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여성 장씨, 호루라기 불고 고함 질러 탈출 독려…자신은 피신 못해

"자신의 몸은 돌볼 틈도 없이 130여명을 탈출시키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녀는 진정한 의인이었습니다."

지난 10일 오전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건조중인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 탱크 내부에서 발생한 불로 목숨을 잃은 장모(50·여)씨를 두고 뒤늦게 '의인'이란 평가가 나왔다. 화재 원인을 수사중인 거제경찰서 직원들 사이에서 흘러나온 말이다.

사고 현장 '화기책임자'였던 장씨는 불이 나자 어두컴컴한 탱크 내부를 오가며 호루라기를 불면서 "불이 났다"고 외치고 다녀 많은 생명을 구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세월호 선장이 승객들을 외면한 채 배를 버리고 달아난 것과 대조를 보였다는 말도 뒤따랐다.

화재 당시 탱크 내부에서는 무려 130여명의 근로자들이 작업중이었다. 이날 화재로 장씨 등 2명이 숨지고 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화기책임자는 탱크 내부에서 화재 원인이 될만한 물질 등을 미리 제거하고 화재 발생시 호루라기를 불어 근로자들을 대피시키는 역할을 맡고 있다. 탱크 내부에 칸막이가 워낙 많고 비좁아 한쪽에서 불이 나면 다른 쪽에서 이를 쉽게 파악할 수 없는 점을 고려해 만든 직책이다.

경찰 관계자는 "장씨가 대피를 적극 유도하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근로자들이 희생될 수도 있었던 상황"이라며 "당시 탱크 안에서 근무하던 근로자들이 장씨의 희생정신을 높이 사고 있다"고 말했다.

숨진 장씨는 대우조선 한 협력업체 화기감시팀 소속 수습사원으로 4개월 교육을 받고 현장에서 일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았다. 

당시 탱크 안에서 작업을 했던 협력업체 직원 A씨는 회사와 경찰에 낸 자인서에서 "작업이 거의 끝나는 시점에 밑에 있던 아주머니의 호루라기 소리와 '불이야'라는 소리를 들었다"며 "소화기를 들고 급히 내려가 보니 불이 활활 타고 있어 재빨리 대피했다"고 증언했다. 

장씨가 호루라기를 불지 않았더라면 화재사실을 몰라 자칫 변을 당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협력업체 직원 B씨는 "아주머니가 소리를 질렀다"며 "그 소리를 듣고 재빨리 대피해 살아날 수 있었다"고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되새겼다.

또다른 협력업체 직원 C씨는 "호루라기 소리를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대피 후 탈의실에서 동료들이 호루라기 소리를 듣고 재빨리 대피해 목숨을 건졌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아주머니가 불을 보고 더 많은 근로자들에게 이를 알리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일 거제경찰서장은 "수습교육을 갓 마친 장씨가 배운대로 화기책임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다 변을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장씨는 진정한 의인"이라고 말했다.

지난 12일부터 화재 원인 수사에 나선 경찰은 조만간 수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거제=연합뉴스) 이경욱 기자 = kyungl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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