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 제11대 전국비구니회장 육문스님

지난 17일 서울 법룡사 전국비구니회관 회장 집무실에서 만난 제11대 전국비구니회장 육문스님. 회장 선거 당시 “비구니 위상과 권익향상, 변화가 첫걸음입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던 스님이 인터뷰에서 가장 강조한 덕목은 ‘화합’이다. 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가난을 스승으로 청빈을 배우고

질병을 친구로 탐욕을 버렸네

고독을 빌려 나를 찾았거니

천지가 더불어 나를 짝하는구나…”

 

대중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부처님 뜻에 어긋난다는 생각에

여기까지 와…‘동주도반’ 자세로

비구니승가 위상 확립 위해 ‘매진’ 

“첫째도 화합이고, 둘째도 화합입니다. 세 번째 또 묻는다면 역시 화합입니다.” 지난 13일 제11대 전국비구니회장에 취임한 육문스님은 ‘화합’을 화두로 삼아 비구니회와 종단, 나아가 한국불교 발전을 위해 정진하겠다고 발원했다.

육문스님은 전국비구회장 취임 후 처음으로 <불교신문>과 특별인터뷰를 갖는 자리에서 이같이 밝히고 선거 과정에서 제시한 공약 실천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육문스님과의 대담은 지난 17일 서울 법룡사 전국비구니회관 회장 집무실에서 1시간가량 진행됐다.

“산에서 나물 캐고, 마음대로 좋은 공기 마시고, 밭에 나가 일하면서 살려고 했는데, 대중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부처님의 뜻에 어긋난다는 생각에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평생 수좌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육문스님은 전국비구니회장 취임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출가수행자의 본분이 수행이지만 같은 길을 걸어가는 대중의 뜻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같은 배를 타고 깨달음을 향해가는 ‘동주도반(同舟道伴)’의 길을 가겠다고 했다. “웃는 얼굴이 참다운 공양구요, 부드러운 말 한마디 미묘한 향이라는 가르침처럼 어렵고 힘들더라도 화합의 길을 갈 것입니다. 그리하여 비구니 승가의 역량을 하나로 모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스님은 평소 즐겨 암송하는 서산대사의 선시(禪詩)를 들려주었다. 제11대 전국비구니회를 이끌어갈 회장의 마음가짐을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었다.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불수호난행(不須胡亂行)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스님은 우리말로 이렇게 옮겼다. “눈 온 들길을 걷는 사람이여, 갈팡질팡 걷지 마라, 오늘 그대의 발자취는 뒷사람의 이정표니라.”

회장 취임식에서 육문스님은 “회칙을 제·개정하는 일에서부터 비구니 스님들의 권익향상을 위한 공약내용을 하나하나 실현해 나갈 것”이라면서 “안정적인 수행환경 조성뿐만 아니라 사회의 현실참여에도 노력을 병행해서 한국사회 속에서 비구니 승가의 확고한 위상을 정립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전국비구니회장 선거 당시 육문스님은 “비구니 위상과 권익향상, 변화가 첫걸음입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통해 5대 추진과제를 대중에게 약속했다. 스님은 “일하는 전국비구니회로 거듭나겠다”면서 “비구니 승단의 위상과 권익 향상, 비구니 인재 육성, 승가화합 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비구니 스님들의 노후복지를 성심껏 살피겠다”는 다짐도 했다.

‘일하는 전국비구니회’를 구현하기 위해 △비합리적 회칙 조항 개정 △집행부 조직 개편 행정능률 제고 △모든 절차 투명하게 공개 △대중여론 반영하는 운영위원회 구성 △본회 지회 교류네트워크 재정비 △재정증대와 자체수익 창출방안 모색 △비구니회관 문호 개방 등을 실천할 예정이다.

육문스님은 “와서 보니 걱정되는 일이 없지 않다”면서 “예전에 운문사 노스님(명성스님)이 살 때는 훈기가 있고 따뜻했는데, 주인의 입장으로 와서 보니 힘든 게 있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집행부 소임을 맡은 스님들이 공심으로 열심히 일해주리라 믿기에 걱정을 많이 하지는 않는다”면서 “회장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전국비구니회를 잘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스님은 취임사에서도 “그동안 법룡사라는 비구니회관 건립을 비롯해 크고 작은 성과들이 많았지만, 처음의 설립 취지와 달리 시대에 따라가지 못한 점이 있었다”면서 “비구니 스님들과의 소통 및 구심점이 되어주지 못한 점, 그리고 종단 내에서 열악한 비구니의 위상 등에 대한 반성의 소리도 없지 않았다”고 성찰했다.

