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표충사 삼층석탑 재봉안 추진 … 두방사에서 6과 ‘이운’

표충사 주지 정산스님이 대웅전에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침입을 피해 이운한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 진신사리가 420여년 만에 돌아왔다.

밀양 표충사(주지 정산스님)는 지난 7월3일 오전 10시 진주 두방사에서 봉안하고 있는 진신사리 6과를 이운하는 의식을 거행했다. 1592년 임진왜란 발발로 왜군의 침입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진주 월아산 법륜사로 옮겼다가, 법륜사가 폐사된 후 두방사로 다시 옮겨 모신 사리이다.

표충사 주지 정산스님은 “임란 당시 누란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선 사명대사를 기리는 표충사는 호국성지”라면서 “왜군의 침탈에 대비해 불가피하게 옮긴 사리를 다시 본래 자리로 이운한 것은 성스럽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진주 두방사에서 모셔온 진신사리를 표충사 대웅전으로 이운하고 있다. 맨 앞은 표충사 주지 정산스님, 그 뒤는 진주 두방사 주지 대정스님.
주지 정산스님은 “앞으로 문화재청과 협의해 삼층석탑에 부처님 사리의 재봉안을 추진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 일 것”이라면서 “임진왜란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옮긴 사리를 다시 봉안하는 일이 원만하게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두방사에서 이운해온 사리를 일주문 앞에서 맞이한 주지 정산스님과 총무 자허스님 등 표충사 대중 100여명은 여법한 절차에 따라 사리를 대웅전으로 모시는 의식을 거행했다.

이 자리에는 두방사 주지 대정스님을 비롯한 50여 명의 두방사 신도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대정스님은 “법륜사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이 주둔하던 사찰이었으며, 두방사에서 사리를 모셔왔다”면서 “본래 자리인 표충사로 사리를 이운한 것은 환지본처(還至本處)의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법륜사는 현재 폐사된 상태로 사지(寺址)만 남아 있다.

신라시대 조성된 밀양 표충사 삼층석탑(보물 제467호)은 1995년 해체 보수 당시 사리가 없는 빈 사리함이 발견됐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의 도굴에 대비해 사리를 다른 사찰로 사리를 옮겼다는 전설이 전해올 뿐 이었다. 표충사 사리는  임진왜란 당시 진주 월아산 법륜사에 봉안하다 두방사로 이운됐다.

420여년만에 다시 표충사로 이운된 진신사리. 이날 법회에 동참한 스님과 신도들이 본래 봉안되어 있던 삼층석탑을 탑돌이 하면서 귀환을 환영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임진왜란 당시 영정사 3층탑에 모셔진 부처님 사리를 보호하고자 말사였던 진주 월아산 동쪽 법륜사에 옮겨 모셨으나 진주까지 왜군이 밀려들자 월아산 남쪽 두방사로 다시 숨겨 모셨다”는 연기문을 통해 확인 가능하다. 영정사(靈井寺)는 표충사의 본래 사명(寺名)이다.

표충사 총무 자허스님은 “사리가 모셔져 있지 않은 삼층석탑을 돌면서 예불을 올리는 불자들의 모습을 주지스님이 매우 안타깝게 여기셨다”면서 “그동안 사리의 행방을 몰랐는데, 두방사의 협조로 다시 모시게 되어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표충사는 삼층석탑 재봉안에 앞서 대웅전에 사리를 임시로 봉안했다. 문화재청 등 관계 당국과 협의를 거쳐 삼층석탑에 봉안하고 법회를 거행할 계획이다. 임진왜란 당시 불가피하게 옮겨진 표충사 삼층석탑 진신사리의 재봉안은 나라를 구하는데 앞장선 호국불교의 위상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불교신문3120호/2015년7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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