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만의 꽃다발을 피우다

이란 지음 / 사유수

나는 신의 종이 아니라

부처와 동등하다는 말에

‘불교가 무엇인가’ 공부

인과법 알고 매력에 푹 빠져…

 

20년간 가정법회 열며

도반들과 불교 공부·포교

지난 10일 서울 자양동 자택에서 만난 이란 선생. 지난 20년간 가정법회를 통해 포교를 이끌어 왔다.

서울 자양동에 전망좋은 사찰이 있다. 한강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아파트 고층에 자리한 여여원이다. 포교불사를 하는 마음으로 지난 20년간 살고 있는 아파트를 법당으로 개방했던 곳이다. 지난 5월, 그동안의 여정을 담은 책 <승만의 꽃다발을 당신에게>를 출간하고 가정법회를 조용히 닫았다. 이란 선생을 지난 10일 여여원에서 만났다.  

천주교 신자였던 이란(66세, 법명 수덕화) 선생은 불자였던 남편과 결혼하면서 신행생활을 접었다. 그렇게 “신기하게도 시댁 식구들은 1년에 한번, 부처님오신날에만” 절에 갔다. 불교에 대해 물어봐도 별반 아는게 없는 불자였다. 결혼 전 매주 성당에 갔던 그녀는 “이것이 종교생활이 맞는가” 의구심이 들었다.

“성당을 찾아 고해성사를 했어요. 잘 살기위해 종교를 믿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는 다 같으니 시댁 종교를 따르라는 신부님의 말에 마음 편하게 불교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무작정 찾은 사찰이 봉은사였다. 옆 사람을 따라 절을 하고, 기도와 예불도 곁눈질로 배웠다. “법당 방석을 각자 가져오는 줄 알고 다른 것과 같은 크기, 같은 색깔로 만들어서 가져 갔다. 합장하는 방법 하나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혼자 알아서 믿어야 하는 종교라고 생각했다”는 이란 선생은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사서 읽으면서 ‘나라는 존재는 신의 종이 아니라 부처와 동등한 자격을 갖고 있다’는 것과 인과의 도리를 알면서 불교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러던 중 봉은사가 분쟁에 휩싸였어요. 스님들이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됐죠. 절에 다니기 시작한지 얼마 안된 때라 참 난처하더군요.”

1년여 지나 다시 봉은사에 들렀다가 ‘모든 것이 나로 인해 생기는 것이다.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다른 사람을 탓할 게 아니라, 내 마음을 닦으면 된다’는 말에 “눈이 확 트였다”는 그녀는 스스로 수행하고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이 일었다.

“이 좋은 가르침을 다른 사람들과 같이 공부하고 싶은데, 당시는 불교기초교리를 하는 사찰이 없었어요. 마침 한 스님이 집에 오셨다가 보살님 집을 모델로 만들어 보라고 하신 말이 한참동안 화두였죠.”

한강변을 지나가는 지하철이 눈에 들어왔다. 정해진 길을 따라 ‘자신의 철로’를 묵묵히 달리는 지하철을 보면서 ‘다른 길에 눈 돌리지 않고 내 길만 가면 아무 사고없이 흘러가는구나’ 생각이 들었다는 이란 선생은 “내가 있는 이곳을 법당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수덕화 보살은 벽 한쪽에 작은 부처님을 모시고, 주변 사람들과 매달 모여 가정법회를 시작했다. 법사에 목정배 동국대 교수를 비롯해 학자, 스님을 모셨다. 기초교리를 배우고는 경전공부반을 만들어 <육방예경> <법화경> <부모은중경> 등을 하나하나 공부해 갔다.

공부를 하면서 도반들과 자주 큰스님을 찾았다. “지금 우리가 하는 공부가 맞는 것인지 선지식에게 점검을 받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부모님께 귀한 부처님 대접을 받고 자랍니다. 저 또한 그랬어요. 저는 한때 신사임당을 닮고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불교를 알고 승만보살을 닮고 싶은 모델로 삼았어요. 열심히 20년간 불교 공부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포교 했어요. 같이 공부했다는 것이 맞겠지요.”

이란 선생은 불교여성개발원이 선정한 108인 여성불자 가운데 한명이기도 하다. 여성불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해 왔기 때문이다. 또 사임당·율곡 장학재단 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서정문학>을 통해 시와 수필로 등단한 작가이기도 하다.

이란 선생은 20년을 채우고 여여원을 접었다. “요즘은 불교대학이 많아 어디가든 공부할 곳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향에 앞서 많은 사람들이 불교에 인연을 맺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승만의 꽃다발을 당신에게>를 펴냈다.

책에서 여러 스님들과 만났던 대화 가운데 핵심만 뽑아 정리한 부분이 특히 눈길을 끈다. “광제스님:(봉투를 하나 주시다) 집문서입니다. 수덕화: 네. 그날 나에겐 새로이 집 한 채가 생겼다. 하지만 나는 아직 스님이 주신 집으로 이사하지 못했다. 그 집이 어디 있는지 아직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내용을 읽은 한 스님이 오랫만에 전화를 걸어 왔단다. “보살님, 이제 그 집문서 내놓으셔도 됩니다”라고.

[불교신문3123호/2015년7월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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