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49재를 49일 동안 지내는 이유

 

하나의 감각이 없어지는 과정

7일 주기이며 꼬박 49일 걸려

육도윤회 벗어 천상환생 기원

49재는 종교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장례문화로 자리했다. 재벌과 유명 연예인들의 죽음은 언제나 화젯거리인데, 이슈의 마지막은 으레 그들의 49재 기사로 채워지게 마련이다. 살아남은 자들은 49재를 통해 죽은 자에 대한 그리움 또는 원한을 털어낸다. 49재를 지내기 전까지는 망자에 대한 왈가왈부를 삼가는 게 또한 예의다. 이는 비록 그의 육신이 죽었다 해도 49일 동안 영혼은 존속한다는 믿음에서 유래한다.

49재란 말 그대로 고인(故人)이 된 지 49일이 되는 날에 치르는 의식이다. 이때까지는 정신이 살아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게 되면 49일간 중유(中有) 혹은 중음(中陰)이라 불리는 상태로 지내게 된다. 다음 세상에서 또 다른 생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일종의 ‘대기’ 기간이다. 사찰에선 이렇게 반쯤 살아있는 영가(靈駕)들을 위해 7일(1주일)에 한번씩 7회에 걸쳐 제사를 지내준다. 초재 2재 3재 순으로 번호를 붙이는데, 중간은 생략하고 49재만 지내도 무방하다. 푸짐하게 차린 음식과 정성어린 예배로, 자식은 못 다한 효도를 뒤늦게 다하며 부모는 살아서 못 먹였다는 아쉬움을 자위한다. 스님들은 천도(遷度)의 노래를 속삭여주며 살아서의 미련과 회한을 떨어내라고 다독인다.

무엇보다 49재 시기에 생전에 쌓은 업의 크기와 됨됨이에 따라 내생의 계급이 결정된다는 통념은 절묘하다. 이른바 육도(六道). ‘금수저’인 천상(天上)에서부터 인간 축생 아수라 아귀의 세계를 거쳐 ‘흙수저’인 지옥까지, 여섯 가지의 생활환경을 가리킨다. 특히 49일째는 염라대왕이 최종적으로 판결을 내리는 날이다. 그래서 마지막 7재는 가장 성대하고 뻑적지근하게 치러야 한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든 흙수저 부모를 만났든, 내생에 인연을 맺게 될 어머니의 뱃속에 금수저가 들어있기를 바랄 것은, 중생의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쾌락의 극치를 경험할 수 있는 천상의 환생이 어렵다면, 최소한 인간세계에라도 발붙여야 본전치기는 할 수 있다. 죽을 때까지 사람을 위해 일하다가 마지막엔 사람의 먹이가 될 짐승이나, 평생을 싸우고 굶주려야 하는 아수라와 아귀의 삶은 생각만으로도 곤욕이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조건인 지옥은 말할 나위도 없다. 결국 49재는 고인의 생사여탈권을 쥔 염라대왕에게 ‘잘 좀 봐주십사’ 청하는 로비의 성격을 지닌다.

한편 유식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49일은 우리의 정신체계가 순차적으로 소멸하는 시간이다. 맨 처음 끊어지는 감각은 시각(안식, 眼識)이다. 이후 청각(이식) 후각(비식) 미각(설식) 촉각(신식)이 차례로 명을 다한다. 이렇게 전오식(前五識)이 사라지고 나면 두뇌활동을 뜻하는 의식이 완전히 멈춘다. 최종적으로는 말나식(자아의식)이 꺼짐으로써 비로소 영면에 든다. 하나의 감각이 없어지는 과정은 7일 주기이며 꼬박 49일이 걸린다.

49재의 절차는 다음과 같다. △영가를 초청해 영단에 모시는 시련(侍輦) △영가에게 앞으로 진행할 일을 부처님의 법에 따라 올바르고 경건하게 치르겠다고 약속하는 대령(對靈) △영가를 목욕시키며 업장을 씻겨주는 관욕(灌浴) △영가와 불보살에게 공양을 올리는 헌공(獻供) △천지신명에게 공양을 올리고 선처를 바라는 신중헌공(神衆獻供) △영가를 극락으로 환송하는 봉송(奉送) 등이 이어진다. 그리고 탈상(脫喪). 죽음의 서러움과 살아남음의 아쉬움을 털어내며 각자의 갈 길을 향해 돌아서는 일이다.

[불교신문3140호/2015년9월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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