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제 앞둔 산청 심적사 선원을 가다

추파선사 뜻이어 개원 
선원 중심 전통 되살려
입방 신청 수시로 진행

재가자들도 산철 정진
연중 쉬지 않고 공부…
결제 해제가 따로 없다


경남 산청, 응석봉(해발 1099m)을 등지고 심적사(深寂寺) 대웅보전 앞에 서자 올려다보며 온 길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마을은 산 뒤에 숨었고 길은 끊어졌다. 한 발 내디디면 훌쩍 건너갈 듯 지척이기도 하고 한 번도 본적 없는 세상 같기도 하다. 심적사를 품은 응석봉이 지리산에서 흘러온 산이면서도 지리산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산이라는 그 말이 가히 맞는 듯하다.

이 깊고 높은 산중에 본사(本寺) 버금가는 대찰(大刹)이 서있다는 게 신기하다. 스님들 법력(法力)은 어디 까지 미칠까? 경이로울 따름이다. 지난 11월23일 결제를 사흘 앞둔 심적사 선원에는 산철 결제를 한 수좌 몇 명과 선원장, 그리고 주지 스님만 절을 지키고 있었다. 10명 가량 방부를 들였는데 대부분이 아직 입방 전이다.

낯익은 노선사가 반갑게 맞았다. 선불장(禪佛場)을 채울 수좌들을 기다릴 선원장 스님에게 불청객이 먼저 들이닥쳐 죄송스럽던 차에 낯설지 않은 분이 계셔 그나마 안심이다. 부안 월명암 사성선원 선원장으로 있었던 일오스님이다. 잠시 선원을 떠났다 했는데 이곳 심적선원 선원장으로 온지 1년 됐다고 한다. “법 있는 선지식 어른 스님께서 후학을 지도하셔야 선원 대중이 중심을 잡고 제대로 공부할 수 있다”는 주지 법광스님의 청 때문이었다.

동안거 결제를 사흘 앞두고 만난 심적사 선원장 일오스님(왼쪽)과 주지 법광스님.

주지 스님도 수좌다. 봉암사에 3년 정진하고 칠불암 등 여러 선원에서 입승을 보았으며, 기본선원 선감(禪監) 소임을 맡은 바 있는 구참이다. 제방선원에서 정진하다 우연히 이곳 심적사에 들렀다가 걸망을 풀었다. 심적사에 선원이 생긴 지는 이제 3년 됐다. 주지 스님이 열었다. 심적사 선원은 신생이 아니고 복원(復元)이다.

조선 영조 대 추파(秋波) 홍유(泓宥,1718~1774)선사가 선원을 열었었다는 기록을 주지 스님이 박물관에서 찾아냈다. 조선후기 선승이자 문인으로 심적사에 주석· 입적한 추파스님의 뜻을 이어 선원을 다시 열고 이듬해부터는 추파문화예술제도 개최하고 있다.

18세기 후반이면 조선에 선(禪)의 숨결이 간신히 맥만 뛰고 있을 때다. 원융이라는 이름아래 이것저것 다 섞여 들어와 무엇이 진(眞)이고 무엇이 속(俗)인지 가릴 여유도 없이 오직 살아남는 것이 최선인 시절에 깊은 지리산 자락에 선원을 열었으니 선사로서 추파스님의 원력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주지 스님이 추파선사를 기리고 선원을 연 것은 그 많은 선원에 하나 더 보태기 위해서가 아니다. 출가자 감소 여파가 선원에도 미쳐 납자는 줄어들고 나이는 늘어난다는데 심산(深山)에 10여명 구참 납자들 들이고자 선원을 연 것은 아니다.

조선의 선불교가 숨이 멎어갈 무렵 추파가 선원을 일으켰듯 심적사 주지 스님은 본래 선원의 모습을 구현하고자 한다. 중국 요순시대 왕(王) 위를 준다하면 ‘더러운 말 들었다’며 귀를 씻은 것처럼 주지하라면 경기 일으키며 도망갔던 수좌들이다. 주지는 선원 외호(外護)가 주소임인데 둘의 처지가 역전된 지 오래다.

심적사는 옛날 전통을 되살리기 위해 선원을 열었다. 그래서 이곳 심적사에서 주지 스님은 선원을 돌보는 원주(院主)며 대중들과 함께 정진하는 수좌다. 주지 스님은 외호하면서 수좌들과 똑같이 정진한다.

3개월 결제 동안 일체 밖을 나가지 않고 함께 참선하고 정진한다는 스님은 “대중이 공부한 힘으로 함께 사는 것이다. 일반 사찰 주지 개념은 내려놓고 대중과 함께 정진하고 있다. 요즘처럼 선지식을 목말라 하는 시대에 선덕 스님께서 도량에 계시니 주지로서 한 없이 존경스럽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런 주지 스님을 선원장 스님은 주지 스님이 중심이라며 각별히 챙긴다. 그리고 누가 누구를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도움 주는 것이라며 함께 정진하는 관계임을 강조했다. 주지와 선원장 스님이 이토록 각별하니 대중의 공부 또한 지리산 계곡보다 더 깊고 봉우리 보다 더 굳건하다.

심적사는 결제 준비가 따로 없다. 1년 상시 정진한다. 결제철 산철이 따로 없고 출가대중 재가대중이 따로 없다. 그러니 납자를 맞이할 특별한 준비 절차가 없다. 심적사는 해제 한 달 뒤 한 달 간 산철 결제한다. 한 달 정진 중 마지막 주는 용맹정진이다. 잠을 자지 않고 오직 참선에만 매진하는 용맹정진을 선원장 스님도, 주지 스님도 모두 ‘무사히’ 마쳤다.

산철 결제는 연중 접수를 받는다. 매달 셋째 토요일 저녁 7시에는 나한기도 정진한다. 이 때는 전국에서 불자들이 찾아온다.

결제를 맞아 어떤 마음으로 정진해야할지 어렵게 간청했더니 일오스님은 발심(發心)하라고 일러줬다.

“수행하려면 첫째가 부처님 믿고 일상생활에서 부처님 말씀을 따라 살겠다는 발심을 하고 그 신심이 끊어지지 않도록 노력해야한다. 생활에 쫓겨 부처님 잊고 있다 문득 생각나면 좌복에 앉는 식으로는 공부가 되지 않는다. 부처님의 생활이 몸에 배이도록 일상이 되어야 과거 생에 걸쳐 쌓인 업이 빠지고 수행하는 업으로 바뀐다. 전부 업이다. 마음조차 업이다. 업에 의해서 살아간다. 수행하는 업으로 바꾸어야한다. 그러자면 하루 종일 부처님 가르침 잃지 않고 간절하게 공부해야한다. 그 첫 출발이 발심이다.”

심적사 선원에서는 주지와 수좌의 구분이 없다. 모든 대중이 함께 공부하는 힘으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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