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청법과 설법

교학·수행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각종 소원성취 위한 의례로 발달

법사품에 청법·설법 자세히 설명

설법은 법을 설하는 것이고, 청법은 법을 청하는 것이다. 현재 법을 청하는 의식으로 널리 통용되는 것은 청법가라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넓은 의미에서 보면 부처님의 말씀이나 관련 의례들은 모두 법회라고 할 수 있지만 오늘날은 부처님의 말씀을 널리 설하는 강연이나 행사 등에 한정돼서 주로 사용된다. 그렇지만 이 글의 연재 성격상 전호의 담론과 동일한 맥락에서 전개되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일반 법회보다 상단의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다음에는 중단의 신중님께 공양을 권해 드린 다음 행해지는 청법과 설법의식을 살펴보자.

공양의식이 끝나면 법회가 끝났다고 이해하고 법당을 나오는 분들이 적지 않다.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의식이 끝났을 뿐임에도. 그래서 공양의식이 끝나고 곧 법회가 시작된다고 안내하는 경우도 곧잘 볼 수 있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부처님을 청해 공양을 올릴 때 부처님께서는 공양을 마치시고 공양 올린 이들이나 법회에 참석한 이들의 근기를 살펴 그들에 적합한 법문을 설해주시는 모습을 경전의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지금도 이처럼 부처님께 공양 올리고 나서는 법사 스님께서 법문을 설해 법회에 참여한 대중들을 깨달음으로 인도한다.

재자들은 공양을 올려 복덕을 짓고, 법문을 들어 지혜를 얻는 것이다. 부처님 당시에는 부처님께서 공양재자들의 근기를 살피거나 질문을 받아 법문을 하셨지만 육신을 가진 부처님이 계시지 않는 무불시대에는 부처님으로부터 정법을 널리 펼 것을 부촉 받은 대덕 큰스님들에 의해서 행해진다. 그분(법사)들에게 법을 설해달라고 청원하는 청법을 하는 것이다. 전통의 청법게송은 다음과 같다.

차경심심의(此經甚深意)

대중심갈앙(大衆心渴仰)

유원대법사(唯願大法師)

광위중생설(廣爲衆生說)

‘이 경전의 깊고 깊은 뜻을 알고 싶어 대중은 목이 마를 정도로 간절하오니 대 법사 스님께서는 중생들을 위해 널리 설해 주십시오’라고 청하고, ‘사자좌에 오르시어 시방세계에 함께 임하시어 일체 중생을 연화계로 인도하소서’라는 등상게송을 더하기도 한다. 인도 스님의 인도를 받아 법사 스님이 법상에 오르면 대중은 삼배의 절로 간절함을 표시한다. 근대 소설가 춘원 이광수 선생의 작사로 알려져 있는 청법가 가사로 비교해보자. ‘덕 높으신 스승님, 사자좌에 오르사 사자후를 합소서. 감로법을 주소서. 옛 인연을 잇도록 새 인연을 맺도록 대자비를 베푸사 법을 설하옵소서.’ 청법게송과 등상게송의 의미와 조화롭게 맞닿아 있다.

이렇게 청법을 받은 법사 스님은 그날 법을 청한 대중을 위해 법문을 하게 되는데, 법문하는 자세에 대해 부처님은 <법화경> 법사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여래의 방에 들어가 여래의 옷을 입고 여래의 자리에 앉아 중생을 위해 경전의 뜻을 잘 분별해서 설명해 주어야 한다.’ 설법과 청법에 대한 자세를 분명하게 밝히고 계신다.

여기서 잠깐 청법게의 ‘이 경전’은 무엇일까. 지금은 ‘당일 배울 경전’이라고 쉽게 이해하곤 하지만 이 청법게송에서 지칭하는 ‘이 경전’은 특정 경전 중의 하나로 보기 어렵다. 이 게송이 등장하는 <상주권공> 법화법석에서의 의미로 볼 때, <법화경>임을 알 수 있다. 불교의 의례가 정치하게 발달하게 된 것은 교학이나 수행을 위해서라고 보기 어렵고, 각종 소원 성취를 위한 의례로 발달했다고 볼 수 있다. 망자의 왕생극락이나 무주고혼이나 아귀중생의 구원을 위해 공덕이 가장 수승하다는 <법화경>을 연설해 그 공덕으로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의례가 출현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이 게송이 특별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불교신문3133호/2015년9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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