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령의 보로부두르 순례기②웅장한 사원일까 거대한 불탑일까?

 

3개 층 원형단에 모셔진

석가모니 부처님이 모두 72분

동서남북 사면의 아촉불(東)

보생불(南) 아미타불(西)

불공성취불(北)이 각각 92분

제4회랑 비로자나부처님 64분

그렇게 이곳에는 모두 504분의

부처님이 머물러 계시다 합니다

아아!

한 분 뵙는 것도 벅찬 일인데…

동쪽면에 빼곡하게 자리하고 계시는 아촉부처님들.


아침 6시. 아주 몸집이 크고 우람한 거인이 내 앞에 서 있는 듯 어마어마한 크기의 순전히 돌로만 이루어진 건축물 하나가 눈앞에 펼쳐집니다. 부연 안개 속에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보로부두르는 거대했습니다.

총 높이 41.26미터. 제일 아래 기단의 한 변이 약 120미터. 반듯한 정사각형의 기단 위에 피라미드처럼 차곡차곡 위를 향해 점점 좁아지는 돌 건축물로, 기단 2개 층 위에 정방형의 4개 층과 그 위에 다시 원형의 3개 층이 있고, 가장 위에 직경 16미터의 종 모양의 둥근 스투파가 모셔져 있습니다. 보로부두르는 이렇게 총 10층이나 되는 건축물입니다. ‘건축물’이라는 표현이 맘에 들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른 아침, 점점 옅어지는 안개 속에 모습을 드러낸 이 거대한 돌 건축물 앞에서 나는 난감해졌습니다. 이건 대체 뭘까? 웅장한 사원일까, 거대한 불탑일까? 그런데 자꾸 보니 우리네 아늑한 한국의 사찰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돌탑이 엄청난 규모로 뻥튀기된 것만 같습니다. 어느 사이 나는 이 보로부두르를 ‘탑’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동문 정면입구에서 바라본 보로부두르.

그런데 이 보로부두르를 ‘사원’이라고 불러야 할지 ‘불탑’이라고 불러야 할지에 대해서는 학자들도 의견이 분분한 것 같습니다. 사원(또는 승원)이라면 스님들이 생활하는 장소로 쓰였다는 말이지만 보로부두르는 그런 용도로 세워지지는 않았습니다. 내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탑이라면, 그 속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져 있어야하는데 보로부두르의 목적은 부처님 사리를 모시고 경배하기 위한 목적도 아니라고 합니다. 만다라를 구현한 것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이 건축물을 찬디 보로부두르(Candi Borobudr)라고 부릅니다. 보로부두르 전문가인 가종수 교수에 따르면, 찬디란 이슬람 전래 이전의 불교와 힌두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건축물을 일컫는 자바어라고 하는데, 여행가들은 그저 편하게 ‘보로부두르 사원’이라고 부르지만, 전문가들은 이 말도 그리 내키지 않는 듯 어떤 이는 보로부두르 대탑(大塔)이라 부르고, 또 어떤 이는 그냥 보로부두르라고만 부릅니다.

보로부두르 벽면의 부조와 맞은편 난간의 부조, 그리고 불상들.

사실 이 ‘보로부두르’란 이름에 대한 해석도 분분합니다. 가종수 교수의 설명을 조금 더 인용하자면, 자연의 언덕 위에 흙을 부어 산을 만든 뒤 그 표면에 석재로 웅장한 건축물을 완성했기 때문에 흔히들 ‘언덕 위의 승원’이란 뜻으로 보로부두르를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로’가 산스크리트어 ‘비하라(승원)’요, ‘부두르’는 ‘위쪽’이란 뜻의 발리어 ‘베도루’라고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또는 ‘많은 불상’이란 뜻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보로’가 ‘크다(big)’라는 뜻이고, ‘부두르’가 ‘붓다를 가리키는 자바 용어’라고 보는 학자의 견해에 따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무튼 이 신비스럽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불가사의한 건축물을 한없이 올려만 보다가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스투파에 도달하려면 동서남북 사방에 나 있는 계단으로 올라야 합니다. 그런데 보로부두르의 정문출입구가 동쪽에 자리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순례객은 동쪽 계단을 통하여 보로부두르 참배를 시작합니다.

