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의 마음공부 희곡에 담아

자물쇠는뻐꾸기 소리에 맡겼다

김숙현 지음/ 오션

 

“세영: 스님이야말로 명성이 자자하던데요. 별명이 ‘말뚝수좌’라면서요? 한번 자리에 앉으면 열시간이고, 스무 시간이고 일어설 줄 모른다고…

환주: 말뚝수좌면 뭐합니까. 무작정 앉아만 있다고 된다면 그야말로 말뚝은 모두 성불했게요. 절 많이 하는 것으로 도를 이룰 수 있다면 방아깨비야 말로 일등감이죠. 잠 안자고 정진하는 걸로 치자면 목어가 제일 먼저 깨칠겁니다.”(‘자물쇠는 뻐꾸기 소리에 맡겼다’ 중)

1980년대 사회 곳곳에서, 사찰의 주요행사에서 빠지지 않고 연극이 등장했다. 성도절에 해인사와 같은 큰 절에서는 스님들이 직접 연극을 꾸미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연극을 접하려면 대학로에나 가야 가능하다. 그 자리를 대형 스케일의 영화가 대신하고 있다. 하지만 연극은 종합예술의 영역으로,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꾸준히 이어오는 문학장르다.

희곡작가이면서 문학인으로 활동하는 김숙현 선생이 희곡선집 <자물쇠는 뻐꾸기 소리에 맡겼다>를 펴냈다. 김 작가는 이 책에서 <내 인생은 라르고> <고양이가 싫여> <타지마할, 타지마할> <바이올렛 왈츠> 등 다양한 역사와 배경을 소재로 한 작품을 소개했다.

14편의 작품이 수록된 이 선집은 인생에 대한 김 작가의 철학이 담겼다. 본지 논설위원으로 활동중인 김숙현 선생은 <현대문학>에 희곡 ‘잔영’이 추천되고,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장막극 <바벨탑 무너지다>로 문학계와 연극계에 동시에 입문한 이후 희곡 대본과 논문을 다수 발표한 중견 작가. 1980년 한국희곡문학상 수상을 비롯해 현대문학상, 봉생문화상, 올빛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작가의 희곡은 상당수가 수행자의 모습이나 불교철학을 민낯 그대로 담고 있다. 원효와 의상스님의 일화를 담은 ‘환화여, 환화여’의 대사다. “다른 물은 아니지. 물은 같은 물이야. 그런데 왜 아깐 꿀맛이고 지금은 구역질이 나지? 아깐 샘물로 보고 이젠 해골물로 보기 때문이다. 분별심 때문이다. 분별을 하므로 괴로움과 즐거움이 있다. 이 분별심만 없애면 지옥과 극락도 따로 있지 않다. 아아, 감로가 바로 이것이로구나.”(원효스님의 대사)

불자로서 오랜 신행활동을 해온 김 작가의 깨달음도 별반 다르지 않다. 마음공부의 결과를 배우를 통해 이렇게 표현한다. “물속에 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는 그 하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내 안에는 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고.

김숙현 작가는 “문학은 같이 살기도 힘들고, 헤어지기는 더 힘든 연인”으로 표현한다. 문학과 함께 하는 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광휘의 삶이기 때문에, 바쁜 생활의 와중에도 문학을 손에서 놓지 못한 고뇌를 담은 말이다. 1999년 세 번째 희곡집을 낸 이후 16년 만에 희곡선집을 낸 미안함에 대한 고백이기도 하다.

희곡은 연극대본에 멈춰있지 않다. 현재의 대화체로 쓰여진 생생한 문학이다. 그래서 읽는 재미가 더 솔솔하다. 남송우 부경대 국문과 교수는 발문에서 “비현실적인 꿈과 현실적 삶을 유지해야 하는 가족들의 보편적인 욕망은 자연스럽게 충돌할 수 밖에 없다. 김숙현 선생은 희곡작품에서 현실과 이상 사이에 남다르게 갈등하며 살아가는 개성적인 인간군상을 담았다”고 평했다.

[불교신문3156호/2015년11월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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