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 원로의원 무산스님


아지랑이


나아갈 길이 없다 물러설 길도 없다
둘러봐야 사방은 허공 끝없는 낭떠러지
우습다
내 평생 헤매어 찾아온 곳이 절벽이라니

끝내 삶도 죽음도 내던져야 할 이 절벽에
마냥 어지러이 떠다니는 아지랑이들
우습다
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더란 말이냐

 

시조시인 오현스님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스님. 설악산 신흥사와 백담사를 수행과 문학이 함께 하는 도량으로 일구어 내면서 스님은 다시 우리 곁에 원로 설악 무산스님으로 다가왔다.

 

무산스님은 …

무산스님은 1959년 직지사에서 성준스님을 은사로 사미계를, 1968년 범어사에서 석암스님에게 비구계를 받았다. 불교신문 주필과 제8대, 제11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과 제3교구본사 신흥사 주지를 역임했으며, 현재는 신흥사 조실과 종립 기본선원 조실로 후학을 지도하고 있다. 법호는 설악.

무산스님은 오는 25일 동안거에 들어간다. 백담사 무금선원에서 3년째 하안거와 동안거를 보내고 있다. 대중과 안거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텐데. 왜 안거에 들어가는지 물었다.

“절에서 머물고 싶어서 안거를 해. 나이가 어느새 80줄에 접어드니 어디 마땅히 갈 절이 없어. 물론 이곳저곳 가면 되지만, 주지 스님들이 불편해해. 그냥 신경 안 쓰고 생활하면 되는데, 그게 안 되는가 봐. 당연한 거겠지. 안거는 그런 불편은 적어. 그래서 안거에 들어가. 그런데 요즘 보면 내 스승은 선지식이나 어른이 아니라 젊은 수좌들이야. 수좌들 눈에 혹시 내가 특별대접이라도 받는 것으로 비쳐질까 조심조심 하지. 그들이 내 스승이야.”

무산스님은 마치 몸을 바꾸듯, 무문관서 안거를 하고 해제 때는 서울 도심에서 문인과 정치인, 경제인을 만난다. 이미 그런 일에 무심(無心)하다.

스님과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문학으로 시작됐다.

“내가 평생 쓴 시가 100편 밖에 안 돼. 그래도 이 사람 저 사람이 그걸 묶어 몇 권의 시집을 냈어. 글을 가지고 이런저런 평론을 써서 책을 내는 이도 있어. 다 쓸데없는 일이야. 시비만 생겨. 세살배기 아이도 알지만, 여든 살 먹은 노인도 행하기 어려운 것이 불교고 가르침이야. 그 마음을 시로 담아내야 해. 무작묘용의 세계를 시로 담을 때 바로 선시가 되고, 깨달음의 시가 되지.”

무산스님의 시세계를 관통하는 말로 문학평론가들은 ‘무작묘용(無作妙用)’을 꼽는다. 자연스럽게 움직이고 진리대로 행동하되 인위적인 재주를 부리지 않는 것이 무작(無作)이며, 그에 따른 무심(無心)한 행동이 ‘묘용(妙用)’이다.

스님의 시 ‘아득한 성자’는 그런 경지를 담은 작품으로 꼽힌다. 천년을 수행했어도 결국 하루살이 떼에 지나지 않는다는 ‘아득한 성자’에 나타난 시심(詩心)은 우리에게 인생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답을 동시에 던진다.

“지금까지 돌아보니 일도 많이 했어. 낙산사 불사도 많이 했고, 요양원도 지었고, 백담사 앞에 작게 시작했던 만해마을도 제법 커졌어. 만해축전도 자리를 잡았고. 백담사에 선원도 만들었지. 그런데 이 나이가 되고 보니 그런 것들이 다 아지랑이 같은 거야. 언제 죽을지 모를 삶의 꼭대기에 서고 보니 그런 것들이 손에 잡히지 않는 존재들로 보여. 인생이란 것이 다 그렇지. 우리들이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들도 결국 그런 존재들 아니겠는가. 아지랑이지.”

무산스님의 해제법문이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하안거 해제 때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오늘의 문제가 화두다. 교황에게서 배우라”며 “출가 생활은 일탈이다. 부모와 형제를 버리고 출가하는 자체가 일탈 아닌가. 그렇다면 남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화두를 던진 바 있다.

“천년 전 무(無)자 화두나 본래면목을 찾는다고 해서 지금 사람들이 어떤 감동을 받고, 신심을 일으키겠나. 지금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 스님은 <벽암록>을 해설한 책을 펴낸 적도 있다. 선어록에 정통하지만 선어록에 얽매이지 않는 안거법문은 그래서 매번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스님은 “이번 안거 법문에서는 인생이 담긴 시 몇 편을 말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깜짝 놀랄 정도의 법문이라야 수행자들이 정신 퍼뜩 차리고 공부를 한다”는 것이다.  