햇살이 퍼지기 전에 일단 꼭대기 층까지 올라갔습니다. 계단을 부지런히 밟습니다. 옆에는 철제 손잡이가 마련되어 있지만 그리 탄탄해보이지 않습니다. 일출을 보기 위해 찾아온 부지런한 여행객들 사이에서 내 발놀림도 빨라집니다. 그렇게 해서 정방형의 4개 층을 하나씩 오르자 갑자기 시야가 툭 트입니다. 그곳에는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종모양의 둥근 탑들이 가지런하게 줄지어서 있고, 탑이 반쯤 쌓인 곳에서는 정좌한 부처님 한 분이 상반신을 하늘 아래 고스란히 드러내신 채 동쪽을 향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한 분 뿐이실 리는 없지요. 모두 3개 층의 원형단에 자리한 72개 둥근 탑마다 그 속에는 부처님이 반듯하게 두 발을 맺고 앉아 계십니다. 그런데 어느 곳에는 부처님이 계시지 않고 텅 비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대부분의 부처님마다 상처를 안고 계십니다. 머리가 잘려나갔거나 코가 깎였거나 팔이 사라졌거나…. 대체 이 둥근 탑 속의 부처님은 어쩌다 이런 수난을 겪으신 것일까요? 오랫동안 화산재와 흙속에 파묻혀 있고 지진 피해도 입는 바람에 그리 되었을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유럽 열강들이 너도나도 부처님 머리며 손을 잘라가는 바람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게 분명합니다.

꼭대기 탑까지 이렇게 계단이 나 있다.

보로부두르에는 이렇게 부처님이 가득 살고 계십니다. 3개 층의 원형단에 모셔진 석가모니 부처님이 모두 72구이고, 그 밖에 보로부두르의 동서남북 사면에 모셔져 있는 아촉불(동쪽), 보생불(남쪽), 아미타불(서쪽), 불공성취불(북쪽)이 각각 92구요, 제4회랑의 비로자나부처님이 64구, 그렇게 해서 이곳에는 모두 504분의 부처님이 머물러 계시다고 합니다.

아아! 한 분의 부처님을 뵙는 것도 벅찬 일인데 나는 504분의 부처님을 한 곳에서 친견하게 되었습니다. 툭 트인 사방을 향해 반듯하게 정좌하신 채 저 멀리 동쪽에서 날아온 이 순례객의 예경에 행복해하시는 표정입니다. 천천히 부처님 한 분 한 분과 인사를 나누고 싶습니다. 그런데 아침 햇발이 점점 뜨거워집니다. 이른 새벽부터 올라와 일출을 기다리던 순례객들은 열기가 섞인 햇발에 쫓겨 자리를 떠납니다. 그나마 보로부두르를 제대로 둘러보려면 대기가 더워지기 전에 서둘러야 합니다.

나도 부처님을 챙겨보려다 그만두고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일출을 보려고 서둘러 올라가느라 놓쳤던, 벽면에 빼곡하게 새겨진 부조들도 둘러봐야했기 때문입니다. 이 부조들은 모두 4개 층의 단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빙글빙글 돌면서 바라보자니 단 한 곳도 부조가 새겨지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어느 곳이나 한결같이 아름다운 자태의 인물들과 동물들, 그리고 풍요로운 느낌을 담고 있는 나무가 알차게 새겨져 있습니다.

3개 층의 원형단에 모셔진 종탑들. 자세히 보면 각 층의 종탑마다 문양이 각기 다르다.

한 개 층을 다 돌고 나서 다시 계단을 올라가 그 위층을 둘러봤습니다. 그리고 다시 위층, 또 그 위층. 이렇게 둘러보고 났더니 그제야 보로부두르 벽면의 부조와 마주하고 있는 난간에도 뭔가 가득 새겨져 있는 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기도 부조, 저기도 부조, 온통 부조 천지인데 얼핏 보아 비슷비슷하니 뭐부터 봐야 할지 난감합니다. 한국에서 가지고 간 참고문헌은 아예 펼쳐볼 엄두도 나지 않습니다. 책에서는 기단부터 제4회랑까지 5킬로미터에 걸쳐 빼곡하게 새겨진 부조가 모두 1460개나 된다고 겁을 줬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일단 제1회랑부터 둘러봐야겠지요. 그곳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처님의 삶이 조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정면인 동쪽 계단으로 올라가서 오른쪽으로 도는 게 바른 순서입니다. 마치 탑을 돌듯 나는 그렇게 다시 천천히 보로부두르와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순례여행기에 참고한 책은 <보로부두르>(가종수 지음, 북코리아, 2013)입니다.
 

[불교신문3129호/2015년8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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