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상 찬이슬이 맺힌다는 한로(寒露)가 오는 8일 눈앞에 다가오자, 길고 길었던 늦여름 무더위가 사라졌다. 아침저녁 찬바람이 불고 기온은 뚝 떨어졌다. 요즘같은 가을 초입에는 ‘가을 탄다’는 말이 사람들 입방아에 오른다. 의학적으로 밝혀진 바, 가을 타는 이유는 따로 있다. 따뜻한 여름에서 서늘한 가을로 넘어오면서 체온이 떨어지자 혈관이 수축되고 뇌로 가는 혈액공급이 예전보다 줄어들고 해가 짧아 빛을 보는 시간이 급감하면서 우울한 기분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가을이 오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외롭거나 힘겨운 감정을 견디지 못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는 듯한 느낌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때, 전국 산사에서 가을 특유의 아름다움을 뽐내면서 우울하고 아픈 이들을 손짓하고 있다. 재정적으로 넉넉하고 사람들이 많이 오는 몇몇 사찰에서 ‘산사음악회’라는 타이틀로 문화행사를 가졌던 예년과 달리, 이젠 다수 사찰이 저마다 품고 있는 역사와 특색, 멋과 매력을 발산하는 산사대축제로 거듭나고 있다. 초청가수가 특설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고, 관객들은 박수치며 환호하는 천편일률적인 축제유형에서 벗어나서 음악과 소리, 사찰음식과 맛, 불교전통과 수행 등을 테마로 한 각양각색의 품격높은 산사축제들이 전국 방방곡곡서 불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전통터키명상음악이나 수피댄스곡, 피아노와 퓨전국악 판소리 등으로 가을산사를 수놓게 되는 평창 월정사 오대산 문화축전이나 구례 화엄사 화엄음악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격조높은 산사축제로 자리매김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가을산사에 만연한 국화를 소재로 한 조계사 국화나눔전과 동화사 승시축제 국화전, 안성 칠장사의 백만송이 금송국화 대축제도 가을을 만끽하는 또다른 재미다. 교통이 불편해서 더욱 유명해진 울진 불영사에는 매년 가을마다 5000여 명 육박한 사람들이 운집한다. 울진 금강송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사찰음식축제와 음악회를 겸해서 비구니 스님 특유의 감수성과 감동을 자아내는 사찰음식의 세계로 사람들을 안내한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이 최근 선정한 올가을 우수 사찰음식행사 14선 역시 영양만점의 가을제철 사찰음식과 벗하면서, 산사를 찾는 이들의 오감을 만족시키기 위한 시도다. 지방 맛집을 찾아다니는 젊은이들에게도 소박하고 단출하면서도 멋스러운 지역별 사찰음식은 별미다. 때마침 정부가 지정한 가을 관광주간을 맞아 문화사업단은 템플스테이 참가비용을 대폭 할인해서, 1만원이면 고즈넉한 가을산사에서 하룻밤 보낼 수 있는 혜택을 주겠다고 나섰다. 더 미룰 이유가 없다. 넉넉하고 푸근한 외투에 두툼한 무릎담요 하나 들고 10월에는 가을산사의 부처님 품에 안겨 보자.

[불교신문3142호/2015년10월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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