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법성게

허장욱 지음 / 부다가야

2년간 화엄·법화경 섭렵하고

중국 현지까지 발로 답사하며

의상대사 구도소설로 형상화

 

“업에 사로잡힌 노예 아닌

주인공으로 삶 살기를…”

의상스님의 구도 역정을 다룬 소설 <법성게>를 펴낸 허장욱 작가. 부산지방국세청장을 역임한 허장욱 작가의 꿈은 소설가였다. 허 작가는 화엄사상에 대한 연구를 토대로 이 책을 펴냈다.

 

‘원효 관련 책은 많은데 왜 의상은 없을까’ 고민은 여기에서 시작됐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을 붙들고 물어보아도 의상스님에 대해 속 시원하게 답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뛰어들었다. 의상스님에 관한 것이면 무엇이든 문헌을 보고, 흔적이 있는 곳이면 국내는 물론 중국까지 갔다. 국내 논문을 전부 읽고, 의상스님이 등장하는 <삼국유사>는 당연하고 <송고승전>도 읽었다. 경전도 섭렵했다. 화엄사상을 이해하기 위해 <대승기신론> <능가경> <능엄경> 등 화엄 법화 관련 경전도 파고들었다. 자료 수집만 꼬박 2년이 걸렸다. 경전의 핵심 내용도 파악했다. 불법이 참으로 깊고 오묘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터득했다. 그런데 이를 대중들에게 알릴 방법이 막막했다. 깊고 오묘한 이 진리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다시 고민이 시작됐다. 소설을 쓰기로 했다. 그는 원래 소설가가 꿈이었다. 경남고를 나온 수재였던 그는 ‘생각보다 일찍’ 고시에 덜컹 붙는 바람에 소설가의 꿈을 펼쳐보기도 전에 공직에 발을 디뎠다. 저 깊숙이 묻어두었던 어릴 적 꿈과 화엄사상을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포교 원력을 더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소설 <법성게>(부다가야)다. 저자는 허장욱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이다.

소설 제목을 <법성게>로 한 까닭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의상대사가 지은 법성게는 방대한 대방광불화엄경의 진수를 210자의 7언 30구의 시로 함축해 오늘날 까지 진리에 목마른 후학들에게 큰 광명의 등불이 되고 있다. 이 법성게의 뜻을 잘 헤아리는 것만으로도 석가모니부처님이 대각을 이루신 후 처음으로 설파하신 우주의 실상을 헤아릴 수 있다.”

소설은 1300여 년 전 법성게라는 아름답고도 신묘한 시가 탄생한 배경을 찾아 의상대사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려냈다. 의상의 전기소설인 셈이다. 한 구도자가 바다를 건너 중국으로 구법의 길을 떠나 마침내 화엄대법사가 돼 다시 귀국한 후 화엄의 세계를 널리 펼쳐 눈먼 중생들의 고통을 구제하는 구도 역정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다큐멘터리 프로듀서처럼 현장을 발로 뛰며 확인했으며, 화엄법사처럼 화엄과 공·무상·선 등 불교 진리를 술술 풀어낸다. 가령, 문헌에는 의상스님이 중국 양주로 갔다는 내용과 등주로 갔다는 두 가지가 나온다. 그는 등주를 선택했다. 그 이유는 양주 뱃길은 의상스님 보다 한 참 뒤인 장보고가 개척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또 철저하게 자신의 ‘불교’로 만들어 충분히 소화한 뒤 불교사상의 진수를 글을 통해 보이고 있다. 그래서 소설이 아니라 고승의 법문, 불교핵심 교리를 읽는 듯한 즐거움을 준다.

소설인 만큼 작가의 상상력도 충분히 발휘돼야한다. 그러나 상상력도 현실 가능해야 독자들은 수긍한다. 의상을 사모했던 선묘낭자를 신라 출신의 중국 양녀로 설정했다. 작가는 “의상을 사랑할 정도면 언어 소통이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선묘는 삼한의 말을 할 줄 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래서 백제에서 건너온 석공의 딸이며 총명하고 아름다운 까닭에 중국 부호의 양녀로 신분이 변한 의상의 중국어 과외교사로 설정했다” 고 설명했다. 작가의 상상력이 이처럼 역사적 사실에 철저하게 부합하면 독자는 상상이 아니라 사실로 믿게 된다. 이는 작가의 풍부한 취재와 현장 답사 방대한 독서가 뒷받침 될 때만이 가능한 어려운 작업이다. 이 책에서 어쩌면 작가의 상상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일 수도 있다는 합리적 수긍에 이르는 대목이 있으니 바로 의상과 원효의 만남이다.

“역사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이 책에서는 원효와 의상이 만나는 대목이 나온다. 원효는 천성산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는 역사적 사실이다. 의상은 범어사를 창건한다. 이 역시 사실이다. 범어사와 천성산은 바로 지척이다. 원효는 대중들과 동고동락하며 불법을 펼쳤다. 의상 역시 마찬가지다. 전란 속에서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자 노력한 인물이 의상이다. 둘은 각자의 영역에서 불법으로 백성을 구하고자 구도정진하다 천성산에서 조우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천명의 성인(千聖)이 나도록 노력하자는 원력을 세우고 원적산을 천성산으로 바꿔 부르게 된다.” 부석사에 이 땅 최초의 대학인 화엄대학이 있었다는 설정도 흥미롭다. 실제로 영주 소수서원은 그 이전 숙수사라는 사찰이었다. 그 절이 의상스님이 세운 최초의 불교대학일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상상력, 치열한 작가의 공부가 합쳐져 원효에 가려졌던 의상을 되살려낸다. 의상스님을 통해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 “의상은 화엄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절을 짓고 변방인 북으로 갔다. 화엄철학의 핵심은 무엇인가, 어떤 경계도 흔들리지 않는 ‘참된 나’를 찾아 과거의 업에 끌려 다니는 삶이 아닌 주인공의 삶 원력의 삶을 사는 것이다. 화엄은 그래서 밝은 마음의 빛이다. 그 화엄의 진리가 이 땅을 밝히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소설을 펴냈다.”

그는 2012년 <화엄예찬>(푸른별)이라는 시집과 단편소설집 <시인과 뜸부기>도 펴낸 바 있다. 

[불교신문3156호/2015년11월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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