우고 거들뜬 왕방울만한 눈에 눈썹은 두 줄의 금을 그어 표현하고 코는 작게, 입은 양옆으로 깊게 새겨 앙다문 듯이 보인다. 기승밥을 먹은듯한 양 볼의 두툼한 이중 턱 아래로는 목이 짧아 삼도는 생략했다.

통견의 법의자락이 자연스럽게 내려오다가 양 팔꿈치에서 속옷이 세 줄 씩으로 V자를 그리며 양발사이를 내려오며 물결상으로 선묘(線描)했다. 수인은 외장(外掌, 손바닥이 밖으로 향한)한 오른손의 검지를 왼손이 감싸고 있는데 드물지만 홍천 물걸리 사지 석불(보물 제542호)등 몇 곳에 더 있다.

두 발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지대석에 새겼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렇게 보면 지금의 지대석은 제짝이 아닌 것 같다. 앞면 양 끝에 홈을 파놓았는데 옛날 사진에는 안상을 앞뒷면에는 세 개, 양옆으로는 두 개씩 둔 모습이다. 흙을 북돋워 땅속에 묻은 형국으로 변한 것이다. 조금만 걷어내면 훨씬 좋은 모습을 볼 수 있을 텐데 아쉽다. 근처에 관촉사 미륵불(보물 제218호). 대조사 미륵불(보물 제217호) 등과 함께 고려시대 거불양식의 위용을 지닌다.

섬떡이나 받아드셨을 부처님께서 남의 마당 가운데 계시면서 풍상을 겪는 안쓰러운 석불이기는 하나 어차피 입전수수(入廛垂手)의 길이 깨달음의 궁극이라 치면 이 또한 우연의 일치치고는 절묘하다. 행정당국과 협조하여 불상, 탑등을 절로 모시고 와서 예경의 대상이 되게 하고 만대토록 보존·보호에 각별해야 할 지금…. 우리가 부끄럽다.

[불교신문3158호/2015년12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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