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전등사 주지 범우스님

 

금강경 3년 결사 이끌며

겉도는 신도 하나로 규합

참선 프로그램 연계해

‘신행지도 시스템화’ 노력

 

서운-상묵-장윤스님

‘공심 우선’ 가풍 이어져

 

삼랑성축제 게이트볼대회 등

사찰만의 행사 넘어

지역문화행사 자리매김

불교 위상 한층 높아져

“사회·대중 이끌려면

승가도 역량 키워야” 

범우스님은 신도, 주민과 함께 하는 도량을 만들어가기 위해 늘 고민하고 연구하지만 원력만 모으면 못 이룰 불사가 없기 때문에 늘 자신감에 차 있다. ‘공심’을 바탕으로 한 종무원, 지역주민과의 견고한 유대는 삼랑성축제 게이트볼대회 등을 지역 문화축제로 끌어올리며 사찰 위상도 더불어 제고되고 있다.

범우스님은 신도, 주민과 함께 하는 도량을 만들어가기 위해 늘 고민하고 연구하지만 원력만 모으면 못 이룰 불사가 없기 때문에 늘 자신감에 차 있다. ‘공심’을 바탕으로 한 종무원, 지역주민과의 견고한 유대는 삼랑성축제 게이트볼대회 등을 지역 문화축제로 끌어올리며 사찰 위상도 더불어 제고되고 있다.

전등사 주지 범우스님을 찾아 들어선 강화도는 가을빛을 머금고 있었다. 파란 하늘에 기대어 나지막이 누워있는 산등성이 사이로 누렇게 익어가는 들판이 펼쳐졌다. 유구한 우리의 역사 속에 강화도가 천혜의 요새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섬이면서도 너른 들판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화도 어느 길을 가더라도 전등사를 가는 이정표가 붙어있다. 이 지역에서 전등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큰 탓이다. 삼랑성 안에 자리 잡은 절, 전등사를 오르는 길에는 삼랑성역사문화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15년째 강화도와 함께 해 온 전등사의 노력이 배어 있는 문화축제가 아니던가. 축제의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2일 범우스님을 만났다.

 

범우스님은 언제 보아도 열정이 넘친다. 중앙종회의원으로서 회의에 참석할 때도 그랬고, 전등사에서 만나 한담을 나누는 동안에도 그랬다. 그런 열정이 없었다면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하는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중앙회장을 맡지 못했을 것이다. 고등학교 불교학생회와 대불련 활동은 스님을 자연스레 출가의 길로 이끌게 했다. 탄성스님, 고산스님, 종범스님, 법장스님 등 이 때 뵈었던 스님들이 그 길을 열어주었다.

스승과 제자의 연은 따로 있는 듯 하다고 했다. 해인총림 해인사로 처음 입산했을 때 조계종 종정을 지낸 혜암스님을 시봉하다가 은사를 정하지 못하고 다시 산문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찾은 곳이 전등사였고 그 곳에서 만난 분이 은사인 전등사 회주 장윤스님이었다.

“은사이신 회주 스님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대학 때 대불련 활동을 인연으로 전등사에서 장학금을 받았고, 얼굴만 몇 번 뵌 것이 전부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빚이 있어서 전등사로 왔나보다 생각이 듭니다. 사제의 연이라는 것은 따로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장윤스님도 출가 30년이 넘도록 어느 누구와도 상좌 인연을 맺지 못하던 시기였다. 그렇게 장윤스님의 맏상좌가 됐다. 기이한 인연이 아닐 수 없었다.

전등사는 서운스님의 가풍을 잇고 있는 도량이다. 서운스님은 종단을 위해 일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총무원장을 세 차례나 맡았다. 그때마다 일이 해결되고 나면 다시 산중으로 돌아가 수행에 매진했다. 언제나 공심이 우선이었다. 그 가풍이 상묵스님과 장윤스님을 거쳐 범우스님까지 이어졌다.

누구나 그렇듯 범우스님은 구족계를 받은 후 안거 때마다 제방의 선원을 찾았다. 해인총림을 비롯해 영축총림, 조계총림, 덕숭총림 등 내로라하는 총림의 선원에 방부를 들였다.

“수행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대중생활과 참선을 지도해줄 스승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선원 중에 총림 선원만을 골라 방부를 들인 것도 그 요건이 맞았기 때문이에요. 하나라도 더 배우고 갈증을 풀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전등사 주지 소임을 맡고 있지만, 인연이 다 되면 언제든지 바랑을 메고 참선하러 가야죠.”

전등사는 직할교구의 한 말사에 불과하지만, 하고 있는 역할을 보자면 여느 교구본사에 뒤지지 않는다. 그 중 종무원 복지사업과 장학사업은 가장 우선시해 온 분야다.