이어 “6000여 비구니 스님들도 승가공동체의 한사람으로서 아낌없는 지원과 격려, 때론 따끔한 경책으로 전국비구니회의 새로운 미래를 함께 열어 나갈 것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육문스님은 “물론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면서 “그러나 천리(千里)도 일보(一步)라는 말처럼 꾸준하게 열심히 하면 이루어질 것”이라고 낙관했다.

전국비구니회에서 함께 일을 해 나갈 스님들과 조계사 마당을 걷는 육문스님(오른쪽에서 두 번째).

육문스님은 …

1946년 충남 서산에서 출생, 1962년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스님 계사로 사미니계, 1973년 보은 법주사에서 석암스님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1969년 팔공산 양진암에서 수선안거이래 25안거를 성만했으며 제11대 중앙종회의원, 은해사 백흥암 감원, 군위 법주사 주지 등을 역임했다. 2004년부터 2010년까지 전국비구니선원 선문회장으로 승가교육과 본분납자 육성에 매진하고 있다. 현재 백흥암 회주, 조계종 선원수좌복지회 이사.

“집행부를 맡은 스님들이 당신들 마음대로 하지 않고, 모든 것을 (회장인 저와) 의논하여 결정이 난 후에 처리하고 있습니다. 젊은 스님들이 잘하고 있지만, 최종 책임은 저에게 있는 만큼 면밀히 잘 살펴 나갈 생각입니다.”

종단과 화합하며 전국비구니회 발전을 이루겠다고 밝힌 육문스님은 “선학원 결의문을 대중이 많이 모인 취임식날 발표하는 것이 당연하기에 그렇게 했다”면서 “(선학원에 있는) 비구니 스님들도 우리 식구인 만큼, 선학원도 (종단 방침에 따라) 화합해서 앞으로 함께 불교발전에 기여해 달라”고 당부했다.

1969년 팔공산 양진암에서 처음 방부를 올린 이후 25안거를 성만한 육문스님은 납자로 대중의 표상이 되어 왔다. 선원에서 3년간 몸을 눕히지 않고 정진하는 장좌불와도 하고, 일체 말을 하지 않는 묵언(?言) 수행을 한 수행자이다.

“참선할 때 말을 자꾸 하면 아무래도 손해가 많다”고 회고한 육문스님은 고담화상(古潭和尙)의 법어 가운데 한 구절을 들려주며 불제자들의 정진을 당부했다. “약욕참선(若欲參禪) 불용다언(不用多言) 조주무자(趙州無字) 염염상련(念念相連), 만약 참선을 하고자 한다면 조주무자를 놓지 않고 계속 공부해야 성불할 날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글을 보고 난 뒤에는 되도록 대중과 어울리지 않고 정진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육문스님은 “어느 누군들 수행자가 그렇게 살지 않았겠냐”면서 “옛날 어른들이 평생 수행의 길을 걸었듯이, 저 역시 남과 똑같이 부처님 법(法)을 어기지 않고 살려고 노력했다”고 수행자의 삶을 겸손하게 전했다.

그러나 “수행자는 ‘일도양단(一刀兩斷)’할 줄 알아야 한다”고 ‘결단’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래야 부처도 되고 조사도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한 그런 자세를 가져야 부처나 조사가 되지는 못해도 부처님이 가신 길만이라도 금생에 알 수 있지요.” 육문스님은 “스님들이 각고의 노력으로 수행하고 정진해야 한다”면서 “우리 스님들이 부처님 법을 지키며 잘 살 때 모든 사람이 스님을 존경하고, 따라온다”고 강조했다.

세파에 시달리는 세상 사람들에게 지남(指南)을 제시했다. “사람들은 똑같이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하늘에서 똑같이 비가 내리는데, 초목은 크고 작고 다릅니다. 세상 사람의 모든 업은 수행자의 책임입니다. 열심히 잘 사는 사람에게 길이 있지만, 지금 당장 편하려고 하면 길이 없습니다. 자기 힘을 다해서 노력하면 안되는 일이 없습니다.”

대담을 마무리하며 육문스님은 주석처에 걸어 놓고 오가며 늘 보는 글을 전했다. 이름 모를 스님이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참 인생의 길’이 바로 그것이다. “가난을 스승으로 청빈을 배우고, 질병을 친구로 탐욕을 버렸네, 고독을 빌려 나를 찾았거니, 천지가 더불어 나를 짝하는구나….”

[불교신문3157호/2015년11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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