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령의 보로부두르 순례기③ 수수께끼 같던 부조를 만나다

인간세상에 태어나시기 전

천상에 계실 때 부처님을

경전에선 보살이라 부릅니다.

보로부두르에 새겨진

어마어마한 부조 앞에 서면

누구나 멈칫합니다.

누가 누구인지

어쩐 내용인지가 확

와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83㎝ 높이의 부조들이

상하2층으로 새겨져 있는데

상층은 부처님 일대기

하층은 ‘전생담’입니다.

일대기만 120개 그런데 …

사진1

보통 사람들의 삶은 어머니의 태에서 세상으로 나오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런데 석가모니 부처님의 삶은 모태 이전의 시간부터 다룹니다. 이 인간세상에 태어나시기 전 부처님은 천상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이때의 부처님을 경전에서는 ‘보살’이라 부릅니다.

보로부두르의 1층 회랑을 오른쪽 방향으로 돌면서 펼쳐지는 부조는 보살이 천상세계에서 머물다가 인간세상의 정반왕과 마야왕비의 아들로 태어나서 궁전의 화려한 생활을 즐기다가 출가 수행한 뒤 깨달음을 얻고, 보리수 아래에 머물다가 가르침을 펼치는 내용(초전법륜)이 차례대로 담겨 있습니다. 부처님의 생애 가운데 전반부라 할 수 있지요.

부처님의 생애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 이런 내용들은 그리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보로부두르에 새겨진 부조 앞에 서면 누구나 멈칫합니다. 부조에 새겨진 장면들에서 누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쩐 내용인지가 확 와 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도 그랬습니다. 사실 난감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일단 처음에는 바람처럼 재빨리 1층 회랑을 돌기로 했습니다. 휙 돌고 난 뒤 이번에는 천천히 돌아봤습니다. 그러자니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태양은 점점 열기를 더해가고 누군가가 더운 물을 확 끼얹은 듯 얼굴은 땀범벅이 되어버렸습니다. 미지근한 물로 목을 축인 뒤에 이번에는 가지고 간 책의 사진과 비교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아하, 수수께끼 같던 부조들이 그제야 하나씩 빗장을 풀어줍니다.

83㎝ 높이의 부조들이 상하2층으로 새겨져 있는데, 상층의 부조들이 부처님의 일대기이고, 하층의 부조들은 부처님의 전생담입니다. 부처님의 일대기를 담은 부조는 모두 120개. 그런데 120개의 부조 전부를 설명하기에 지면은 너무나 부족합니다. 선별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어느 것을 보여드릴까요? 일단은 첫 번째 장면부터 시작해보겠습니다.

동쪽 입구에서 시작하는 부조들은 보살이 천상에서 법문을 설하는 장면이 펼쳐집니다(사진①). 부처님의 일대기이니까 룸비니에서 탄생하는 장면을 기대했다면 당황할 수도 있지요. 보살은 천상에서 머물다가 천신들의 청을 받고 인간세상으로 내려오는데, 보로부두르의 일대기는 이렇게 천상의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사진2

그런데 역시 마야왕비의 출현이 내게는 가장 반가웠습니다. 정반왕과 함께 궁전에 앉아 있고 주변에는 신하와 궁녀들이 에워싸고 있는 장면입니다. 여덟 번째 부조에 새겨져 있지요(사진②). 이윽고 마야왕비의 꿈에 코끼리가 등장합니다. 두말 할 나위 없이 보살이 모태에 깃드는 순간입니다. 13번째 부조입니다(사진③).

사진3

흰 코끼리가 몸 안으로 들어오는 꿈을 꾼 마야왕비는 이 기쁜 소식을 남편인 정반왕에게 들려줍니다. 정반왕은 긴가민가하며 왕비의 꿈 이야기를 브라만 사제에게 들려주고 임신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됩니다. 얼마나 기뻤을까요? 이런 장면들이 하나씩 펼쳐지는 가운데 참 특이한 광경을 만났습니다. 22번째 부조에는 가슴이 풍만한 여인이 의자에 앉아있고, 사람들에게 뭔가를 나눠주는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사진④).

사진4

23번째 부조에는 의젓한 어떤 인물을 향해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공손히 두 손을 올려 뭔가를 받는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사진⑤). 후사를 잇게 되었다는 기쁨에 마야왕비와 정반왕이 각각 사람들에게 크게 보시하는 내용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십시오. 잘 보이지요? 이렇게 새겨져 있습니다. 이게 바로 보로부두르인 것입니다. ‘다 그게 그것’이라는 생각에 휙 지나가버리면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장면 마다 멈춰 서서 가만히 응시하면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사진5

자, 또 계속 살펴볼까요?
이제 우리들의 마야왕비는 산달을 맞아 룸비니 동산으로 나아갑니다. 27번째 부조에는 멋진 말이 끄는 수레에 올라탄 마야왕비의 우아한 자태를 만끽할 수 있습니다. 일산이 펼쳐졌고 수많은 수행원들의 시중을 받으며 왕비는 임신에서 오는 몸의 피로함을 전혀 모른 채 그렇게 출산의 장소를 향해 나아갑니다(사진⑥). 그리하여 마침내 부처님이 탄생합니다. 보로부두르 1층 회랑의 상층 부조 28번째에는 오른쪽 팔을 치켜든 마야왕비가 보이고 그리고 하늘의 신이 아기를 공손히 받아든 모습이 보입니다(사진⑦).

사진6
사진7

이렇게 지상에 내려오신 보살은 이제 싯다르타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보로부두르의 부조는 이제 궁전에서 훌륭하게 자라나서 스승에게 나아가 학문을 닦는 왕자님 싯다르타를 보여줍니다(사진⑧). 그 싯다르타를 지금부터 천 년도 더 전에 자바섬에 살았던 솜씨 좋은 장인들이 아주 멋지게 새겨 넣었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야소다라도요.

사진8

저기 저 앞에 야소다라가 있습니다. 싯다르타가 야소다라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분명 사랑의 약속을 하고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사진⑨). 부조 앞에 가만 서 있자니 갑자기 ‘이거 큰일났구나’ 싶었습니다. 분명 싯다르타는 야소다라를 저버리고 떠나갈 텐데 말이지요.

사진9

고운 자태의 야소다라는 앞으로의 불행을 짐작도 못하고 있습니다. 저 함초롬한 표정. 저것입니다. 보로부두르의 부조는 사람들의 표정이며 몸짓 하나하나를 저토록 생동감 넘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돌을 새긴 것인데 어쩌면 이리도 아름다울 수 있는지요. 나는 뜨거운 태양의 열기 속에서 감동에 먼저 녹아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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