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여름 특별 템플스테이 <下> 봉화 축서사 마음쉼 가족템플스테이

손바닥만한 핸드폰에 넋잃고

넘치는 정보에 안절부절못해

“복잡하고 힘들게 사는 현대인

억지로라도 수행을 해야 해”

올해 고3이다. 수능이 코앞이다. 불철주야 입시준비에 여념이 없어야 할 중요한 시기에 아버지 손에 이끌려 템플스테이에 왔다. 차맛이 일품이다. 자나깨나 입시전쟁통에 시달리는 학원장도 휴가를 템플스테이로 대체했다. 쉬고싶은 마음, 쉬어야 할 것 같은 마음 때문이었다.

독수리(鷲)도 잠시 깃들어 쉰다(捿)는 봉화 문수산 축서사에 ‘독수리 7남매’가 모여앉아 수박을 먹는다. 올해 조계종에서 템플스테이 지정사찰로 승인받은 축서사가 여름특별테마 ‘쉬고, 쉬고 또 쉬고’를 내걸자 한걸음에 달려온 주인공이다. 경북지역 폭염경보가 발효돼 무더위가 하늘을 찔렀던 지난 4~5일 축서사에서 만난 사람들은 땀이 뒤범벅된 채 헐떡이며 올라온 기자에게 ‘여름이 무엇이고 더위가 무엇인가’라고 묻는 눈초리였다. “마음 쉬러 온 사람들한테 뭐가 궁금하세요? 이리 와서 수박이나 드세요. 봉화수박이 달디달아요.”

축서사는 사진찍고 구경하는 관광사찰이 아니다. 신라 문무왕 13년(673) 의상스님이 창건한 축서사는 지금도 경내 문수선원에서 10여명의 수좌 스님들이 하루 14시간 다섯달씩 가행정진을 하고 있는 선(禪)수행도량이다. 도량에 들어서면 선기(禪氣)가 성성하게 감돌고 있는 듯, 춥지도 덥지도 않은 묘한 기운이 서려 있다. 축서사의 마음쉼 템플스테이는 가부좌를 틀고앉아 ‘쉬고’, 솔향기따라 행선을 하며 ‘쉬고’, 스님과 차를 마시고 마음을 나누면서 또 ‘쉰다.’ 쉬라고 하니까 방바닥에서 뒹굴거리며 휴대폰에 넋을 잃고 삼시세끼 챙겨먹는 줄 알았다 도망치듯 내려가는 참가자도 있다. 축서사에서 강조하는 ‘쉼’은 온전한 마음챙김이다.

축서사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둥지를 튼 응향각에 주석하는 무여스님에게 ‘쉼’에 대해 물었다. “사회가 너무 복잡하고 사람들의 삶이 갈수록 번거롭고 힘들어. 이럴 때일수록 몸과 마음을 푹 쉬는 것, 특히 마음을 쉬게 하는 것이 가장 필요하지. 부처님께서도 쉰다는 것을 중시했어. 쉼이 곧 청정법신이요, 깨달음이지. 부처님이 된다는 것은 우주 인간 근본진리를 깨치는 것이지. 지금이라도 당장 쉼에 의미부여를 하고 억지로라도 수행을 해야 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집에서 잠시라도 에어컨을 꺼도 못살것 같고, 손에는 시원한 음료가 떠나질 않는다. 절에 있으면 한여름에도 에어컨은 커녕 따듯한 차 한잔으로도 더위를 식힌다. 좌복을 펴고 가만히 앉아 호흡을 고르고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맑은 차 한잔 입에 머금으면 몸안에 있는 더운 기운이 금세 사라진다. 에어컨이나 얼음물이 주는 시원함과는 차원이 다르다. 차 한잔을 마시며 행선(行禪)을 닦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축서사 연수국장 혜오스님이 들려주는 이야기따라 고요하게 차를 음미하는 이들의 입가엔 어느새 미소가 새어나온다. “차 한잔 우려내는 정성이 얼마나 귀한줄 아십니까? 정성이 깃든 손길로 차를 덜어내고 찻물을 적당히 끓여서 찻잔을 덥히고 차를 우려내기까지…. 다선일여(茶禪一如)라는 말처럼 차 역시 삼매에 들어갈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눈을 지그시 감고 복식호흡을 하면서 손 끝에 차의 온기가 전해지는 느낌을 알아차립니다. 첫 한모금 입에 머금어 입안 가득 차향을 음미하고, 조금씩 몸 구석구석에 차향을 드리워봅니다. 여러분, 모든 부처님법의 기준은 타인이고 상대임을 깨우쳐야 합니다.”

축서사 템플스테이는 차 한잔을 마시는 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 온전한 쉼을 위해 선다(禪茶)의 세계로 인도한다. 혜오스님은 인기 많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템플스테이 사찰이 무궁무진하지만 축서사만의 자랑거리를 딱 세가지 들었다. “우선 우리스님 무여 큰스님이 계십니다. 스님과 같은 선지식을 친견하고 수행점검을 받고 법담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축서사에서만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입니다. 두 번째는 누가 뭐라해도 가장 아름답고 편안하고 고요한 도량입니다. 큰스님께서 자로 잰 듯 반듯하게 해오신 도량불사는 마음공부를 하는 이들에게 제격이지요. 마지막 도반입니다. 정진하고 탁마함으로써 형성된 도반공동체는 수행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선지식과 도량, 도반이 두루 갖춰진 축서사에서 마음 한번 제대로 쉬어보시면 어떨까요?”

