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여성개발원 부부템플스테이

소통 않고 조용히 사는 것도

싸우는 부부만큼 위험수위 高

사찰서 함께 수행…좋은 방편

집에서 부부간 자애명상 ‘효과’

결혼해서 자식 낳고 함께 산 지 30~40년이 됐지만, 아내는 여전히 남편을 못마땅해하고, 남편은 부인의 속마음을 잘 모른다고 한다. 티격태격 날마다 유사한 이유로 싸우고 할퀴고 갈등하면서도, 배우자에게 수여할 상장을 써보라고 하자 그동안 차마 입밖에 꺼내지 못했던 말들을 쏟아낸다. 미안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젊었을 때 휴일을 잠으로만 보내는 당신이 미웠습니다. 이제 늙어서 하루종일 당신을 쳐다봐야 하는 것이 짜증납니다. 집에만 있지 말고 잠시라도 나가줬으면 좋겠어요. 같이 있을수록 시시콜콜 잔소리를 하게 돼 그것도 피곤합니다.” 남편과 함께 외손자를 돌보는 예순일곱 박경자(가명)씨가 차분한 어투로 자기 생각을 털어놓자, 좌중에선 웃음소리가 새어나왔다. 비슷한 연령대 여성들 중에는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도 많았다. 언뜻 들으면 이들 부부에게 심각한 문제는 없어 보이지만, 두 사람의 표정에 웃음기는커녕 메마르고 건조한 기운만 가득했다.

제법 사이가 좋아보이는 부부도 ‘소통’과는 동떨어진 삶을 산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눌려서 ‘조용하게’ ‘그냥’ ‘싸우지 않고’ 살 뿐이다. “마누라에게 채널권이 있어서 TV리모콘도 마음대로 만지지 못한다니까요. 허허허. TV홈쇼핑을 집중해서 볼 때는 무릎베개를 해줍니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허 참.” “저도 집사람이 시키는대로만 합니다. 그러면 싸우지 않고 평화롭지요. 제 생각을 드러내다보면, 갈등이 생기고 결국 부부싸움으로 번지니까요.” “정년퇴임을 하고 나서는 몸은 편해도 마음이 불편합니다. 바쁜 아내에게 밥을 차려달라 하기도 눈치 보이고, 돈을 벌어다 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도 있고, 아이들과는 대화가 끊어진지 오래됐고…. 바깥에서 힘들게 일하고 하숙생처럼 살았던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요.”

불교여성개발원은 사단법인 지혜로운여성 가족지원센터와 함께 지난 11~12일 양주 육지장사에서 부부템플스테이를 실시했다. 8쌍의 부부가 참석했다. 부부끼리 절에서 수행하며 생활하는 일반 템플스테이를 넘어서, ‘부부 커뮤니케이션’을 주제로 한 다양한 부부상담프로그램을 가동했다. 특히 첫날밤 ‘화성거사 금성보살 수다방’에서 16명의 남편과 부인은 마음속에 담아뒀던 이야기를 어렵사리 털어놨다. 50~60대 이들 부부는 ‘손자 돌보는 일’ 외에는 함께 나누는 일이 거의 없었다.

부부템플스테이에 참석한 8쌍의 부부들이 각자 상대 배우자에게 수여한 상장들.

프로그램을 진행한 이영호 서울시한부모가족지원센터장에 따르면, 부부 발달단계는 크게 4단계로 나뉜다. 혼인초기 오리엔테이션단계로 시작해서 탐색적 애정교환단계를 넘어가 애정의 교환단계를 거쳐 안정단계에 접어들어야 한다. 문제는 많은 부부들이 애정교환단계에서 안정단계로 넘어가지 못한다. 이 센터장은 이 마지막 단계에 있어 필요한 ‘사랑’을 개념적으로 정리했다. 자(慈)와 효(孝), 애(愛)와 인(仁)에 담겨있는 사랑과 존중이 적절히 배합되는 이치다. “부부간 애정이 안정적으로 회향되려면 1:1사랑만으론 어렵죠. 자녀에게 베푸는 자비로움과 아래서 지펴줌으로써 행하는 효심이 더해져서 1:1이 아닌 1:100의 인(仁)의 정신까지 사랑이란 그릇에 담아낸다면 노후에도 행복한 부부가 될 것입니다. 함께 사찰을 다니는 것도 좋은 방편입니다.” 이 센터장은 다시 부부들을 향해 물었다. “그동안 살면서 배우자 탓을 하기도 했지만 어쩌면 문제는 나에게 있는 것 아닐까요?”

의사소통을 중시하면서도 어떻게 소통을 시작할지 난감해하는 부부도 많다. ‘미(美)고(考)사(辭) 프로그램’은 부부가 서로에게 미안했던 일, 고마웠던 일,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시간이다. 김미성(66, 가명)씨는 “내가 바빠 혼자 있게 해 미안하고, 수행하고 봉사하는 날 응원해줘 고맙고, 언제까지나 존경하는 도반으로 살며 사랑하겠다”고 말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부부끼리 서로에게 상장을 수여하는 ‘이벤트’도 열렸다. “가정은 생활수행공동체요 부부는 최고의 도반입니다. <천수경>이 정구업진언으로 시작되듯 상구보리하화중생의 출발은 배우자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하는 것입니다.” 오유식(64, 가명)씨는 부인 윤성미(가명)씨에게 다음과 같은 상장을 수여했다. “나에게 당신은 햇살같은 사람입니다. 내가 좀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게 좀더 노력할 수 있게 힘이 되어주신 당신께 사랑과 감사를 듬뿍 담은 상장을 드립니다.”

이번 부부템플스테이에는 김연화 김포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이 진행하는 가운데 ‘가족헌법 만들기’ 프로그램도 실시했다. 가족헌법은 가족구성원들간의 대화를 통해 서로 지켜야 할 약속과 원칙을 담아내는 의미있고 재미있는 작업이다. 이외에도 김남선 불교여성개발원 명상리더십센터장이 지도하는 ‘부부 자애명상’의 시간도 마련됐다.

[불교신문3124호/2015년7월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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