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생존율 60%까지 향상

표적항암제 개발 이후

암치료 패러다임 혁신

2001년 한해 우리나라에서 11만 명이 암 진단을 받았고, 10년이 지난 2011년에는 22만 명이 암 진단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 20만 명이 매년 새롭게 암에 걸리고, 평균 수명만큼 산다고 가정할 때 암에 걸릴 확률이 30% 정도로, 암은 흔한 병이 됐다. 하지만 너무 겁낼 필요는 없다. 1990년대 암 환자 5년 생존율이 40% 정도였던데 비해서 2010년에는 5년 생존율이 60%까지 향상됐다. 더구나 생존율이 80~90%를 웃도는 암도 적지 않다. 이는 암 조기검진 프로그램의 보편화, 수술 및 최첨단 치료 장비의 발달, 그리고 고효과·저부작용의 항암제 개발에 힘입은 것이다.

수술이 불가능한 전이암이나 재발암은 치료목적이 완치가 아니었다. 소위 몇 개월 남았다는 시한부선고를 받기도 했는데, 예전에는 이것이 숙명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지금은 전이암이나 재발암에서도 장기생존과 완치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됐다. 암세포만 골라서 죽이는 표적항암제(targeted agent)의 등장 덕분이다.

기존에 쓰였던 항암제는 세포독성항암제로 정상세포보다 훨씬 빠른 분열을 보이는 암세포의 특성을 이용해 빠른 속도로 분열하는 세포를 공격함으로써 항암효과를 보였다. 그러나 이런 항암제는 암세포와 정상세포를 구분하지 못했고 암세포와 함께 일부 빠른 분열을 보이는 정상세포까지 덩달아서 죽이게 되어 여러 가지 부작용이 동반되었다. 하지만 표적항암제는 특정 암세포에서만 많이 발현되는 특정단백질이나 특정유전자변화를 표적으로 삼기 때문에 선택적으로 암세포만 골라서 죽일 수 있다. 기존의 항암치료가 암세포와 정상세포에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융단폭격이었다면 표적항암제는 특정물질만 표적으로 하는 초정밀 유도탄과 같다.

최초의 표적항암제는 1999년 처음 나온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이다. 만성 골수성 백혈병에서 글리벡이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만성 골수성 백혈병환자의 5년 생존율은 95%를 넘어섰고, ‘만성 골수성 백혈병’은 ‘합병증을 동반한 당뇨병’보다 오래 사는 질환이 됐다.

글리벡은 백혈병뿐만 아니라 ‘위장관간질종양’에서도 좋은 효과를 보이고 현재는 유방암, 폐암 등 여러 암에서 표적항암제 개발이 활발해져서 새로운 표적항암제가 나오고 있고, 일부는 이미 표준 치료제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유방암의 대표적인 표적항암제 ‘허셉틴’의 경우 수술 후 보조항암치료나 전이성유방암의 고식적 항암치료뿐 아니라 수술 전 선행항암치료효과도 입증돼 널리 사용된다. 일부 전이성 폐암환자 중에서는 ‘이레사’나 ‘잴코리’ 같은 표적항암제를 고혈압 약 먹듯이 매일 편리하게 복용하며 일상생활도 하고, 심지어 직장생활을 하기도 한다. 이런 암치료 환자는 점점 늘어가고 있다. 앞으로는 항암제 선택의 혼선을 줄이고, 환자 개인별 맞춤치료가 가능한 시대가 조만간 올 것이라고 예상된다. 이 모두는 암에 대한 분자생물학이 발전하면서 암세포에서만 발현되는 암 단백질이나 암유전자를 잘 찾아내게 된 덕분이다.

암세포에 대한 좋은 표적들을 더 찾아내면서, 병리과 의사들이 해야 할 일이 많아졌다. 과거에는 병리과 의사가 폐암을 진단할 때 소세포폐암인지 비소세포폐암인지, 비소세포폐암이면 어떤 유형인지 등, 주로 조직학적 유형만 판정했다. 요즘에는 폐암을 진단할 때 ALK라는 유전자가 있는지, EGFR 유전자 돌연변이가 있는지, 다른 표적 유전자가 있는지 진단해 주어야만 한다. 유방암 진단을 할 때에도 HER2 유전자가 있는지 호르몬수용체가 있는지를 반드시 진단해야만 한다. 암 조직에서 표적유전자가 발견되면 환자에게 맞춤표적 항암제치료가 가능해지기 때문에, 병리과 의사들이 더 세심한 진단을 내리게 된 것이다.

아직 모든 암에서 표적항암제 치료가 가능한 것은 아니라 더 많은 연구개발이 이루어져야겠지만, 표적항암제의 등장은 분명 많은 암 환자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환자 개인별 분자생물학적, 유전학적 특성에 맞추어 약제선택을 달리할 수 있는 맞춤표적 항암제의 발전은 향후 암치료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꿀 의학역사에서 또 하나의 큰 획이 될 것이다.

[불교신문3126호/2015년8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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