템플스테이 마지막 날 이른 아침. ‘지구를 지키는 독수리’가 아닌 ‘우주근본을 깨치려는 독수리 7인방’이 무여스님을 친견하기 위해 응향각에 들어섰다. 스님은 너무나 환한 미소로 이들을 맞았다. 세수 77세를 맞은 노스님은 아이처럼 천진한 웃음을 머금고 7명의 면면 유심히 살피더니, 그들만을 위한 ‘참선설법’을 들려줬다.(아래 박스기사) 1시간여 법문이 찰나처럼 흘러갔다. 보일러 대리점을 운영하는 L씨는 아들걱정을 덜었고, 아버지따라 온 고3수험생 L군은 “이제 뭔가 좀 알것 같다”며 즐거워했다. 불법(佛法)에 목말라 전업주부 신분으로 대학원에서 철학까지 전공한 K여사는 화두를 안고 신바람나게 살겠다고 발원했고, 공무원시험을 준비중인 스물셋 Y씨는 “네번째 시험은 문제없다”며 자신만만해했다. 이번생은 평생 화두공부를 해보겠다는 원력을 세운 H씨, 돈에 집착하기 보다 오직 아이들의 행복한 학업도우미가 되겠다고 다짐한 입시학원 원장 B씨….

‘쉼’이 가장 활발발한 ‘삶’으로 변모되는 순간이다.

 

“화두 깨쳐 마음 고요해지면 희희낙락 살판납니다” 

7人 위한 무여스님의 ‘참선법문’

“한여름 웃음꽃”봉화 축서사 주지 무여스님(앞줄 가운데)은 단 1명이라도 찾아와 수행점검을 청하면 마다하지 않는다. “스님 가끔은 귀찮지 않으세요?” 기자가 물었다. “깊은 산중이잖아. 이 먼 산골까지 오는 사람이라면 오랜만이고 특별한 손님 아니겠나?” 스님은 천진한 아이처럼 환하게 웃었다.

 

무여스님의 참선설법은 쉽고, 유익했다. 참선입문자임을 감안해서 그들의 근기에 맞는 법문을 택했다. “염불수행이 가장 쉽지만, 가장 좋은 수행법은 참선”이라고 말하는 무여스님의 60분 법문을 요약정리했다.

화두를 깨치면 누구나 부처가 된다. 화두공부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공부가 아니다. 누구나 하면 좋고, 언젠가는 반드시 해야 할 공부다. 가장 쉬운 화두 하나를 주겠다. ‘나란 누구인가.’ 자기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고 의심을 일으키는 것이 화두다. 살면서 수시로 무엇이 잘 안된다거나 어렵다거나 괴롭다거나 그럴수록 나란 대체 누구인가 참구해야 한다. 권투선수가 사각링에서 상대선수를 펀치로 막 날리면서 제압하듯이 치열하게 자신에게 물음표를 던져야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공부는 자기를 찾는 공부다.

참선수행은 마음을 편안하고 고요하게 해준다. 마음이 고요해지면 속된말로 살판난다. 삶 자체가 긍정적이고 기분이 좋고 활달해진다. 삶에 보람과 긍지가 충만하다. 삶이 그 정도만 되어도 눈물 뚝뚝 흘리며 죽는 소리하며 사는 사람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기쁘고 즐거운 묘한 기분, 글이나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 기분이 바로 진정한 행복이다. 살면서 돈이나 명예 권세를 통해서도 행복을 느끼지만 그런 부류의 행복 뒤에는 반드시 괴로움이 따른다. 그때 뿐이다. 수행에서 오는 행복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정도로 대단하다. 마음이 고요하면 밉고 싫은 사람이 없어진다. 마음에 화도 사라진다. 어디 가서라도 기분좋게 희희낙락한 삶을 산다. 수행이 그 정도 되면 이제는 수행하지 말라고 말려도 안할 수 없는 것이 수행이다. 수행이 되면 마음이 뿌옇게 맑아지다가 참으로 초롱초롱 맑아진다. 머리가 좋아진다거나 기억력이나 창의력이 강화되는 효과다. 보통 사람이 부처의 세계로 서서히 접근하는 것이다. 부처님 말씀처럼 모든 중생에게 부처님과 같은 불성이 있다는 것. 본래를 부처요, 본바탕은 부처님과 똑같은 지혜를 타고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내일부터라도 당장 아침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자기가 원하는 사찰이 있는 방향의 부처님의 상호를 머리에 그리면서 삼배를 올리길 바란다.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를 간절한 마음으로 108번 읊조려라.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화두가 꾸준하게 순일하게 여여하게 그치지 않고 들려지면 마음에 기쁨과 법열이 넘치고 안락함이 찾아오면 죽는데도 자신있다. 아 이거 잘 죽을 수 있겠구나 자신감이 샘솟는다. 어디를 가도 당당하다. 시공을 초월하여 언제나 행복을 느낀다. 진정한 불자의 삶이다.

[불교신문3128호/2015년8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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