⑯ 사랑하는 것들의 상실의 문제

 

“20대 여자 대학생입니다. 사실은 제가 2주 전에 집에 오다가 고양이를 주웠어요. 근처 쓰레기장에서 누가 종이상자 안에 고양이를 넣어 버렸더라구요. 완전 눈도 못 뜬 아가였어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이다 오늘만 살려보자 해서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마침 다음날이 토요일이라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태어난지 며칠 안 되어서 고양이분유를 먹여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날부터 매일 2~3시간 간격으로 새벽에도 일어나 분유 먹이고 손으로 배변 유도도 하며 돌봤습니다. 밥 먹은 후엔 고롱고롱하며 편히 잠들 때까지 잘 쓰다듬어줬구요. 하루만 살려보자 시작한 일인데 아기가 젖도 잘먹고 제 손도 잘 타길래 계속 키워야겠다 마음도 먹었죠. 새벽마다 계속 일어나 돌보는 일이 피곤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아기고양이가 너무 사랑스러워 보람 있었어요. 한 일주일이 지나 아기가 눈을 초롱하니 떴을 때는 정말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아가야 안녕, 내가 니 엄마야, 말도 걸어보고요. 근데 며칠 전이에요. 갑자기 아기고양이가 이상한 소리를 내더니 어찌할 새도 없이 숨을 거뒀어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대처할 겨를도 없이 그냥 순식간에 가버렸어요. 너무 속상하고 가슴 아파요. 제가 뭘 잘못했나 후회도 되고 아가한테 너무 미안합니다. 차라리 제가 데려오지 말 걸 그랬을까요. 요즘 학교도 못 가겠고 그냥 방에서 울고만 있어요. 이럴 거면 왜 만나게 되었는지 아가도 불쌍하고 저도 너무 힘듭니다.” 

‘엄마 안녕, 엄마의 아가에요. 태어났을 때부터 약하게 태어나, 낳아준 엄마고양이한테도 버림받아 버려진 저였어요. 그렇게 죽을 때만 기다리며, 깜깜하고 답답한 곳에서 혼자 무서워 울고 있을 때 환한 빛과 함께 처음 저에게 다가오던 부드러운 숨소리를 기억해요. 그 숨소리와 함께 저를 어루만져주던 손길은 조심스러운 떨림만큼이나 저를 소중히 여겨주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고, 그래서 더욱 따듯했어요. 제가 맨날 배가 고파서 울 때, 쉬야가 마려워 울 때도, 그 손길은 제가 원하던 것들을 부족함 없이 가득 채워주었죠. 언제나 저를 지켜주는 그 따듯한 손바닥 위에서 저에게 말을 걸어주는 상냥한 목소리에 안겨 잠들 때 전 너무 편안하고 행복했어요. 그리고 제가 처음으로 세상을 보게 된 날, 아직은 흐릿했지만 전 바로 알 수 있었죠. 그 부드러운 숨소리의, 그 따듯한 손길의, 그 상냥한 목소리의 주인이 바로 제 눈앞에 있는 엄마란 걸요. 이 세상에 태어나 오직 숨 막히는 어둠과 차가운 외로움만 알고 떠나가게 되었을 저에게, 엄마가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 저를 꼭 안아주신 분이에요. 이 세상이 이렇게 따듯하고 상냥하다는 걸 엄마는 유일하게 저에게 알려주신 분이에요. 다음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전 또 이 세상으로 돌아올 거예요. 엄마 덕분에 이 세상이 이렇게 따듯하고 좋은 곳이란 걸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때 꼭 다시 만나요, 엄마. 저를 많이 사랑해주셔서 고마워요. 저에게 사랑을 알려주셔서 고마워요. 엄마의 손길이 처음 제 몸에 내려앉던 그 순간 제가 느낀 그 상냥한 온기는 영원히 잊지 못할 거예요. 사랑해요, 엄마.’

이번에는 이렇게 편지 하나를 먼저 전하고 짧은 말씀을 드려봅니다. 질문자님의 손바닥을 한번 봐보세요. 그리고 그 손바닥을 가슴에 한번 대보세요. 질문자님의 가슴에 퍼지는 그 따스함이 바로 질문자님께서 아기고양이에게 전해주신 귀한 선물입니다. 삶의 온기를, 그 따스한 체온을 아기고양이에게 알려주신 상냥한 손길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작은 생명의 몸짓과 그 손길이 함께 닿아 꽃피워낸 만남의 온기만이 질문자님의 모든 가슴을 채우던 순간을 우리는 영원이라 부를 것입니다.

가슴이 많이 아프실 거예요. 아가를 많이 사랑하셨기에 아가와의 만남을 영원 속에 새기려고 하시는 까닭입니다. 그건 새김의 아픔입니다. “너를 영원히 사랑한단다”라는 고백을 음각으로 깊게 새기는. 아가는 이제 질문자님의 가슴 속에서 영원히 살아갈 겁니다. 그렇게 영원한 약속의 품 안에 아가를 따듯하게 안겨주셨으니, 아무 걱정 말고 질문자님도 아가에게 알려주신 이 따듯하고 좋은 삶을 행복하게 살아가세요. 아기고양이의 삶의 마지막까지 진심으로 함께 있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불교신문3143호/2015년10월10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