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의미·예술성 주제
분야별 전문가 연구 성과 결집

한극의 원형을 찾아서, 불교의례

한국공연예술원 엮음열화당

“문화란 무릇 물과 같은 속성을 지닌다. 물이 마치 지혜의 눈을 지니고 있듯, 사람의 눈으로는 헤아리기 어려울만큼 빠르고 치밀하게 기존의 지형에 스며들어 지구의 구석구석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사회에 미치는 문화의 역할도 이와 흡사하다. 18세기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양문화는 때로 가랑비와 같이, 때로 질풍노도와 같이 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의 문화와 사회 변혁을 주도했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자신에 대한 자존감, 자신의 문화에 대한 소속감을 잊은 채 새로운 것을 배우기에 급급한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자아에 대해 각성하게 되면서 ‘뿌리 찾기’가 큰 과제로 떠올랐다. 한국공연예술원은 전통에 대한 관심과 열망이 전무하던 한국 공연예술계에 예감과 각성을 일깨우고자 한다. 무속신앙, 민속신앙에 긴밀하게 접합돼 한국인의 생사관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불교의례를 주제로, 우리 문화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세계관, 우주관, 시공간관, 복식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 양혜숙 한국공연예술원 이사장

불교의례는 불교사상과 가르침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종합예술이다. 사진은 지난 10일 열린 중요무형문화재 제126호 서울 진관사 국행수륙대재(國行水陸大齋).불교신문 자료사진

“문화는 구석구석 스며들며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

서구 문명 수용에 급급하다

잃어버린 우리 문화 뿌리를

불교의례에서 찾아가다” 

한국공연예술원이 우리 민족의 문화 뿌리를 찾아가는 작업으로 <한극의 원형을 찾아서, 불교의례>를 펴냈다. 구미래 박사의 ‘불교의례에서 시공간의 상징성’을 비롯해 홍윤식 동국대 명예교수가 ‘불교의례와 민속예술’을, 정명희 박사가 ‘조선시대 불교의식과 불교회화’를 고찰하는 등 14개 주제에 대해 전문가들의 연구가 쌓인 결과물이다.

“불교의례는 승려의 염송만으로 행하는 일상 수행의 성격을 지닌 것이 있는가 하면, 연등회, 팔관회, 영산재, 수륙재, 예수재 등과 같이 종합예술적 성격을 띤 것이 있다. 불교의례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영산재의 경우, 범패, 장엄, 작법무로 구분하여 전승자를 둔 다음에 통합 지정됐다. 불교의례로서 영산재의 가장 중요한 전승맥락을 범패와 장엄과 작법무에 둔 것인데, 이 세 요소는 각기 노래, 무대장치, 춤에 해당한다. 노래와 무대장치와 춤은 공연예술의 핵심으로, 불교의례는 공연예술의 형식으로 불교의 관념을 표현하고 있다.”

동방문화대학원대학 연구교수이면서 불교민속연구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구미래 소장은 불교의례와 일반 공연예술의 공통적 특성에서 연구를 시작한다. 이런 행위는 자연의 힘과 인간의 문제를 신의 영역에 속한 것이라 여긴 종교적 몰입의 결과물이라는 것. 그런 개념 아래서 종교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발산하는 ‘정신적 만남’이 불교의례로 나타났다는 주장이다.

공연예술의 주체가 예술가 집단과 관객의 만남이라면 불교의례는 의식의 주체인 스님과 신도, 대중의 만남이다. 불자들은 의례에 사용할 미술품을 만들고, 의례공간에서 스님들은 공연을 한다. 그 결과는 대중에게 감동을 주고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그럼 우리나라의 불교의례는 언제 시작됐고, 어떤 발전과정을 겪어 왔을까. 고(故) 김상현 동국대 교수의 여러 논문은 이를 잘 밝히고 있다. 오대산 보천스님이 남긴 기록에는 삼국시대에 이미 관음예참을 비롯해 점찰예참, 미타예참, 열반예참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신라 향가인 ‘도솔가’와 만파식적의 설화를 통해 국가적 재앙을 극복하기 위해 불교의례를 활용했다는 점을 추정할 수 있다.

원효스님이 조롱박 모양의 도구를 만들어 두드리며 ‘무애가’를 불렀다는 기록으로 신라시대 이미 불교의 가르침을 공연예술 형태로 제작해 대중에게 널리 전파했음도 알 수 있다. 이렇게 발달한 불교의례는 풍류도를 수행하던 화랑도의 ‘상열가악(相悅歌樂)’으로, 고려의 팔관회와 연등회, 백고좌회 등으로 정립됐다. 조선시대에는 수륙재를 중심으로 불교의례가 정착됐다는 것이 김상현 교수의 연구결과다.

이 책에서는 또 홍윤식 명예교수의 ‘불교의례와 민속예술’ 연구가 담겨 불교의례의 신앙적 특성과 구조, 예술적 특성을 세세하게 정리했다. 양은용 원광대 명예교수는 불교 경전을 어떻게 의례로 표현했는가에 대해, 조성진 한국영성예술협회 예술감독은 굿과 영산재의 의례를 비교했다.

심상현 동방문화대학원대학 교수는 홍(紅)가사의 의미와 가사 부착물에 담긴 사상을, 정명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가 불교의식과 불교회화를 고찰했고, 이성운 동국대 겸임교수는 수륙재의 연유와 특성 등을 두루 고찰했다. 또 윤광봉 히로시마대 명예교수가 ‘중세 한국의 강경과 창도’를 주제로 팔관회 의식이 중국의 불교의식인 강경과 창도와 어떤 차이점과 공통성을 지니는가 등을 두루 고찰했다.

해방 이후 우리는 ‘새로운 것’을 좇았다. 건축은 콘크리트와 철근으로 짓는 서양건축이 대접을 받았고, 불교와 과거의 전통은 ‘진부한 것’으로 밀려났다. 각종 공연과 예술에서도 서양예술이 우위를 접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이런 분위기는 변화했다. 한국을 내세우기 위해서는 ‘한국의 것’이 필요했고, 불교의 뿌리 아래 발전한 우리의 문화에 세계인들이 빠져들고 있다. 좋은 먹거리에 대한 관심(웰빙)이 사찰음식으로 귀결되고 있는 것도 이런 예다.

종교의례는 종교의 가치관과 철학을 고루 내포하고 있다. 불교의례는 특히 복잡하면서도 다양한 형식을 통해 불교철학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이에 대한 연구와 이해를 통해 우리의 문화를 몇 단계 끌어올리려는 시도가 이 책에 담겨 있다.

[불교신문3148호/2015년10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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