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 선학원 탈종단화

일제강점기 선학원서 시작한

독신승들의 청정승가 만들기

조계종 출범으로 비로소 완성

선학원에 재산을 등록한 조계종 스님 1200명이 조계종 승려증을 잃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2013년 선학원 이사회는 정관에서 “조계종 종지 종통을 봉대한다”와 “임원은 대한불교조계종 승려로 한다”는 두 조항을 삭제했다. 이제 분원장과 그 도제들은 ‘조계종 스님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선학원에서 발급하는 새로운 승려증을 받고 조계종을 떠날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이들이 두 개의 승려증을 가질 수는 없다. 조계종에서는 이중 승려증을 가진 사람은 자동 아웃되기 때문이다.

조계종에 출가하고 조계종에서 교육받고 조계종에서 상좌도 받으며 평생 조계종승려로 살아온 이들의 입장에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격이다. 더군다나 선학원 이사회에서 두 가지 조항을 삭제할 때 분원장들의 뜻을 물어보지도 않고 급하게 결정했기에 분원장들은 본인들의 뜻과는 무관하게 조계종 승려증을 잃게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재단법인에 한번 등록한 재산은 영구히 빼내올 수 없다. 이들이 선학원에서 탈퇴하면 땅 1평 되돌려 받지 못한 채 맨몸으로 나와야 한다. 이들은 고민하고 있다. 조계종 승려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조계종 승려증을 버리고 재단법인 분원장으로 남을 것인가? “제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어요. 저는 그냥 여기서 살다가 죽을래요.” 충청도에서 만난 노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인연 따라 살아야지요. 제가 무슨 힘이 있겠어요.” 전라도에서 만난 노비구니 분원장 스님의 말이다. 그들은 조계종 승려증보다는 재산을 선택하겠다는 말을 그처럼 완곡하게 표현했다. ‘인연 따라’라는 말이 그렇게 슬프게 들렸던 적이 없다. “스님에게 조계종 승려증은 얼마입니까?”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그 말을 차마 꺼낼 수 없었다. 이분들도 시대의 희생자가 아닌가하는 생각에서다.

그동안 선학원과 조계종의 관계에 대해서는 많은 오해가 있어왔다. 설립시기로 볼 때 선학원과 조계종은 어머니와 아들관계라는 것과 선학원은 민법에 의해 보호받는 재단법인이며 조계종은 임의단체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잘못된 논리와 비유에 속아서 조계종은 어머니를 간섭하는 막돼먹은 아들이라는 윤리적인 비난까지 받아왔다. 그러나 선학원과 조계종을 비유하자면 상해임시정부와 대한민국의 관계가 적당하다. 임시정부가 먼저 설립되었지만 대한민국이 건국되고 나서 임시정부는 대한민국으로 흡수되었듯이 선학원은 조계종에 흡수되어야 한다. 이것을 적시한 것이 종헌 9조3항이며 법인관리법이다.

 

‘선학원과 조계종’ 관계에 대한 오해

 

엄밀히 말하자면 조계종과 선학원이 어느 쪽이 먼저 설립되었는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왜 설립되었는지가 중요하다. 조계종은 사람이 주체다. 재단법인 선학원은 재산이 주체다. 출가자(사람)를 위해 재산이 증여되고 사용되는 것이지, 재산을 위해서 출가자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선학원의 재산은 오로지 청정 수좌 스님들을 위해 사용하라는 분명한 목적하에 증여된 재산이다. 그러므로 수좌 스님들 뒷바라지가 선학원 이사들의 존재이유이다. 선학원의 주인은 이사들도 아니고 분원장도 아니고 수행하는 수좌 스님들이다. 그 수좌 스님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조계종에는 약 100여 개의 선원이 있고 매년 2000여 명의 수좌들이 동안거 하안거에 들고 있다. 이분들이 선학원의 실질적인 주인이다.

