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해불전’으로 본 세종의 불교관

 왜 세종은 불교책을 읽었을까

오윤희 지음 / 불광출판사

 

사대부 특권의식 깨뜨리고

사라진 문화를 되살리며

다양한 가치 받아들이려던

세종의 뜻이 불교로 이어져 

“불교에 다라니라는 말이 있다. 무서운 귀신을 물리치거나,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는 신비의 주문. 대개는 그렇게 알고 쓴다. 그런데 15세기 조선의 언해불전에서는 이 말을 ‘모도잡다’라고 새긴다. ‘모두 다 잡아 가지다’라는 뜻이다.

불교의 기억은 대개 부처가 했던 이야기와 관련이 있다. 부처가 했던 이야기를 잘 듣고 똑똑히 기억하는 일이다. 이야기를 하는 부처와 이야기를 듣는 제자, 다라니는 그 사이에 존재한다. 언해불전은 그래서 다라니를 문(門)으로 비유하여 새기기도 한다. 열린 소통의 문이다.

모도잡다는 시원하게 활짝 열린 문의 상징이다. 다라니의 문은 말하자면 허무의 바탕에서 부처가 찾아낸, 중생을 위한 묘수였다. 다라니는 알수 있고, 소통할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한다.”

지난 8월18일 만난 오윤희 전 고려대장경연구소장은 <언해불전>과 ‘다라니’를 연결하는 공통된 가치로 ‘소통의 문’을 지적했다. 세종이 불교를 공부한 원인도 바로 소통이라는 뜻이다. 

성리학 엘리트가 설계한 유교사회 조선시대, 불교경전을 탐독한 세종대왕. 불교에 대한 탄압이 극심했던 당시 세종대왕이 유학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불교경전 번역서 <언해불전>을 펴낸 이유는 무엇일까. 또 세종이 이를 통해 알리려 했던 뜻과, 편집자들이 진정 구현하려고 했던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세종의 불교관을 엿보며 이 같은 물음에 해답을 던져줄 책이 출간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오윤희 전 고려대장경연구소장은 최근 조선 세종 시절의 불교경전 번역서 <언해불전>의 탄생 배경 등을 다룬 책 <왜 세종은 불교 책을 읽었을까>를 펴냈다. 오윤희 전 소장은 “서민들이 불경을 쉽게 읽게 하려고 우리말 불경을 만들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지만 이 책의 주요 대상은 유학자들이었다”면서 “우리말 불경 주석을 보면 유학자들에 대한 불평이 담겨 있다”고 밝혔다. 이어 “언해불전은 종교서적이라기 보다는 논리적인 사상서다. 조선의 지적, 사상적 지형도의 단서가 여기 들어있다”면서 “세종이 갖고 있던 지적 성향과 군주로서의 정치적 성향이 담긴 언해불전을 보지 않은 채 세종을 평가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세조가 간경도감을 세워 여러 경전을 보급한 것은 세종의 유훈을 따랐기 때문이다. 이는 무언가를 시도하려 할 때마다 무조건 ‘안 된다’는 상소만 올리는 사대부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지기 위해서였다.

그렇다면 세조가 던지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언해불전>에 담긴 불교의 핵심을 ‘앎-모름’의 대구로 풀면서 이를 설명했다. 알면 부처요 모르면 중생인데 언해불전은 ‘아는 길’을 말하고 있다는 것. 그는 “세종이 불교 책을 어떻게 읽었고 어떤 불교 인물과 교류했는지, 이것이 언해불전에 어떻게 반영됐는지 등을 두루 살펴야 한다”면서 “세종 이후 나온 우리말 불교책에는 성리학자들의 닫힌 사회를 넘어서 열린사회로 향하려는 꿈이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조계종 제25교구본사 봉선사 조실 월운스님 문하에서 한문불전을 익힌 저자는 <언해불전>을 읽으면서 주석 중심의 독특한 편집형식과 우리말 번역에 주목했다. 그는 “언해불전을 보면 불경 원문보다 이를 해설한 주석서의 비중이 더 크고, 편집자들이 여기에 우리말 주석을 또 덧붙인다”면서 “이런 작업이 여러 단계로 이어지는데 이는 어디서도 보지 못한 편집방식”이라고 평했다.

또 준동함령(蠢動含靈)은 모든 생명의 꿈틀대는 모습을 그린 ‘‘구믈구믈다’로, ‘성성(惺惺)’은 고양이가 쥐를 노리듯 지혜가 분명하게 작용하는 모습을 그린 ‘다’로 되살리는 등 어려운 한자어나 개념어보다는 쉬운 우리말, 그 중에서도 동사를 잘 활용해 번역한 것이 놀라웠다며 <언해불전> 속에 담긴 선조들의 우리말을 다루는 기술에는 지금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좋은 장점과 모델이 있다고 강조했다.

“상께서 승정원에 이르셨다. 맹자가 이르기를 묵자는 장례를 간소하게 치르는 것을 도라고 하면서도 어버이의 친상은 후하게 치른다고 했다. 무엇보다 신하의 도리는 정직으로 임금을 섬겨야 한다는 것이다. 거짓은 용납할 수 없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집안에서는 부처를 받들고 귀신을 모신다. 어딜가도 그러지 않는 자가 없다. 그런데도 남을 대할때는 거꾸로 귀신과 부처가 그릇되었다고 한다. 나는 정말 이런게 싫다.”

세종의 마음이 담긴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다. 이를 예로 들면서 저자는 세종대왕이 조선을 건국한 주도세력인 성리학자와 사대부들이 불교를 배척하는데 대해 못마땅했으며, 불교 서적을 편찬해 이들의 특권의식을 깨뜨리려고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세종이 언해불전을 편찬함으로써 조선 건국 초기혁명의 일방적인 물결 속에서 사라진 문화를 되살리고 조선을 제한적이나마 열린사회로 만들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연세대 철학과를 졸업한 저자는 1993년 해인사에서 고려대장경연구소 설립에 참여했고, 불교문헌자동화연구실, 비백교학연구소, 고려대장경연구소 소장을 거치며 한문불전 전산화 작업에 남다른 노력을 펼쳐왔다. 저서로는 <대장경, 천 년의 지혜를 담은 그릇>, <일꾼 의천>, <매트릭스, 사이버스페이스, 그리고 선>, <디지털북> 등이 있다. 저자는 “언해불전에 대해 현대어로 번역하고 주해를 단 역해본도 나와 있고, 숱한 연구결과들이 있지만, 아직 이 책은 낯설기만 하다”면서 “언해불전의 형식을 따라 충실히 읽다보면 기대 이상으로 쉽고 재미있게 읽힐 수 있는 만큼 앞으로 사부대중의 많은 관심을 바란다”고 기대했다.

[불교신문3133호/2015년9월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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