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의 여적과 선문화

이준 지음 / 불교춘추사

 

 

불교유적 곳곳 현장감 깃든

불교전문학자의 생생한 시각

보기드문 ‘불교 역사기행물’

과학과 불교의 만남 ‘눈길’

인도 알치 마을에 있는 알치사원 전경.

40대 나이에 불교를 접한 이준 건국대 명예교수는 이후 불교의 가르침에 흠뻑 젖었다. “그동안 몰랐던 문화유산의 가치와 삶의 가르침”은 이준 교수의 화두가 됐다. 1982년 봉선사 통신강원을 수학하고, 불교서울전문강당을 졸업한 이준 교수는 건국대 불교학생회 지도교수, 한국교수불자회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는 ‘실상과 과학연구원’을 운영하며 불교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이준 교수가 2002년 이후 13년간 <불교춘추> <불교평론> 등 여러 교계 매체를 통해 발표했던 글을 모아 <순례의 여적과 선문화>를 펴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만난 불교에 대한 이야기와 수필로 영혼을 울린 법정스님, 영혼의 음악을 하는 나왕케촉 스님 등 기억에 나는 스님들과의 만남, 그리고 공학을 전공한 교수가 본 과학과 불교의 만남이 소제다.

“2007년 4월에 일본 나라 도다이지(東大寺)를 들러볼 기회가 있었어요. 도다이지는 일본 화엄종의 총본산으로 신라인 심상스님이 일본에서 화엄의 씨앗을 뿌린 사찰이라는데, 사찰에 그 기록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귀국 이후 여러 자료를 통해 도다이지를 알게 됐습니다.”

이준 교수는 쇼무천황(724~749)과 행기스님의 관계, 원효스님과 도다이지 등에 대한 고찰을 통해 도다이지의 문화유적을 관찰했다.

이준 교수는 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불교사원을 찾아냈다. 학술회의차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을 갔다가 불교사원이 한 곳 있다는 말에 열일 마다하고 찾은 곳은 사찰인 쿤쩨초이네이 닷산이었다. “제정 러시아 당시 개신교와 로마 천주교도 범접하지 못한 도시에 사찰이 있다는 것은 매우 가슴 벅찬 일이었다”는 이 교수는 러시아와 불교의 역사를 고찰하고 “현재는 사막에 피어난 한송이 연꽃이지만, 그 사막을 연못으로 바꾸고 연꽃의 바다로 만들어 내기를” 기원했다.

이준 교수의 여행지를 따라 책을 읽다보면, 마치 그 현장을 다가선 듯한 느낌을 받는다. 현장감 있는 세밀한 표현 때문이다. 특히 인도와 티베트 사원에 대한 이야기는 공대 교수가 아닌 불교전문학자의 시각이 느껴지기도 한다.

“인도가 좋아 지금까지 7차례 방문했다”는 저자는 “인도는 매력이 있는 나라다. 발에 밟히는 것이 문화재고, 히말라야로부터 그 넓은 평원에 밀려오는 신령스런 기운이 정신을 사로잡는다”며 인도여행을 권했다. 이 책은 불교의 역사기행물이기도 하다. 유적지를 통해 부처님의 삶과 여정을 고찰하고 있으며, 기원전 2세기 전륜성왕이었던 아쇼카 왕을 통해 인도불교의 역사를 정리했다. 또 불교가 한반도에서 꽃을 피우며 여러 성인을 탄생시키고, 일본에 문화를 건네준 중요한 대목도 담았다.

‘제4장 선문화속의 과학’은 공학을 전공한 필자가 보는 과학과 불교의 만남이다. 저자가 소개한 미국의 진화론 논쟁은 흥미롭다. 1920년대 미국 테네시주 과학교사 존 스코프스는 진화론에 대해 “다윈은 인간이 하등동물에서 진화했다고 주장했다”는 발언을 했다가 재판에 넘겨졌다.

“그런 일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는 이준 교수는 “1960년대 이후 창조론과 진화론을 모든 생물교과서에서 가르쳤다. 그러다가 1987년 연방대법원에서 창조론을 교육하는 것은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는 미국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결함에 따라 창조론이 교과서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소개한다.

“미국에서 과학시간에 창조론을 가르치는 것은 헌법 위반입니다. 그러자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이 창조론을 합리화시킨 지적설계론을 만들어 분쟁을 일으키고 있는데, 결국 지적설계론은 과학이 아니다는 법원의 판결로 결론납니다.”

한국에도 지적설계연구회가 2004년에 설립돼 심포지엄과 강연회를 이어가고 있는 현상을 우려하는 이준 교수는 “언제 미국과 같은 논쟁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한국인의 슬기에 의해 그 실상이 바르게 평가되기를 바란다”며 의견을 전했다.

한편으로 팔만대장경을 보관한 장경각, 석굴암 등의 건축물에 대해 공학적 우수성을 설명하면서 “현대의 기술을 뛰어넘은 선조들의 지혜와 신심”을 소개하고 있다.

과학과 불교교리, 그리고 인생을 바라보는 지혜를 겸비한 노교수가 펴낸 이 책은 불교의 사상과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접할 수 있는 책이다.

[불교신문3133호/2015년9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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