선학원은 본래 일본불교의 영향으로 우리나라 승단이 급속도로 세속화되어가는 것을 막고자 만들어진 기관이다. 세속화란 독신승들이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선학원을 설립한 독신승들과 그 후배들은 20년 후에 독신승들의 승가인 대한불교조계종을 만드는 구성원이 되었다.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의 “왜색불교인 대처승을 사찰에서 내보내라”는 담화발표를 시작으로 그때까지 독신승을 유지하고 있었던 스님들이 대처승을 몰아내는 이른바 불교정화를 시작한다. 일제 강점기에 독신승들은 5%밖에 남아있지 않았기에 독신승들의 입장에서는 무모한 싸움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정부의 도움 없이는 애초에 시작도 해 볼 수 없는 싸움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1962년 비구승과 대처승이 함께하는 통합종단이 설립되고 1969년 독신승만으로 이루어진 지금의 대한불교조계종으로 자리잡았다. 일제강점기에 선학원에서 시작한 독신승들의 청정승가 만들기가 대한불교조계종의 출범으로 비로소 완성된 것이다.

선학원과 조계종은 청정승단이 위협받을 때마다 청정승가를 유지하기 위해 투쟁해 왔다는 동질감을 가지고 있다. 1969년 조계종이 완전한 독신승단이 되자 같은 해에 선학원 이사회는 정관에 “이사와 감사는 조계종 승려 중에서 선출한다”는 조항을 삽입한다. 이러한 조치는 선학원이 독신승단의 수좌들을 지원하고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재단법인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하고자 함이었다. 그런데 1978년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이사와 감사는 조계종 승려 중에서 선출한다”는 조항이 삭제되었다가 다시 2002년 “조계종 종지 종통을 봉대한다”와 “임원은 대한불교조계종 승려로 한다”는 조항이 복귀된다.

선학원 정관에는 조계종 종헌 9조처럼 ‘독신승려조항’이 없기에 “임원은 대한불교조계종 승려로 한다”는 조항은 곧 독신승만이 선학원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해 왔다. 그래서 이 조항을 삭제해 버리면 선학원은 독신승단으로 남아있는 것이 어렵게 된다. 그 좋은 예가 1978년 선학원 정관에서 “이사와 감사는 조계종 승려 중에서 선출한다”를 빼버렸을 때 독신승려가 아닌 대처승이나 재가자가 분원장이 된 사례가 있다. 그래서 1970년에는 100% 조계종 승려로 구성되었던 선학원이 현재는 80%만이 조계종 승려가 된 것이다.

 

‘조계종승려로 죽겠다’는 스님들…

 

이제 선학원에 조계종단이 아닌 스님들이 20%나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 다시 “조계종 종지 종통을 봉대한다”와 “임원은 대한불교조계종 승려로 한다”는 조항을 삭제하는 것은 독신승단이라는 정체성을 스스로 포기는 행위이다. 선학원이 조계종분원장이나 타종단 분원장들에게 똑같이 새로운 승려증을 발급하여 새로운 종단이 되면 선학원에 남아있는 조계종스님들이 졸지에 대처승 종단의 승려가 되는 것이다. 선학원 이사회가 재단의 설립목적을 배반하고 선학원을 대처종단으로 만들어가는 이 위급한 상황에서 지난 8월 조계종과 일부 뜻있는 분원장들은 이사회 결의 효력정지를 요청하는 가처분 신청을 내었다. 선학원이 독신 수좌들을 외호하는 승가이기에 재산을 등록한 것이니 애초의 목적대로 참선하는 수좌들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재단법인으로 남아달라는 요구다.

지금은 80%가 되는 조계종 분원장 일부만이 선학원 이사회의 결의가 무효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고 대다수의 분원장 스님들은 관망하고 있다. 그러나 관망하는 이들도 평생을 조계종 승려로 살았으니 죽을 때도 조계종승려로서 죽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종단은 이들의 소박하고 정당한 권리를 지켜주어야 한다. 분원장들의 뜻을 물어보지도 않고 설립목적을 없애버린 이사회 결의는 명백한 월권이며 선학원 설립자들과 뜻 있는 분원장들은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불교신문3143호/2015년10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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