낙산사 불사도 많이 했고 요양원도 짓고
만해마을도 세우고 선원도 만들었지 그런데
삶의 꼭대기에 서서 보면 모든 것이 아지랑이 같아

시비에 걸리지 말고 돈 쌓아두지 말고 살아야
두루두루 괜찮아…
내 스승은 선지식이나 어른이 아니라
젊은 수좌들이야…

스님은 노인복지시설에 대한 관심도 보였다. “나이가 들수록 어디 가기가 힘들어진다. 쉴 곳이 점점 줄어든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는 스님은 “그런 분들이 편안하게 와서 쉬는 곳이 요양원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요양원은 현대판 고려장이야. 고려 때는 산에다 버렸지만, 요즘은 요양원에 버리도록 한 거지. 그렇다고 그것이 틀린 것은 아니야. 그냥 인생인거지.”

무산스님에게 “원로의원으로 추대되셨다”고 전하자 즉답이 돌아왔다. “중이 나이 들고 수행경력 좀 있으면 다 원로 아닌가. 원로의원이니 하는 것 모두가 시비거리야. 물론 원로의원이란 것이 나쁜 것은 아니야. 다 필요하니까 존재하는 거지. 하지만 내겐 안 맞아. 내가 불교신문 주필 끝내고 나서 지금까지 총무원에 딱 세 번 갔어. 한번은 지관스님이 총무원장 한다기에 한번 갔고, 입적해서 조문하러 한번 갔어. 전에는 총무원장 했던 지관스님이나 법주사 혜정스님, 문수사 혜정스님 등 친한 스님들이 있었는데, 어느새 나만 남았어. 신흥사에만 원로의원이 없다고 몇 번을 말하기에 알아서 하라고 했어. 하니 안하니 시비하는 것도 시비야.”

세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대해 스님은 한 말씀을 전했다. “돈이 있는 곳에 시비가 있어. 모은 재산을 남겨놓으면 자식들 간에 시비가 생기고, 돈을 좀 모아서 가지고 있으면 절집에도 사회에도 시비가 생겨. 나이가 있는 사람들도 ‘돈, 돈’하는 사람들이 있어. 나이 들어 돈 있어서 뭐하겠나. 버리기도 힘들어. 인생이란 다 같아. 모을 때 모았으면 쓸 때 쓸 줄 알아야 하지.”

무산스님은 수 년 전, 만해마을을 동국대에 기증했다. 백담사 인근 주민을 위해 버스를 몇 대 구입해 줬다. 그 버스는 설악산 입구에서 백담사까지 외길을 운영하며 마을의 소중한 수입원이 되고 있다. 또 얼굴도 모르는 수십 명의 청소년들에게 매달 장학금과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 모아두지 않고, 돈이 생기는대로 필요한 곳에 보낸다.

3년 전, 스님이 안거에 들어갔다는 기사를 읽고 한 학생이 백담사에 찾아와 쪽지를 두고 간 적이 있다. 당시 스님의 해제법문에서 “스님이 돈 버리는 곳”의 출처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학생이 내가 노망나서 무문관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신문서 읽은 모양이야. 걱정이 됐겠지. 내가 노망나는 바람에 자기가 장학금을 못 받으면 대학도 못 가는데, 하는 걱정이. 그러다가 이런 생각을 한 모양이야. 장학금 못 받아도 괜찮아. 대학 못 가도 괜찮아. 편지를 보니 ‘노망나도 괜찮아’라고 쓰여 있는 거야. 그레이엄 무어가 아카데미상 수상 소감에서 ‘이상해도 괜찮다’고 말했다면서. 그 학생의 편지를 받고 내가 깨달았어. 특별히 감동을 주지 않는 법문이어도 괜찮다는 것을.”

스님은 “시비를 갖지 마라. 편견을 갖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확하고 시시비비가 분명한 것보다, 두루두루 부족한 것이 낫다는 말이다. “그것이 잃어도 얻는 것이야. 내가 항상 옳다고 하면 상대방이 날 싫어하게 돼. 이놈 저놈 다 인정하면서 시비에 걸리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스님은 “내게도 아직 버릴 것이 조금 남아 있다. 조만간에 그 중 하나를 정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랜 시간 지켜왔던 것일지라도 버릴 때 미련을 갖지 않는 것, 그것이 스님의 일괄된 삶의 모습이면서 법문 자체다. 제행무상이라 했다. 무엇에도 끄달리지 말라는 말씀이다.

스님은 얼마 전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 초청으로 문학콘서트에 참가했다. 당시 좌석을 가득 메운 미국의 젊은이들을 향해 던진 말에서 무산스님의 수행과 문학에 대한 생각이 명쾌하게 드러났다.

“선은 나무의 곧은 결이요, 시는 나무의 옹이, 점박이결이라 생각해요. 선은 내가 나를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고, 시는 인생에 대한 물음에의 답이랄까. 설혹 시가 인간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되었다 해도 언어를 만나는 순간, 언어의 때가 묻어버렸기 때문에 시는 마음을 조작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에 옹이가 박혀 점박이결로 나타나는 것이 시입니다. 하늘에 보름달이 떠 있으면, 맑은 호수에도 똑같은 달그림자가 떠 있습니다. 그 달그림자를 볼 수는 있어도 건져낼 수는 없습니다. 건져내는 그 순간 달그림자는 부서지고 맙니다. 결국 시는 언어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무작묘용’도 결국 ‘말’일 뿐입니다.”

[불교신문3155호/2015년11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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