“회주 스님 때부터 전등사는 오랫동안 종무원 복지사업과 장학사업을 지속해 오셨습니다. 어려운 중에도 한 번도 거르지 않았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요. 종무원들이 함께 기거할 숙소도 갖췄지요. 작은 인연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관계의 노하우’가 그 속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제가 전등사에서 출가하게 된 것도 결과적으로 그 인연 아니겠어요?”

15년째 진행하고 있는 삼랑성역사문화축제와 1000여명이 넘게 참여하는 게이트볼대회, 이주민을 위한 문화축제 등도 해를 더해갈수록 대중성 있는 행사로 자리잡고 있다. 이를 설명하는 범우스님의 목소리에 힘이 있다.

“삼랑성축제와 게이트볼대회, 이주민축제는 이제 사찰만의 행사를 넘어 지역의 문화행사로 정착하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에 강화 지역에서 나름의 역할을 해나가고 있는 전등사 문중 스님들의 역할에 힘입어 전등사는 지역 내 불교의 위상을 높이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어요.”

2012년 첫 주지 소임을 맡았던 범우스님은 소의경전인 <금강경> 독송기도 3년 결사를 시작했다. 신도들이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게 무얼까 고민한 끝에 시도하게 됐다. 겉도는 신도들을 다잡아야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입제부터 회향까지 3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함께 한 신도가 80여명이었다. 산사의 한계를 극복한 ‘적지 않은 성과’였다. 금강경 결사는 오는 23일 인도 성지순례를 마지막으로 남겨놓고 있다.

“대부분의 사찰은 주지가 바뀌면 신행지도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전 주지와 현 주지 간 법의 승계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에요. 신도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신행지도를 시스템화 시키지 않으면 주지가 바뀔 때마다 똑같은 문제가 발생하는 겁니다. 신도들은 일정 수준 올라가면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겉돌게 되어 있거든요.”

범우스님은 금강경 결사에 이어 참선 지도로 이어가려 한다고 했다. 금강경 결사로 들떠 있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참선 수행을 통해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겠다는 구상이다. 이렇게 금강경 결사와 참선 수행을 신도들의 신행지도 시스템으로 정착시킨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원력이 모아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대중의 원력이 모아지면 그 힘은 못할 것 같은 불사도 가능하게 합니다. 기도와 수행으로 그 원력을 세울 수 있어요. 신행지도를 시스템화하는 것이 그래서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스님은 승가의 역량을 키우는 일 또한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도들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불교대학 등을 통한 불교적 소양이 커졌는데, 지금의 승가는 그 이상을 끌어주지 못하는 한계가 노출되고 있는 게 아닌가, 고민하게 된다는 것이다. 솔직한 속내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지금 신도들이 일정 수준에서 정체된 채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신도들의 눈높이에 맞춰 이끌어주는 스님들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대중을 섭수하고 이끌 수 있으려면 승가가 그만한 역량을 가져야지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 그럴 수 있는 역량을 갖췄는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스님은 삼랑성역사문화축제 개막을 앞두고 아직 할 일이 남았다며 정족산사고로 발길을 옮겼다. 정족산사고는 조선왕조실록 등 국가의 중요기록물을 보관하던 곳으로 전등사 내에 자리잡고 있다. 이 곳에서 열린 현대중견작가전 전시회 개막식에서 회주 장윤스님을 만났다. 이 전시회는 장윤스님이 화단에 도움을 주기 위해 8년째 열고 있다. 장윤스님은 개막식 인사말을 주지 범우스님에게 양보했다. 범우스님은 “상좌를 배려하는 은사 스님의 마음”이라고 했다. 정족산을 내려오는 내내 가을바람이 훈훈했다.

■ 범우스님은…

 

1994년 입산한 범우스님은 장윤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95년 해인사에서 혜암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99년 직지사에서 청하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았다. 고등학교 불교학생회와 한국대학생불교연합회 충남지부장과 중앙회장을 맡아 청년불교를 이끌었던 열정은 졸업 후 출가의 길을 걷는 밑거름이 됐다. 덕숭총림 선원, 해인총림 선원, 조계총림 선원, 영축총림 선원, 석종사 금봉선원 등 제방의 선원에서 두루 정진 후 인천 강화도 전등사, 서울 봉은사, 영국 연화사에서 소임을 맡아 교화와 포교에 전념했으며, 현재 전등사 주지를 맡고 있다. 제15대 중앙종회의원, 인천광역시 문화재위원 등을 역임했다.

[불교신문3143호/2015년10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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