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불교문화재硏, 송광사서 목판 대량인출 및 전통인쇄 재현

일반의 출입을 엄격히 금하는 송광사 화엄전 내부 모습.
전국 사찰 소장 목판 원형 자료 확보하고
전통에 기초한 고유 인쇄문화 복원 노력

닥나무 사용해 전통기법으로 제작한 한지
소나무 태워 만든 송연묵으로 인출 진행
향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추진

세계문화유산으로 손색없는 전국의 조선시대 중요 불교 목판이 대량으로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조계종 불교문화재연구소(소장 정안스님)는 11일 오후 조계총림 송광사에서 ‘전국 사찰 목판 일제조사 인출사업’ 관련 기자간담회를 열고, 송광사 경판을 전통방식으로 인출(인쇄)하는 작업을 공개했다.

최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유교책판 만큼 조선시대 불교 목판도 이에 못지않은 막대한 수량을 자랑한다. 고려 팔만대장경을 제외하고 전국 사찰에 3만여 판 이상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이에 연구소는 멸실 위기에 처한 목판의 정확한 수량을 파악하고 정밀 기록화 작업을 위한 ‘사찰 목판 일제조사’를 2014년부터 실시하고 있다.

올해는 부산·울산 지역을 비롯해 함양 및 합천 지역 7개 사찰을 대상으로 5481점의 목판조사를 진행하는 한편, 기초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 심화 사업 일환으로 전남 지역 중요목판 인출작업도 병행한다.

합천 해인사에 팔만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이 있다면 송광사는 이에 버금가는 조선시대 판전(版殿)인 화엄전(華嚴殿)이 있다. 임진왜란과 6·25 등 커다란 전란에도 소중한 법보를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성보를 자기 몸처럼 아끼는 스님들의 원력과 더불어 경판만을 위해 설계되고 만들어진 이 공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도 전각 좌우에 마련된 요사채에서 스님들이 상주하며 경판을 지키고 있다.

‘화엄전’은 불교 경판 가운데 <화엄경>을 가장 많이 봉안하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평소에는 일반의 출입을 엄격히 금하지만, 이날은 특별히 조선시대 불교 목판의 모범적인 보존현황을 알리기 위해 판전 내부를 언론에 공개했다. 굳게 잠겨있던 화엄전이 열리자 수 천판의 경판이 ㄷ자 형태의 책꽂이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송광사는 보조지눌스님을 비롯한 16명의 국사를 배출한 승보사찰답게 방대한 양의 목판을 소장하고 있었다. <화엄경> 등 경전내용을 새긴 경장(經藏), 율장(律藏)을 비롯해 선사스님들의 찬술서, 한글 언해본, 불교의례 관련 경전에 이르기까지 50종 4000여 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변영재 장인이 전통기법대로 염불왕생첩경도를 닥종이에 찍어내고 있다.
이날 송광사 성보박물관 한쪽에서는 국내 원로 인경(印經) 장인으로는 유일한 변영재(67) 선생의 경판인출(전통 먹을 이용해 인쇄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인출은 먹을 목판에 칠해 한지에 차례로 찍어내는 과정으로 먹물의 농담과 칠의 양을 잘 판단해야 하는 고난이도의 작업 과정에 속한다. 변 선생은 아미타부처님의 염불왕생첩경도 경판을 닥종이에 대고 마렵(사람 머리카락으로 만든 인쇄도구)으로 일사불란하게 문지른 뒤 작업을 이어나갔다.

이날 공개한 인출작업은 올해 불교문화재연구소의 핵심 사업이다. 사찰 소장 목판의 원형 자료를 확보하고, 전통에 기초한 인쇄문화를 복원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향후 확보된 원형자료를 통해 학술 및 문화재적 가치를 규명하고 사찰 목판이 지닌 불교 전통기록문화유산으로서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데 그 의미가 있다. 또 전통 재료와 기술로 인출된 서적은 후대에 전해질 미래천년 문화유산으로 널리 보전될 계획이다. 해인사 다음으로 많은 불교 경판을 소장한 송광사에서는 20종 615판을 3부씩 닥종이에 찍어낼 예정이다.

문화재청과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인출작업을 위해 지난 1년 여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현지 조사를 통해 국내 생산되는 닥나무와 황촉규(섬유 점액제)를 사용해 전통기법으로 제작한 한지를 찾고, 소나무를 태워 제작한 송연묵을 확보했다.

연구소는 이번 인출작업 성과를 바탕으로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불교목판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방안도 추진할 방침이다.

소장 정안스님은 “현재 진행하는 인출 작업은 곧 미래의 소중한 문화유산이 될 것”이라며 “고려시대 뿐 아니라 조선시대 불교 인쇄문화의 우수성을 전 국민에게 알리고, 전통재료와 기법에 대한 인식전환의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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